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글 쓸 일이 종종 생긴다. 새 학기에 어떤 담임선생님은 자녀에 대해 참고할 사항을 써달라며 백지를 보낸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나도 순간 난감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괜히 염려스럽다. 글쓰기가 확실히 만만한 일은 아니다. 여러 생각이 붓을 가로막는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 ‘뭘 쓸까’하는 막막함이 가장 크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을까. 아니, 글을 잘 써야한다는 건 누구의 생각일까. 내 생각에 영어광풍, 외모지상주의와 비슷한 과열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에서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글에 부과된 권위는 지나치게 크다. 글이 곧 인격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고 자기표현이 서툴면 지적인 능력을 의심받는 분위기다. 그러니 실물보다 나은 한 장의 사진처럼, 어수선한 생각을 멋진 글로 찍어내 나를 표현하고 싶은 거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조바심이 작용한다. 하지만 예술하는 작가나 밥벌이하는 기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달필이어야할 필요가 없고, 글이 꼭 아름다워야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과연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글에 관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 무조건 성형부터 하지말고 아름다움에 관해 성찰해야하듯이 말이다. 글이 곧 인격이 아니다. 글은 고상한데 인품 천박한 학자를 떠올려 보라. 글은 전달과 나눔의 방편일 뿐이다. 설사 글이 인격이라쳐도 문제는 간단하다. 색조화장 진해서 불편한 얼굴보다 기초화장에 입술연지만 바른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고상하다. 아름다운 글을 쓰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면 된다. 글은 재능보다 기능이다. 갈고 닦는 노력, 연마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잘 써지지 않지만 줄넘기처럼 꾸준히 하면 실력이 향상된다. 생의 어느 시점에 건강을 위해 등산 가듯이 글쓰기 역시 몸이 요청할 때 쓰기 시작하면 된다. 늦은 때란 없다.
가볍게 접근하자. 마음비우기. 부담과 욕심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생각의 길이 뚫린다. 일전에 이성복 시인은 ‘지금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최선이다’라고 했다. 즉 엄청나게 잘 쓸 수 있는데 능력발휘가 안 돼서 못 쓰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자기그릇만큼 쓴다. 나 역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못 쓰고’ 있을 때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기본에서 시작한다. 이것부터 따져보자.
‘글에 꼭 들어가야 할 요인은 무엇인가’ ‘어떤 점을 두드러지게 할 거인가’ ‘어떻게 써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이 ‘어떻게 멋진 표현을 쓸까’보다 앞서야 한다. - <글쓰기훈련소>, 임정섭
위 책에 따르면 과거에도 글쓰기의 미덕은 간략하고 쉽게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홍길동전>저자 허균은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건 문장의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글이란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짓는 일임을 강조했다. 시, 수필 등 예술적 창작에 종사하는 작가나, 빠르고 정확하게 써야하는 기자도 '메시지 전달'은 기본이다. 적절한 수사법은 그 다음이다.
예를 들어, 새 학기를 맞아 아이에 대해 적어오라는 글을 보자. 들어갈 내용은 아이의 특성, 재능, 의견 등이다. 아이가 내성적이다, 교우관계가 원만하다와 같은 추상적 표현 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의 줄거리를 쓰면 좋다. 오늘 아침에도 밥 한 그릇 다 비우고 갔다, 아들 키우면서 지금까지 학교에 불려간 적이 다행히 없었다, 그런데 운동을 싫어해서 걱정이다. 언니랑 다투면 방에서 30분 간 나오지 않을 만큼 고집스럽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한번은 꼭 피아노를 친다, 맞벌이를 해서 아이가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닌다, 등등 정보를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쉽고 담백하게 써야지, 과도한 수사법 동원해서 쓰려다가 아이에 대한 핵심정보는 놓치고 자식 얼굴에 금칠하거나 반대로 먹칠하는 푼수 엄마 될 위험이 있다.
<전태일 평전>에 인용된 전태일 수기는 쉬운 글의 좋은 사례다. 난해한 표현이 한 줄도 없다. 이해가 잘 된다. 그래서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움찔움찔 꿈틀거린다. 감동 돋는다. 쉬운 글은 쓰다보면 멋진 글이 된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폭음을 하시고, 방세를 못 준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워하시고, 동생은 방학책 값,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면서 어머니의 지친 마음을 괴롭힐 땐, 나는 하루가 또 돌아온다는 것이 무서웠다.’ - <전태일 평전>,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