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은유칼럼]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교통사고다 생각해라.” “시간도 흘렀는데, 옛날처럼 같이 산에도 다니고 만나서 술 한잔도 하자.” “아이를 잃은 건 슬프지만 너는 그만큼 보상을 받지 않았냐?” 세월호 유가족이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다. 상대방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행동도 배려가 되진 않았다.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시킨다. 커피 한 잔,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앉아계세요, 제가 타드릴게요.” 하고 어딜가도 유가족 자리는 따로 마련한다. 지나친 배려는 때론 배제가 된다. 유가족이 술을 시켜도 되나, 화장은 해도 되나, 여행 간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쩌나 지레 주눅이 든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발간된 유가족 육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 나온 몇 가지 에피소드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비통함에다가 거친 말들과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다.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다.(론 마라스코)” 그래서 부모들은 모임을 꺼린다. 광화문 농성장에 모여있어도 말은 돈다. 울기만 한다고 뭐라고 하길래 웃었더니 웃었다고 다시 뭐라고 하니까, 서로 이렇게 충고한다. “간간히 울어.”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이 나라는 아이들만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세월호의 슬픔에 빠진 유가족도 손 잡아주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다. 상처를 건드릴까봐 고인의 이야기는 삼갔다. 예의인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17년 키운 자식을 한순간 잃었는데, 갑자기 이름도 불리지 않고 존재가 싹 지워진다면 그건 너무 쓸쓸한 일일 것이다. 


우린 슬픔에 무지한 종족이 됐다. 세월호 이전에도 슬픔은 허용되는 삶의 모드가 아니었다. 슬픈 사람은 약자로 분류되고, 약자는 구제의 대상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공적 발언의 장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은 각자 삭혀야 할 사적 과제로 여긴다.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 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다.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라다. 


세월호 가족 이야기가 그래서 귀했다. 5년이란 고통의 시간을 견딘 목소리가, 슬픔에 단련된 말들이 쟁쟁하게 빛나는 슬픔의 교과서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이 무엇인지 배운 것만으로도 내겐 공부였다. 그리고 좋은 책이 그렇듯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담겼다. 슬픔을 기르는 법이 정신을 가꾸는 길로 통한다.


“이 시간이 내 정신 세계를, 중요한 게 뭔지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성숙하 게 만들어놨다”고 이지민 엄마는 고백한다. 이영만 엄마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세상에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오준영 엄마도 깨어났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말한다.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나한테 계속 강요한다”는 이재욱 엄마는 멋지다.


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아이들은 여전히 곁에 남아 부모의 결정에 개입하고 선한 영향을 미친다. “집에 들어가면 회의 녹음한 걸 세 번, 네 번, 어떤 때는 다섯 번까지 들어요. 이해를 하려고요. 우리 아들이 옆에서 자꾸 공부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 호성이 엄마의 말이다. 세월호의 시간 5년, 유가족은 주변에서 그토록 권하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한 사람의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복귀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땅에 슬픔의 눈물을 떨구어 진실의 언어를 심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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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맘썰렁 [2019.04.10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는다고 없어지지는 않지요. 다들 같이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요.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2. 은-유 [2019.04.12 2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맘썰렁.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월호 부모님 보고 더 믿게 됐고요.

교보문고 365 인생학교 - 이해와 공감의 글쓰기

[글쓰기의 최전선]

 

강연 신청: https://bit.ly/2WMuh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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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북뉴스 - '다가오는 말들' 신간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일상에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치던 삶의 작은 결을 좀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고, 그러면서 전에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래서 전보다 손가락 마디 하나 만큼이라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이다. 

은유 작가의 에세이 『다가오는 말들』은 그렇게 읽고 쓰고,아니 그 전에 낯선 세계와 만나고 듣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음을 열고 낯선 세계에 한 발자국 다가갈 때 나에게 '다가오는 말들'의 경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가오는 말들』의 은유 작가와 만났다. 질문을 받으면 먼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떠오르고, 천천히 말을 꺼내고, 잠시 멈추어 서서 단어를 고르는 모습이 은유 작가의 글을 읽을 때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라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 인터뷰집은 몇 권 내셨는데 에세이로 나온 책은 오랜만이에요.  

저는 책을 너무 자주 내는 것 같아서 약간 걱정인데요? (웃음). 생각이 변화되거나 편견이 깨지거나 혹은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되는 그런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서 글로 남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공유하고 싶거든요. 『다가오는 말들』은 그런 제 일상의 경험에 대한 글들이에요. 

 

제목인 '다가오는 말들'이라는 표현이 저는 참 좋았어요. 저도 일 때문이지만 여러 작가님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원래 맥락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말들이 그때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이나 고민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을 종종 경험했거든요. 그럴 때는 ', 이 말들이 나에게 다가왔구나!' 하고 느껴져요. 

맞아요. 우리가 많은 말들을 주고받고 듣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나에게 다가와요. 내 삶의 고민이라거나 문제가 있을 때 그런 말들이 다가오면 더 나의 것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낯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낯선 자극을 받는 환경에도 많이 노출돼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나는 학인들과 그분들이 쓴 글에서 내가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경우도 많고, 강연을 가서 청중들에게 저는 생각도 못 해본 엉뚱한 질문을 받기도 하니까요. 책을 읽다가 다가오는 말들도 있고요.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을 부지런히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글을 쓰고 있어요(웃음). 

 

# 글쓰는 삶

 

글쓰기 수업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계신데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사람과 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책에서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은 단순히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기도 하던데요. 

글쓰기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직업이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자기 고민이 있는 분들, 풀고 싶은 문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분들이 많죠. 그냥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고요.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좀 더 책임감 있게 글을 쓰게 돼요. 나만 본다 생각할 때는 좀 거칠게 정리 안 된 생각도 쏟아낼 수 있지만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단어 하나도 정확하게 쓰려고 하고 글에도 좀 더 공을 들이게 되고요. 

일단 밖으로 나온 생각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위로나 공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반론을 듣거나 내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전해들을 수도 있죠. 내 생각에 대한 검증이 되는 부분도 있고요.  

 

글과 말을 통해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할까 생각해보면, 내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왜곡 없이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어요. 이해 받고싶어 꺼낸 이야기인데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혹은 너무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면 더 상처가 되기도 하거든요. 

자기 입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불편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고요. 성숙한 태도는 서로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는 경험이 많아야 나올 수 있는데, 사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고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죠.  

듣는 사람은 최대한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해야 해요. 나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 자세, 평가나 판단하려 하지 말고 이해해주려는 태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그때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말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요. 그렇게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또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일상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고통들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감정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을 아예 피하는 경향도 있고요.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면 '그런 일이 어디 있어? 너무 왜곡된 것 아니야?' 그렇게 잘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단은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최대한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섣부르게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그랬구나'하고 동조해주고,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의 말을 하고,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 지 모르겠으면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겠냐고 물어보고요.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괜히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위축될 필요도 없고요. 그냥 고통 역시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표현하면 좋겠어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크건 작건 누구나 다 고통을 겪어요. 고통에 대해서 정중한 태도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고통에 대해서 마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경직되게 받아들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글을 읽고 쓰는 것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고, 확실히 글을 읽고 쓰게 되면 타인에게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되요. 그리고 타인에게 공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게 되고요.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거든요. '차라리 몰랐다면 더 속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고요.  

타인을 이해하는 건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가 커지는 일이에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내가 힘들 때 내 고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내 고통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지 모르게 되잖아요. 문제를 돌파해야 할 때, 내가 서툰 부분이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요. 

"나는 힘든 일이 없는데 왜 남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이 점점 둔감해지고, 남에게 상처 주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이야기하게 돼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죠. 

 

 

# 글 쓰는 사람

 

『다가오는 말들』에 담긴 글들은, 일상과 책에서 읽은 것, 그리고 작가님의 생각이 잘 엮이고 잘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과 책, 그리고 생각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요. 

계속 고민을 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게 하기 위해 퇴고를 많이 해요.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요.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요.  

세상에 노동 아닌 것이 없는데, 글쓰기도 노동이거든요. 계속 앉아서 일을 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써야 하고 신체도 써야 하니까 힘들죠(웃음). 

 

요즘은 사이다, 일침, 이런 단정적인 말들을 좋아하지만, 『다가오는 말들』에서는 그런 확고한 결말보다는 애매하고, 모호하고,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느낌,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결론에서 뭔가 맺어줘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삶에도 결말이 없는데 글에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미화하고 봉합해서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는 것도 바르지 않은 것 같고요.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고민 중이면 고민 중인대로, 내가 오늘 생각한 지점이 여기까지면 여기까지라고 말하면서 글 쓸 때의 느낌과 상황으로 단락을 매듭 지어요. 거창한 이야기를 하면 의미도 없고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잖아요. 글쓰기 수업에서도 학인들에게 결말에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고요. 

 

글 쓰는 자아와, 생활인인 나의 자아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난다기 보다는, 글을 쓸 때 좀 더 차분해지고 사려 깊어지는 것 같아요. 글 쓰는 행위의 특성이겠죠.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해야 하니까요. 말은 날아가버리지만 글은 아니잖아요. 논리적 모순도 너무 금방 드러나니까 더 심사숙고 하게 되고요.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어떤 문제를 직시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게 정교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글을 쓰면서 '그래, 이래야겠어!'라는 스스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생각도 하고 글로 남겨 놓아도 막상 현실에서는 그 생각대로 살지 못하거든요. 작가님도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셔서 현실에서도 굉장히 '센캐'일거라고 생각했는데(웃음) 글에서는 여전히 '엄마'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시원하게 떨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나 혼자만 바뀌어서 되는 거라면 생각한대로 실천하고 행위 하면 끝이지만, 관계 안에 있으니까요.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만 상대방은 아직 생각이 없다면 그 사이의 간극을 꾸준히 노력하면서 바꿔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당장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결을 맞추어 간다는 느낌으로요. 저도 아는 대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단숨에는 안 돼요. 

 

# 가까이 있는 낯선 세계

 

책에서 우리 일상에서는 좀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저에게 가장 낯선 존재는 청소년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청소년들하고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한 기억이 정말 없더라고요. 

사실 청소년들과 만날 접점이 없어요. 사회적으로 청소년들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그리고 아이들도, 어른들은 공부 하라고만 하고 명령이나 하지 자신들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요. 청소년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고 미성숙한 존재,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존재로만 치부하는 거죠.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다 성숙한가요? 그렇지도 않잖아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미성숙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놀라운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청소년들을 만나면 많이 배워요. 

 

'불행'도 가까이 있지만 낯선 세계인데요. 황현산 선생님의 『잘 표현된 불행』에서 끌어낸 생각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늘 '행복'만 찾고 불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늘 불안하고요. 하지만 불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다고요.  

왜 꼭 행복해야 하죠? 사실 행복하기가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처럼 사회 안전망도 없고 노동도 과중하게 하고 경쟁도 심하고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행복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고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고통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고통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야 할까요. 부정도 긍정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마치 불행이란 있어선 안 될 것처럼 거부하는 게 더 큰 불행인 것 같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이상형이 너무 규격화되어 있기도 해요. 실제로 그런 규격화된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도 규격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하다, 불쌍하다, 그런 시선을 받고요. 

우리 사회가 남과 다른 걸 못 견뎌 해서, 아니면서도 다 그런 척, 괜찮은 척 연기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어떤 점은 힘들고 어떤 점은 힘들어요. 행과 불행이 공존하고요. 그런데도 아닌 척 하느라 에너지가 많이 들죠. 

 

어른들의 문제는,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걱정만 하는 거라고 쓰신 부분에도 공감이었어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경험도 많고 지식도 쌓일텐데, 이상하게 더 재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아서 더 쉽게 시작을 못하기도 하거든요. 

해 본 후에 아니면 말면 되는데 말이에요.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더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뭔가를 한다고 해서 그게 인생을 확 바꿔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 좋겠어요.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이 말을 많이 해요. 실패할 권리를 누리라고요. 글 한 편 쓸 때도, 좀 못 쓰면 어때요. 우리가 백일장 나간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 응모하려고 모인 것도 아닌데, 마음껏 쓰고 실패도 해봐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요.

 

뭐든지 해보기 전에는 재단할 수 없어요. 이것저것 해보고, 이건 나에게 안 맞는구나, 그런 걸 알아야 경우의 수를 점점 좁혀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실패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생각해요. 그냥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이고, 적어도 내가 그 일하고는 안 맞는다는 것이라도 배운 거잖아요. 저는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 느끼는 게, 난 역시 운동을 안 좋아하는구나, 하는 것이에요(웃음). 같이 다니는 친구는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흥미도 못 느끼겠더라고요. 이 시간에 책을 더 읽을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그래도 꾸준히 수영을 다니고 있지만요.   

 

 

# 다시, 읽고 쓰는 삶

 

읽고 쓰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쓰셨는데요. 

제가 글에서 쓴 건,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로 아이들에게 책읽기는 강요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중요하니까 꼭 읽어야 한다,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책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절실함이 없을 때 책을 읽으면 들어오는 것도 없고 다가오는 말들도 없어요. 

 

이건 중요하니까 꼭 해야 해,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책만이 진리다, 글을 써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단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읽기와 쓰기는 사려깊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에요.  책 한 권 안 읽고 글 한 줄 안 써도 지혜롭게 사는 분들도 많아요. 그리고 책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지만 자신이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한창 뛰어 놀고 싶은 아이를 붙잡아놓고 학원 보내듯 억지로 책 읽고 글 쓰게 하면, 아이들은 금방 알아채서 어른들이 좋아할 얘기만 써요. 글쓰기는 진실해야 하는데, 자꾸 꾸며내는 글만 쓰면 그게 또 뭐가 좋을까요. 저는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읽고 쓰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줘야 해요. 많이 읽고 쓰는 것보다 존중받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동안 인터뷰집과 글쓰기, 에세이를 쓰셨는데, 새로운 장르나 형식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새로운 장르나 형식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특별히 없어요. 저는 논픽션,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르포가 많이 읽히지는 않죠. 내용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많이 다루다 보니 독자분들이 재미있다고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벽을 허물고 르포를 편안하게 읽힐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우리가 살면서 나와 상관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리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세상에 나와 상관없는 문제는 없더라고요. 상관이 있는 줄 몰랐을 뿐이죠. 나와 관계 없어 보이는 사회문제들이 사실은 나와 관계가 있었구나, 그런 걸 보여주는 르포를 잘 써보고 싶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인문]  다가오는 말들
은유 | 어크로스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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