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의 최전선

(156)
같은 표현을 두 번 쓰지 마라 접속어 12매 분량을 써야하는 원고가 13매 써졌다. 원고 1매를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 세 문장을 덜어내는 것도 있지만 글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접속사’와 ‘반복어휘’ 걷어내기다. 그냥 보면 안 보이는데 고르자고 작정하면 여기저기 박혀있는 접속어가 눈에 띈다 . 접속어가 많으면 글이 딱딱해지고 논리적, 설명적이 된다. 철학책을 생각해보라. 접속어에 자꾸 걸려서 글이 매끄럽지가 않다. 논조를 따라가기 어렵다. 나는 철학책에 한 줄 걸러 등장하는 접속어가 거슬려서 - 안 그래도 내용도 어려운데- 몰입에 곤란을 겪곤 했다. - 이상은 현실을 견디는 진통제다. (그러므로) 이상이 크고 높을수록 어지간한 통증은 다 녹아들어 간다. -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 내..
거리의 고통을 사랑하라 월악산 자락으로 짧은 여름휴가를 갔다. 남편 친구가 빌려준 펜션을 거점삼아 강으로 산으로 하루씩 다녀왔다. 낙동강 지류 어디쯤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아이들은 커다란 나룻배 모양 튜브를 빌려서 타고 놀았다. 나는 물이 무릎까지 닿는 바위에 걸터앉아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깎아지른 절벽과 그것을 와락 껴안은 듯한 초록빛 강물의 절경에 심취해있었다. 덕윤이가 노를 저었다. 겁이 많은 꽃수레는 반은 웃고 반은 굳은 채 앉아있었다. 오빠에게 천천히 하라는 둥 뭐라고 쫑알쫑알 말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후 보니까 배가 저만치 흘러가 있었다. 물이 ‘결코’ 깊지 않았다. 안전선 부근에서 노는 성인남자들 얼굴이 강물 위로 쏘옥 나와 있었다. 그런데 배가 자꾸 멀어져갔다. 아들 녀석이 방향을 틀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노..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군살을 제거하라 글의 목적이 과시가 아니라 소통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란 얘길 했다.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 이것을 안(못)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뭐가 불필요한 요소인지 ‘무지해서’이고 나중에는 ‘귀찮아서’이다. 아. 찔려 -.-; 일단 습관을 들여놓아야 한다. 나도 한 1년 동안은 글을 쓰고 인쇄해서 모나미 적색볼펜으로 고쳐 버릇했다. 다 걷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인쇄물을 보면 또 거슬리는 단어들이 있었다. 아무쪼록 꾸준히 하면 문장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첨삭지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괄호 치기를 권한다. 글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에 괄호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따로) 틈을 내서 -> 틈을 내서 ..
소통인가 과시인가 “나 글쓰기 좀 가르쳐 주라.” “그러고 싶은데.......어느 시인이 그랬거든. 효모에게 술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듯이 시 쓰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더군다나 내가 야매로 글쓰기를 배웠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뭘 가르쳐줘야할지 모르겠어.” “그런 거 말고!” “그래. 뭐 기본적인 기사작성법 같은 건 알려줄 수 있지. 가르쳐줘? -.-;;”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요즘 들어 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잦다. 그럴 때면 두 마음이 다툰다. 하나는 “진정 온갖 정성을 다해 가르쳐주고 싶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가르쳐줄 처지인가” 이다. 그러던 중 이 딜레마의 해결방법을 찾았다. ‘가르친다’ 대신 ‘나눈다’로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