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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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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걷다 - 쌍차 해고자 복직 걷기대회 오랜만에 걸었다. 정수리 위에다 이글거리는 초여름 해를 지고 강바람 몸에다 걸고 뛰다가 걷다가 흘렀다. 여의도에서 시청까지. 작년 가을 시세미나 시작하고 '토요집회'에 소홀했었다. 아무래도 에너지가 한 곳으로 쏠리면 흐름을 돌리기는 어렵다. 하나의 수도꼭지에 하나의 호수 밖에 들어가지 않듯이 나의 리비도는 '시'에 끼워졌던 것이다. 세미나를 오래해서 여유가 좀 생긴 건지, 아니면 맑스를 읽어서 그런지 집회에 가고픈 충동이 일었다. 재능노조 1500일 투쟁. 쌍차 22명의 죽음. 삼성전자의 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 내가 공부하는 이유와 내가 공부한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현실에 내 몸을 들여놓고 싶었다. 여의도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낯선 얼굴이 보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나는 완..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 ‘기억할만한 지나침’이라는 기형도 시가 있습니다. 눈이 퍼붓는 날, 관공서 건물을 지나다가 춥고 큰 방에서 어느 서기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입니다. 읽고 나면 찡합니다. 우는 남자 때문이 아닙니다. ‘보는 사람’ 때문입니다. 다 자란 남자가 우는 일보다 더 놀라운 건, 우는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다 큰 남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겐 그랬습니다. 유리창 너머 낯선 자의 눈물에 발목 잡힌 한 사내의 시선이 비명처럼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시는 마지막 행에서 ‘나는 그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끝나는데, 건물 밖에서 펑펑 내리는 눈 맞고 눈사람이 되어버렸을 하얀 남자의 뒷등이 두고두고 아른거렸습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기형도의 시로 기억합니다. 그 ..
‘고3학생 모친 살해사건’ 좋은 글입니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모든 것”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집에 없었다. 아빠는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자주 집 밖을 겉돌았고, 5년 전부터는 아예 따로 살았다. 그럴수록 엄마는 소년에게 집착했다. 소년이 7살 때 엄마는 이미 소년을 ‘교육’하기 위해 매를 들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가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의아해하면서 씻겨주려 옷을 벗기자, 소년의 종아리와 엉덩이에는 피멍이 맺혀 있었다. 소년은 “괜찮아, 아빠”라고, 담담하고도 짧게 말했다. 엄마는 “아이를 왜 때리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애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사용한 폭력의 도구는 다양했다. 홍두깨로도 때리고, 야구 방망이로도 때리고, 골프채로도 때렸다. 그래도 소년은 자신이 엄마에게 “모든..
김진숙 309일 승리의 기록, <사람을 보라> 김진숙 지도가 웃으면서 내려오는 장면까지 309일의 기록이 사진전에 전시됩니다. 이번 사진전 디렉터 한금선 작가님이 어제 한진에 내려가셨고 작업한 것까지 추가 프린트하기로 했어요. (언론에 나온 사진인데 볼수록 감동적인.. ㅜㅜ)
진숙농성 300일 <사람을 보라> 사진전을 기획하며 세 개의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김진숙 지도위원한테 점점 소원해지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의리없다고 생각했다. 뭘 할 수 있을까 멍하니 틈틈이 고민했다. 둘은 연구실이 별꼴카페와 동거하는데, 아직은 비어있는 시간이 많은 카페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나하고 놀자. 좋은 사람들과 멋진 일을 꾸미고 싶었다. 셋은 사진하는 선배가 연구실 구경시켜 달라고했다. 커피 시켜놓고 노닥거리면서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유연함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사진전 하자고 추동했다. 불현듯 사진전을 해볼까. 제안했다. 그 즉시 두어군데. 다음날 한 군데. 전화해서 미팅 날짜를 잡았다. 꿈처럼 무정형으로 흘러간 일들. 4차 희망버스에서 사진집를 샀다. 첫장을 넘겼다. '이것은 우리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쓸쓸한 사..
좌담회: 상상해봐, 희망버스 어디로 갈지 희망이란 말은 빛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루하다. 1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았다. 탑승객 700명. 세상은 무심했다. 2차 희망버스는 1만 명이 몰려갔으나 차벽을 넘지 못했다. 3차 대회를 지나 4차 서울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참가인원이 반으로 줄었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희마하게 번졌다. 허나 희망버스 그 후, 사람이 사람을 찾아가고 유머가 아픔을 퍼뜨리고 집회가 축제로 벌어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1차, 2차, 3차, 4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김수영)고. 부산 앞바다 고공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이라는 절망의 극점에서 전국으로 펼쳐진 희망의 이행, 그 연관은 빛나고 또 질기다. 여름 내내 반도의 땅을 달궜던 희망버스는 하늘 높은 가을날 강정..
희망버스 설움버스 #1. 다시 여름이 되나봐. 희망버스 후유증으로 시들었어. 여러 가지로 우울하다. 흠 강정마을에 있다. 여기도 참 심란하네. 곳곳에서 우울한 풍경만 날아다니고 그래. 한 우울이 다른 우울에게. 뉴스를 보고 마음이 영 좋질 않다. 고객숙인 남자. 폭염주의보까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넋두리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트위터를 하는가 보다. 말이라도 하고 나면 숨통이 트이려나. 깨어있을 확률 100% 심야생활자에게 문자를 전송했더니 제주도다. 이상한 나라. 곳곳에 우울특파원. 4차 희망버스는 유람버스. 시내를 맴돌았다. 청계광장에 있다가 광화문역 화장실을 갔다 오니 대오가 흩어졌다. 난간에 기대 서서 물길 따라 이동하는 깃발 행렬을 보았다. 꼬리가 사라지고 무대 스피커가 떼어지고 현수막이 걷혔다. 서서히 ..
김진숙 고공농성 200일 기념 앉으나서나 당신 생각이 따로 없다. 날이 더워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는데 김진숙 지도위원이 자꾸 생각난다. 그 높은 곳에서 매달린 채 200일이 흘렀다. 매서운 겨울 지나 여름 삼복더위 한 복판까지 왔다. 그동안 목욕을 못하고 지냈다는 얘기다. 희망버스 타고 갈 때 고공 크레인 영상을 봤는데 정말이지 맥주집에 걸린 수영복 입은 여자 나오는 달력 폭 정도의 크기만한 곳에 꽃이불이 깔려있었다. 비좁은 곳에서 잠인들 편히 자겠는가. 부실한 식사. 옹색한 공간. 못 먹고 못 자고. 몸이 다 망가졌을 텐데. 감옥에도 책과 신문은 넣어주는데 크레인에는 올려주지 않는다. 하루종일 뭐하고 지내실까. 그분에겐 트윗이 유일한 세상과의 끈이다. 트윗에 대해 그냥 그랬다. 빠르게 뭐가 올라가고 주고받고 하는 상황이 번잡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