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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옆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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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문 사진전> 천국보다 낯선 나, 길을 잃었어 자발적 백수의 길로 접어든지 석 달. 자신을 선천성 '길치'라고 규정한 그녀와 삼십 여분 수다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 시간 낭비이고 헛사는 것 같다. 슬며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왠지 훌쩍 여행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생을 놓아둠. 가만히 있음은 곧 정체라고 여긴다. 우린 이미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졌다. 왜 뭘 꼭 힘들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까. 해야 한다는 강박, 하면 된다는 환상이 쌍두마차로 우리 삶을 견인하고 있다. 죄의식 없이 마음껏 빈둥거리는 것도 고난도의 삶의 운영 능력이다. 휴식도 공부하기 못지않게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젊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엄마 말씀이 젊어 실컷 고생하고 이제 좀 놀아볼까 싶으니 몸이 아파서 말..
<파주>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황지우 시집을 한참 들고 다닐 때 란 시에 매료됐었다. 첫줄부터 흔든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 내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이 구절이 왠지 멋있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스산함과 사랑한 자의 처연함이 느껴졌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이 정도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값어치 있다’고 믿었다. 몸뚱이의 뼈 206개가 달그락 거리면서 몰락과 생성을 거듭하는 게 사랑이니까. 11월 첫번째 월요일 조조영화로 텅빈 극장에서 를 보고 저 시구가 떠올랐다. 의 박찬옥 감독 작품 는 시처럼 리듬감 있고 울림 있게 함축적으로 만든 빼어난 영화다. 남녀가 사랑하면 인생이 허물어지고 다시 조립되듯이 자본이 돈을 사랑해서 낡은 건물이 철거되고 다..
<30주년 기념공연> 다시, 정태춘 박은옥을 기다리며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 현관문 앞에서 이틀째 뒹구는 한겨레신문을 펴자 정태춘 박은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요즘 들어 신문을 외면했다. 괴롭고 무기력해지니까 안 봤다. 헌데 구석에 방치된 것은 신문이 아니라 시대의 진실이고 정태춘의 노래였다.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
<안토니아스 라인> 미래를 낳는 엄마-되기 여자는 출산을 거치고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젠더를 크게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호적과 아이에게 ‘몸’이 묶이기 전까지는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유로운 개체로 맘대로 살 수 있고 그래도 사실 큰 탈이 없다. 적어도 한 생명이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면 제도의 벽, 일상의 벽에 자꾸 가로막힌다. 맞벌이를 해도 애가 아플 때 눈치 보며 조퇴하는 것도, 회식 때 먼저 일어나는 것도 대부분 엄마다. 불편하고 부당하고 답답한 게 많다. 나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질서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고민은 고민대로 하면서 끼니와 빨래의 영원회귀를 견디며 아이와 함께 매일을 살아낸다. 개인적으로 육아의 과정에서 나를 무화시키는 경험은 특이했다. 단단한..
<날아라 펭귄> 집집마다 가족사진 왜일까 동네 엄마들이랑 만나면 재밌다. 웃다가 배꼽 빠진다. 애들 키우는 얘기, 남편 얘기, 시댁 얘기 등 일상적 사건이 생생한 입말로 생중계 되면 “맞아 맞아” 공감하다가 한바탕씩 웃음이 터진다. 우리끼리 말한다. “그 집에 안테나 끼우고 바로 방송국에 송출하면 시트콤 혹은 카메라 고발”이라고. 또 수다가 물이 오르면 자기도 ‘애 잡으면서’ 짐짓 그러지 말라고 서로 충고도 한다. 나부터도 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객관화되니 겸연쩍어 그러는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은 이런 우리네 일상을 소재로한 영화다. 2학년 아들 잠 안 재우고 3학년 수학 문제집 풀리는 엄마, 채식주의자 왕따 시키는 직장인, 퇴근시간마다 친구 섭외하는 처량 맞은 기러기 아빠,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정년퇴임 남성의 황혼이혼 소동 등 4개의 ..
<인디포럼 채무변제파티> 그렇다면 십시일반, 아니면 말고 쉬운 길 놔두고 가시덤불 길 가는 사람들이 있다. 농약 한통 쫙 뿌리면 한 소쿠리 가득 사과를 담을 수 있는데 굳이 농약 안 쓰고 고집 부려 수확량의 삼분의 일밖에 못 건지는 농부들. 고액의 족집게 강사자리 놔두고 극구 화폐랑 거리가 먼 인문학 전파하는 학자들. 해직될 거 알면서도 거리에 나서는 교사들. 밥 굶을 줄 알면서도 굳이 독립영화를 찍는 사람들. 만나본 바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의 면상은 대체로 밝다. 애환은 있어도 그늘은 없다. 가난이라기보다 '청빈'한 삶을 택했으니 자기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즐겁다. 이들이 모여서 ‘파티’를 열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즐거움의 무한 증폭이다. 인디포럼 채무변제파티-그렇다면 십시일반. 9월 12일 독립영화판 사람들이 일일호프를 열었다. ..
안치환, 인생에 술 한잔 사주다 안치환은 내게 큰사람이었다 크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다. 시대의 노래를 부르는 큰 사람. 광장에 어울리는 매끄러운 고음을 가진 큰 사람. 길가의 플라타너스처럼 키가 큰 사람. 그런 안치환이기에, 세상에 눈 뜬 이후부터 줄곧 동네의 앞산 마냥 내 삶의 배경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그였기에,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번 노무현 추모공연에서 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몸을 불태워 노래하는 그. 감동에 겨워 눈을 떼지 못하면서 바라본 그는 충분히 낯설었다. 마치 집에서만 보던 아버지를 지하철 인파 속에서 보았을 때처럼, 본래 모습을 본 것 같은 당혹감과 반가움, 애잔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감정이 묘했다. ‘큰 사람’ 안치환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 안치환. 그가 지금까지 '흐트러짐 없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식 인간이해의 '금자탑' 웃으면 지는 건데 극장에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평일 조조였다. 텅 빈 극장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벽을 치고 다시 나의 옆구리를 찌르니 웃음에 포박당한 기분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지나가는 장면은 홍상수영화답다. 주인공이 영화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하지 않다. 생활여행자의 길 떠남의 풍경인데, 거기에 배치된 인물들 간의 얽힘과 오가는 대사가 재밌다. 딱히 김수현식의 능란한 촌철살인이라기보다 능청맞고 투박하고 격앙되고 오버스러운데 그것들이 시의적절하고 적나라하고 섬세하고 의미심장하다. 같은 이유로, 예전에는 그의 영화가 재밌지만 불편하고 불쾌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부끄럽고 불편해서 재밌다. 홍상수 영화, 웃으면 지는 건데. 내가 변한 걸까, 홍상수가 변한 걸까. 주인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