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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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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의 우물 엄마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다. 아직도 친정 안방에는 엄마가 쓰던 재봉틀과 화장대, 소품이 그대로 놓여 있다. 영정 사진 앞에는 고인 앞으로 온 무슨무슨 단체의 우편물이 차곡차곡 높아간다. 첫 해에는 그랬다. 제아무리 무뚝뚝한 아버지라도 갑작스러운 ‘마누라’의 죽음에 허망하신가보다 했다. 나로서는 매번 울컥했다. 엄마의 물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곤 했다. 3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자 이제는 그만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차마 말이 되어 나오진 않았다. 신문에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의 소개와 부모의 편지가 매일 연재된다. 꼬박꼬박 챙겨서 보는데 저마다 아이들의 사연은 달라도 똑같이 반복되는 구절이 있다. “**야, 엄마는 아직 네 방을 그대로 두고 매일 들어가본단다.” 눈물..
매일 만나는 것들 승강기 버튼을 꾹 누른다. 맨 꼭대기인 18층까지가 출근길엔 더욱 더디다. 땡 하는 신호음을 기다리는데 옥상 문이 열리고 6층 아주머니가 낑낑거리며 화분을 들고 나온다. 하얀 국화꽃이 긴 모가지를 내밀고 소담소담 피었다. 집에다 두시려고요? 그럼. 내가 이 꽃을 보려고 봄부터 키웠는데 집에다 두고 봐야지. 최고의 가을 부자. 국화꽃 당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리도 옥상을 드나드셨나보다. 1층 현관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바위처럼 몸을 웅크리고 계단 바닥을 연신 문지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중창으로 목례를 나눈다. 누가 음식물 쓰레기를 흘린 모양이라고, 하필 어제 손톱을 깎아 떼어지지 않는다고 당신의 뭉뚝한 손을 탓한다. 옆 동에는 오늘도 연희데이케어센터 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
만튀와 말하기대회 얼마 전 새로운 말을 접했다. 만튀. 분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떡순(오뎅·떡볶이·순대)’ 같은 계열을 상상했다. 만두(와) 튀김의 줄임말? 아니다. ‘만지고 튄다’의 약자다. 여성의 특정부위를 만지고 튀는 행동을 뜻한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여성의 몸을 만지고 달아나기를 반복한 김모군(18세)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처음 보았다. 관련 기사를 더 검색해봤더니 ‘만튀’라는 신조어는 이미 엉만튀, 가만튀 등 만지는 신체의 부위를 타고 괴물처럼 증식해버린 상태였다. 나만 너무 늦게 안 모양이다. 성희롱을 일상화하고 희화화 하는 말이 버젓이 일상에 매복되어 있었다. 언론은 천연덕스럽게 받아쓰기를 한다. 기사 말미에는 ‘장난삼아 하는 일이 범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
친구의 이별에 대처하는 법 -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지난여름 친구가 별안간 이별을 겪었다. 동거하던 애인과 멀어지다 헤어졌다. 친구는 상실이 컸다. 늘 옆에 있던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허전하고 상대의 변심이 분하고 믿기질 않고 사탕처럼 녹아 없어진 사랑의 실체가 허무한 거다. 입맛을 잃어갔다. 사랑이 사람을 반짝반짝 생기 돌게 한다면 이별은 육신의 스위치가 하나둘 꺼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의 3주가 되자 낯빛이 거무튀튀해지고 살이 쑥쑥 내렸다. 치마가 헐렁해져 주먹이 쑥 들어갔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다이어트에 마음고생만한 게 없다는 말을 절감했다. 한 관계의 분리를 지켜보는 나는 무력했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게 개별자의 구체적 사건이 되면 의미와 기호로 가득한 작가주의 영화가 된다. 행복한 이유는 비슷하..
고양이 장례식 “엄마, 오늘 하리 죽은 지 24일째야.” 딸아이가 무심히 말했다. 하리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다. 아니다. 키웠다고 말하기엔 해준 게 없다. 심지어 나는 얼굴도 몇 번 못 보았고 쓰다듬어 보지도 못했으니까. 나는 그간 애완동물을 키우자는 아이들의 집요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키우는 건 너네로 족하다’고 공언했다. 집에 화초 한 포기 갖다 놓고 물주는 일도 내키질 않았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우주를 떠받드는 일과 다르지 않았기에 개나 고양이 털 한 올이라도 더해진다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들의 친구가 기르던 고양이가 왔다. “생후 10개월 밖에 안 됐는데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고양이가 딱하다”는 말에 나도 맘이 흔들렸다. 아들은 용돈을 아껴 사료비를 대고 대소변을 치우는 등 정서적..
축제전야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이 요시키치) 요새 바쁘구나, 글을 잘 안 쓰는 걸 보니. 라고 친구가 말했다. 바쁜 건 맞지만, 내가 글을 가장 왕성하게 쓸 때보다 바쁘지는 않다. 그 때는 바쁜 게 글쓰는 이유였고, 지금은 바쁜 게 글 안 쓰는 핑계다. 그 때는 왜 썼는지,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쓰는 행위에 열중해서 썼던 거 같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지금은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이 개입한다. 시시하고 지루하다. 내가 하려는 말들이 시시하고 떠올랐다 가라앉는 생각들이 지루하다. 왜, 꼭, 굳이, 뭘, 또, 하면..
다 키웠다는 말, 잘 키웠다는 말 현관에 나가서 신발을 세어보았다. 커다랗고 시커먼 항공모함 같은 남자운동화가 네 켤레. 간밤에 놀러온 아들 친구들이 몽땅 방에서 자고 있는 모양이다. 새벽 6시. 아들 방문 밖에서 코고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내가 한 시쯤 잠들 때만 해도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몇 시에나 자는지, 이불은 안 부족한지 모르겠는데, 다 큰 사내녀석들이 자는 방이라 문도 못 열어보겠다. 벌써 3개월 째다. 11월 초 수능이 끝나고 거의 매일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 바쁘다. 부산으로 강화도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오고 이 친구네로 저 친구네로 다니면서 숙박도 하고 집에 데려와서 자기도 한다. 지 다니던 수학학원에서 채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돈으로 자주색 바지도 사입고 피아노학원을 다닌다. 18년 인생의 휴가라도 얻은 듯 원없다. 어..
수레의 좁은 문 엄마, 등싹이가 죽은 지 얼마나 됐지? 일 년 됐나 이 년 됐나? 수레가 등 뒤에서 묻는다. 날이 더워 의욕이 없는지 아침밥 먹고 내 누워 뒹굴뒹굴 거리더니 등싹이 생각이 난 모양이다. 엄마, 우리 그 때 백팔배도 했지. 근데 등싹이가 먼저 죽었나, 흥싹이가 먼저 죽었나. 나의 대답을 듣기 보다는 혼자 말을 던져놓고 여러 가지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듯 보였다. 등싹이 외 세 마리의 구피가 순차적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놀이터에 묻고 나서, 수레는 한동안 비만 오면 걱정을 했다. “등싹이, 납싹이, 흥싹이 떠내려가겠다.” 을 내고 개인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꽃수레 이야기에 대한 호응과 관심이 가장 컸다. 꽃수레 예쁘다, 얼마나 컸느냐, 꽃수레 보고 싶다…. 아이들은 자란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수레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