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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기억,기록

야외에서 지하에서

추석이 끝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 대학원 논문 쓰는 이들도 만나고, 지역잡지 만드는 이들도 만나고, 투쟁하는 이들도 만났다.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 실내 공간인 강의실에서 진행하는데 최근에 두 번의 색다른 만남이 펼쳐졌다. <해방촌 남산골> 이라는 지역잡지 만드는 이들과 강연에선 경리단길 골목 안쪽 건물 테라스에서 야외 수업을 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하고 안온한 초가을밤. 젊은 청년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호사를 누린 것 같다. 


또 하나는 지하통로에서 강연했다. 광화문역에서 4년 째 이어지는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 농성장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6시. 근처 빌딩숲의 직장인이 서서히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우뢰소리처럼 들렸다 사라졌다 하고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간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강조했던 '주인공 의식을 버리세요'를 나에게 세뇌했다. 난 부끄럽지만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 장애인 동지들에게 좋은 글 이야기, 자기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쓰는지 이야기나누었다. 


한분이 강의 끝나고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자기가 쓴 글을 보내줄테니 읽어달라했다. 연락처를 드렸고 긴 문자메시지가 왔다. 장애인은 명절에 왜 외로운가, 외로운 사람이 되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아직 답장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 피드백을 해드릴까 고민중이다. 


광화에서 집으로 오는 길. 상념에 잠겼다. 20대에 나는 노조 상근자로 전국 60개 지점 분회 방문을 다녔다. 전국을 안 가본 도시가 없다. 30대에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또 전국을 누볐다. 40대에 이른 나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러 또 방방곡곡 다닌다.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다. 20대에 난 30대에 작가로 일할 줄 몰랐고 30대에 난 40대에 강사로 떠들고 다닐 줄 몰랐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다. 50대에 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하면 떠나야할 때가 자연스럽게 온다. 낙엽이 지듯 해가 저물듯 마음이 지는 때가. 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그걸 알아차리려면 정신이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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