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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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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도시를 사랑한 자의 쓸쓸한 고백...1 # 그녀와 도시 (1971~) ‘도시는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이라고 브레히트는 말했다. 그녀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그렇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을 벗어난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4년 전, 집안에 IMF가 닥쳤을 때도 채무를 정리하고 나니 네 식구의 서울살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주위에서는 서울 근교로 이사를 권했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살던 동네를 고수했다. 지금도 적은 평수에서 네 식구가 성냥갑 속 성냥처럼 끼어 산다. 일인당 할당 면적도 좁고, 도로는 엄청 막히고, 매연 심하고, 물가도 비싸고, 사교육 극성이고, 인심은 각박한 서울. 하지만 그녀는 도도한 한강은 물론 서울의 먼지마저도 사랑한다. 아니 싫은 만큼 좋아한다.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바라는 김씨에게, 이는 지극히 ..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명랑좌파, 명랑사회 꿈꾸다 그동안 숱한 만남의 계기와 기회가 있었지만 다가가지 않았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그(의 책)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니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았다. 가끔 에서 읽는 그의 칼럼은 역시나 ‘명랑좌파’ 다운 면모가 다분했다. 사교육으로 아이들 병들고 소비가 위축되고 나라가 망해가니 국민투표로 사교육 폐지를 묻자는 제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구체적이고 진중하면서도 발랄한 내용전개가 맘에 들었다. 호감지수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던 참이다. 그러던 중, 우석훈(의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늘 다니던 서점이 아닌 서점을 갔다. 책들의 낯선 배치는 일순 나를 미아로 만들어버렸다. 어디서부터 무슨 책을 들춰봐야할지 몰라 어슬렁거리는데 그가 다정스레 손짓했다. ‘88만원 세대’ ‘괴물의 탄생’ ‘직선들의 대한민국’ ‘명랑..
<섹슈얼리티와 광기> 근대적 주체가 말하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좋은 책은 ‘질문’한다. 그런 점에서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수영의 는 우선 좋은 책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근대 문학의 주인공들은 왜 죄다 아파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의 근엄한 계몽주의가 힘을 잃은 뒤 등장하는 1920년대 근대문학은 온갖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로 들끓는다. 김동인과 염상섭 나도향 등의 소설은 섹슈얼리티와 광기라는 소재로 가득했다. ‘임야’ ‘표본실의 청개구리’ ‘약한 자의 슬픔 ’ ‘타락자’등에는 성윤리를 저버린 여자, 불감증의 아내, 종교적 열정과 살해의 망상에 사로잡힌 아들, 성적 불능자이며 도착적인 남편, 히스테리에 걸린 간호부, 관음증 환자인 전차 차장 등이 등장한다. 도대체 주인공이 혈색 좋고 무탈한 삶을 사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성적인 욕망에 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우리시대 이데올로기의 실재들 라캉의 실재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재에 관한 정의는 흡사 선문답을 연상시킨다.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선문답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나 깨닫지 못한 입장에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재는 관성적인 현존, 실정성의 충만, 상징적 질서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 간극이다. 실재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견고하고 꿰뚫을 수 없는 중핵.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론적인 일관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괴한 순수 실체이다. 등등. 실재는 단단한 덩어리이면서 구멍이고 현존하면서 선행한다. 라캉(지젝)에게 이데올로기는 환상이고 이 세계를 이루는 상징질서이다. 실재는 환상 가로지르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박정수의 분석을 참조해 우리시대 이데올로기의 실재들을 살펴보자. * 파시즘의 실재 파시즘의 인간관계는 고문자와 피고문자처..
<노동을 거부하라> 노동은 도난당한 삶의 시간이다 지난해 6월 시작돼 500일 넘게 이어져 온 이랜드 사태가 드디어 종지부를 찍게 됐다.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기 위한 이랜드그룹의 계산 업무 외주화와 대량 해고에 맞서 지난해 6월 30일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한 지 17개월여 만이다. 노사양측은 노조 및 간부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철회 및 징계 해고자의 일부 복직, 비정규직 고용 안정 등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 사태에서 보듯이 오늘날 노동운동은 ‘노동을 위한 투쟁운동’이다. 누구나 오늘날 노동의 구조적 위기에 대해 말하고 고용안정을 지상과제로 삼는다. 일자리를 약속하지 않는 정치가란 없다. 노동자들도 일하지 않은 자여 먹지도 말라고 외친다. 그런데 이와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책이 있다. 독일의 좌파그룹 크리시스가 쓴 는 ‘노동’ 자체를 ..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지젝의 혁명조건 탐색 지젝 덕분에 요즘 ‘혁명’을 자주 접한다. 혁명. 철지난 추억의 7080용어를. 지젝은 모두가 신념을 버린 시대에 신념과 혁명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는 미움 받는다. 지젝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지젝의 정치적 기획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국가체제 수립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미지의 타자로 존재하는 상징적 질서 속에서 “인간의 욕망,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지젝 역시 상징적 질서 속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해 미지의 타자이며, 평화로운 이웃들의 이면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욕망의 시장 체제를 초극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주체 형식으로서의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모든 작은 타자들을 하나의 총체적 집합으로 통합하는 예외적 큰 타자, 곧 헤겔의 입헌..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지젝의 반복, 은유, 혁명 반복, 중층결정, 죽음충동, 그리고 혁명. 내겐 삶을 구성하는 원리로 읽힌다. 니체의 계보학에서 사건의 반복에 민감해야한다는 걸 배웠다. 그 말이 뇌리에 박힌 건 나의 삶에 반복되는 실존의 고민과 고통들 때문이었다. 개인사이건 사회적문제건 ‘반복’을 겪을 때면, 아니 당할 때면 내가 꼭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복을 줄 세워 놓고 돌파지점을 애써 고민하곤 했다. 그런데 계보학에서 반복 분석은 사건들의 점진적 진보곡선을 추적하는 게 아니다. 어떤 역사적 배치 속에서 탄생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반복. 박정수가 강의안 1면 톱으로 다룬 반복. ‘왜 반복이 중요한가?’라는 헤드라인이 가슴을 때린다. 우리는 보통 반복을 과거의 어떤 것이 차이를 낳는 시간의 부침을 견디고 동일하게 되돌아오는 현..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소설가 '김연수'를 형성하는 세포 그렇더라. 중요한 것은 언어로 전달되지 않더라. 말의 소용이 닿지 않는 부분만이 내 것이더라. 살면서 말로 누군가를 설득해본 적도, 끌림을 당해본 적도 없다. 말은 장황해질수록 비루해진다. 설명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든다. 기표는 기의를 배반한다. 말하지 말지어다. 진실은, 진리는, 사랑은, 모든 위대한 것은 자체 발광한다. 죽비같은 깨우침을 선사한다. 터질듯한 설렘을 유발한다. 눈빛의 깊이, 침묵의 파장, 손의 떨림, 서로를 데우는 온기. 그런 비언어적 요소들이 온전한 소통을 이룬다. 그러니 영화 의 양미숙(공효진)의 컴퓨터에 붙어 있던 탐나는 글귀를 빌어 주장하고 싶다. '소통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목을 매겠다.' 헌데, 김연수는 소통에 목을 매고싶은지 모르겠다. 소통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묻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