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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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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소설> 이주노동자는 삶의 선택권이 있는가 3. 이주노동자로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얼까 소설 속에 그려진 이주노동자는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벌어 반쯤 저축하고 딱 삼년만 참으면 된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대한민국의 후미진 공장지대로 모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돈을 모아 나간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열악한 시설의 공장에서 불이나 단체로 죽고, 돼지우리 축사 개조한 집에서 살고, 산업재해 당해 불구가 되는 등 아주 참혹하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왔을까. 의 설정대로 누가 네팔에서는 ‘천문학’을 공부한 아버지를 한국에서 ‘전구공’으로 살게 했을까. 돈 인가? 돈/행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인가? 그럴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만리타국으로 왔다. 전 지구적으로 ‘돈’은 최고..
<이무기사냥꾼 외 3편> 억압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주노동자 소설' 1.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소설을 읽기 전에, 문학은 왜 필요하고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일까 한번쯤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왜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감동을 통한 인식의 물꼬 틔우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시 한 편이나 소설들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좋은 작품이란 나라는 존재에 ‘막힌 의식’, 일상의 틀에 ‘갇힌 의식’을 틔워 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진부하고 틀에 박힌 관점을 벗어나 독창적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작품, 그러니까 늘 생각하던 사고의 패턴을 바꿔주지 않는다면 좋은 작품이 아닌 것이다. 또한 당대의 첨예한 사회모순을 다뤘다하여 문학의 복무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읽고 나면 마음만 천근만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타자를 사유한다는 것 이 가을, 문학을 벗삼아 '타자성과 소통'을 사유하고 있다. 오랜만에 소설도 읽고 김현선생님 책도 뒤적여 본다. '문학'이란 말에선 고색창연한 느낌이 우러난다. 우러르고 싶어지는 저 먼 나라. 문학평론가 고봉준이 민족문학과 아시아에 대해 쓴 글 를 읽었다. 훌륭한 글이었다.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타자성만 재확인하는 소통, 위험하니 하지 말까? “먼 곳에 대한 상상력이 증가할수록 가까운 곳에 대한 모멸감은 커지고, 가까운 곳에 대한 모멸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먼 곳에 대한 상상력은 확장된다.”(복도훈) 눈먼 연대, 위험한 연대가 있다. 상호 타자성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이 곧 연대의 불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말하기 이전에, 이 어떻게 라는 물..
<재생산에 대하여>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알튀세르는 구조주의적 경향을 띈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정신분석학에서 원용한 중층 결정(혹은 과잉결정) 또는 구조적 인과성 이라고 하는 개념에 기초하여,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의 일원적인 토대- 상부구조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했다. 정신분석은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정신분석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막연히 짐작 가능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된 모성이 홧병으로 나타나는 것, 유아 때부터 사교육 쓰나미에 휘말리던 동심들이 학습장애를 일으키는 것 등의 사례는 ‘정신분석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정신병원이 혁명의 공간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듭 확인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정리해보자면, 이데올로기는 메타적인 개념이다. 관념들의 다발 자체가 아니라 관념들의 발생기원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
<검은피부 하얀가면> 흑인은 백인과의 관계에서만 흑인이다 0. 물음을 던지는 자, 파농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프란츠 파농의 역작 의 마지막 문장이다. 파농은 왜 물음을 던지는 자로 살고자 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늘 묻게 하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식민지의 아들’이라는 파농의 삶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파농은 1927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의 포르 드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과 프랑스 출신의 백인, 그들 사이의 혼혈인(뮬라토)으로 구성된 프랑스 식민지이다. 파농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에 지원해 각지에서 파시즘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리옹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해 학위를 취득했다. 알제리의 정신과 의시로 근무하다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에 ..
<오르가즘의 기능> - 파시즘의 욕망, 욕망하는 파시즘 '오르가즘 능력'이란 단순히 성적 흥분의 절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장애 없이 생체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하고 이같은 결여가 어떻게 파시즘 등의 비인간적 체제에 동조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한다. # 대중의 억압된 욕망을 유혹한 파시즘 ‘파시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파시즘이 일정한 외연과 내포를 가진 어떤 정신적 실체라는 전체를 함축한다. ‘정의의 정치학’이다. 그런데 파시즘은 하나가 아니다. 군사기계, 학교기계, 가족기계, 국가-민족기계, 소통기계, 연애-결혼기계 등 파시즘은 이 각각의 기계들의 계통 속에서 그 기계들이 생산하는 욕망들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파시즘의 특이성은 기존의 권주의 체제 (가족, 종교,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억압된 성충동..
<왕필의 노자주> '상선약수, 물처럼 써라' 본디 성인의 말씀이야 이롭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삶의 한 능선을 넘는 즈음, 마흔 목전에 접한 노자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노자는 에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무위사상을 펼친다.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고 爲無爲, 무사의 마음으로 일하며 事無事, 무미의 마음으로 맛을 보라고 말한다 味無味. 자연이 그러하듯 ‘검박하게 순리대로’ 살라는 말일 게다. 를 공부한 기념으로 (글써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심기일전 차원에서) 노자의 가르침을 ‘글 쓰는 태도’에도 적용해 보았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우러나온다. 그 순환구도를 생각하면 '잘 사는 법은 곧 잘 쓰는 법'이기도 하다. 무위를 행한 글쓰기. 쓰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낮은 곳까지 스며라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최상의 선은 물로 형용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