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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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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글쓰기 11기
슬픈 인간- 나는 아직도 '돈 몇푼' 갖고 싸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샘이 젤 유명해요.” 4년 만에 만난 지인의 첫인사다. “작가님이 유명해지고 가족들 반응은 어떠냐”라는 질문이 북 토크에서 나온다. 유명하다는 게 뭘까. 유명한 사람은 유명해서 유명해진다는 순환 논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성정의 소유자로 일희일비를 모른다. 군인 아들은 민가의 사정에 어둡고, 딸아이가 가장 실감할까.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났는데 18층 누르니까 너네 엄마 작가냐고 물어보셨어.” 그렇다.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택배 물량이다. 내가 물욕으로 사들이는 책 외에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증정 도서가 늘었다. 글쓰기 수업을 한 지 어언 10년, 학인들이 낸 ..
이상한 정상 가족 - '불쌍한 아이' 만드는 '이상한 어른들' 인터넷 광고 페이지에서 아기 사진을 보았다. 통통하게 오른 볼살과 한 줌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가 누워서 천장을 보는 옆모습이었다. 작은 생명의 연약함, 무구함, 천진함이 몽글몽글 만져졌다. 자세히 보니 어느 사회복지 단체의 광고 홍보성 페이지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은 아이들을 돌본다는 그곳은 이웃의 관심을 당부했고, 게시물 아래에는 ‘후원했다’, ‘우리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돕겠다’, ‘천사 같은 아기야 힘내라’는 댓글이 달렸다. 때는 연말, 날은 춥다. 원래 아기 사진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는데다 순탄치 못한 서사까지 더해지니 나 역시 그 페이지를 휙 나가지 못하고 어정거렸다.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부모 없이 자라는 게 가여워서가 아니라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
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딸이 있어 참 다행이야(57쪽).”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이모는 나를 구석에 있는 벤치로 데려가서 앉혀놓고 손을 부여잡고 연신 말했다. 딸이 있어서,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아버지랑 오빠 남겨두고 가면서 엄마가 어떻게 눈을 감았겠니, 네가 엄마 대신 잘해라. 너만 믿는다. 그날 문상객들은 급작스러운 망자의 죽음에 경황이 없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시간 일찍 부고를 들었을 뿐인 나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내가 딸이란 사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모의 말은 힘이 셌다. 초자아의 명령처럼 나를 딸로 리셋했고 행동을 지배했다.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삼시세끼 엄마가 차려주는 밥으로 연명한 아빠, 아들로 태어나 남자로 살다가 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