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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9차시-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수업 시작하기 전에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남산에서부터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현재 상황 그분과 밀땅중이신 나방님의 고민을 듣고 말을 나누었는데요. 남자는 다 그래! 남자는 왜 그래? 결혼은 하는 게 나은가 아닌가하는 참으로 젠더적 규범적 편견에 얽매인 허망한 말들이었죠. 자기가 살아봐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 김수영의 표현을 빌자면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헛소리도 반복하면 진실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도 김수영은 말했습니다. 그렇죠. 우리 삶이 매양 공회전하고 중구난방이고 헛발질 같은데 삶을 표현하는 말들이 그와 같지 않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래도 그런 삶에 질서와 의미와 향기를 부여하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김수영은 글을 썼고, 우리도 글을 씁니다. 몸부림이죠. 안간힘 제 9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시크하고 인정 많은 도시여자 맑음님의 글. 글도 그렇습니다. 랩처럼 툭툭 내뱉는 문장들이 삐딱한 시선이 있어서 긴장하면서 읽게 돼요. 그런 관점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구체적으로 필자의 문제의식이 무언지가 알 수 없고 난데없이 자기혐오로 마무리되어서 글이 맥이 탁 풀려요. 그걸 고백투의 문장으로 구구절절 표현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한 정보나 누설이 너무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너절해진다’ ‘지켜냈다’ ‘혐오한다같은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로 숨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요. 사건에 대한 묘사를 뒷받침 해주는 자기 생각이나 판단의 부분에서 더 물고 늘어지세요. 삶에 내재된 긴장이 글에 반영된다면 글 전체에 힘이 돌 것입니다.

 

목울대의 떨림과 일시정시가 매력인 이슷의 낭독. 글자 빽빽한 4페이지짜리 글을 읽고 났더니 같이 긴 여행을 한 것 같아요. 가파른 계곡도 만나고 넘어지고 그 김에 숲에서 큰 대자로 누워 하늘의 별도 바라보고 검고 시커먼 것이 나와 냅다 뛰기도 하고 그리고 오롯이 걸으며 끝났네요. 6기 때 처음 쓴 글에서 행간에 맴돌던 힘이 불쑥불쑥 힘줄처럼 튀어오르는 게 보였는데 이번 글은 그 맺힘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잘 녹여냈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오래 붙든 집념과 시도가 일궈낸 거죠. 자기 느낌과 생각,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게 한결 매끄럽고 독창적이에요. 폴리우레탄 폼. 누구나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구멍과 균열. 사람 사는 집집마다 저것이 필요하다는 해석과 비유는 참 탁월하고 적절합니다. 꾸준한 글쓰기가 이슷을 어디로 데려갈지 보고 싶습니다.

 

한 페이지짜리 글에서 몇 번을 키득거리게 하는 게 내복곰님 글의 매력입니다. ‘마치 앞 쥐는 뒷 쥐가 달려오니까 앞으로만 뛰는북유럽 들쥐 레밍의 이야기 같은 표현이요. 또 불평이 품격 있어 보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방치다, 같은 인식은 날카롭고요. ‘인권부장님 왜 저렇게 해맑게 앉아계셔. 화장 하나도 안 번졌어.’는 감정표현이 살아있습니다. 아이들의 파닥거리는 날개짓이 눈에 선연해요. 그 아이들과 더 멀리 더 높이 자유하고 싶어하는 내복곰님의 고민, 소심함도 재미납니다. 그 인권부장님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흥미롭게 따라갔는데 마지막에서 그래도 나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어주신다. 어른이시다.’라고 끝나니까 너무 가파르다는 느낌. 아름다운 급마무리 같아요. 이 부분을 갈등인 채로 남겨두는 열린 결말도 괜찮아요. 내복곰님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시트콤의 발랄함과 다큐의 진지함이 공존하는 혁신학교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번 글이 그동안 글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수민이, 성수, 건이의 이야기. 학원을 다니는 건 아이들인데 아이들의 영혼이나 목소리는 없고 십인십색 엄마들의 요구가 드세네요. 누구는 과제를 빼달라, 누구는 또 더 내달라. 이런저런 사례들이 나열된 것만으로도 한국사회 교육문제, 사교육의 현실, 엄마들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학원 다니는 엄마들, 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물 한번 써보시죠.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명 두명 아이나 엄마와의 개성과 특성을 잘 살려보세요.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관찰을 기록하면 좋은 르포르타주가 될 거예요. 다만 초롱샘의 사유의 호흡이 조금 더 길어야합니다. 나를 장사치로 생각하는 걸까, 피곤하고 고독하다에서 더 나아간 무엇. 유사한 사례의 정보나 인식이나 그 현실에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연습을 한다면 글이 더 탄탄해지겠지요.

 

오랜 침묵 끝에 나온 글. 나는 왜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는지는 자신에게 궁금할 정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우니님의 선언은 무척 도발적입니다. 그런 깡다구와 솔직함이 좋아요. ‘글쓰기에 필요한 집요함과 결핍이 없다, 는 자기분석까지. 근데 좀 불친절 합니다. ‘떠나버린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고요. 현장에서의 반짝거리는 날들에 대한 진술은 홍은전 선생님에게 빼앗겼다고 해버리는 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태도입니다. 진실함이 안 와 닿으면 섭섭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글에서 내가 하고픈 말 괴테가 다했다, 그러고 끝나면 장난하는 거 같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니님의 일상과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턱 고이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느라 욕보셨고요. 마지막 편, 기대합니다.

무려 몇 건의 이별이 나오는 글인데 선유님 특유의 잔잔함이 있네요. 가슴을 압박하는 통각이라고 하셨는데 글이 좀 지독하면 좋겠어요. ‘있던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 내 삶에 아직 그 사람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게 강력한 순간이었다는 게 설명이 아니라 독자도 통각이 느껴지게요. 나는 생애 최초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정말로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사례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말 노력했구나, 이번에는 이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느낄만한 단서가 이 글에서는 부족합니다. 그걸 촘촘히 그리고 세세히 다시 한 번 써본다면 선유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전화를 건 그와 존재를 다한 사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좋겠어요.

 

수많은 벼랑을 상상했고, 자신을 벼랑에 내몰았던 이야기. 글은 벼랑까지 온 것 같아요. 이제는 인식을 멈추고 떨어지지 않게 뒤돌아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팽팽한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세상이 주는 기울기에 몸을 맡겨보는 주인공. 마음이 편안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겠지요. 희망이 근거 없는 것처럼 절망도 근거가 없음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내재아인 그 아이가 맷집이 단단해진 톰슨님의 품에서 마음껏 발 구르고 뛰어놀 수 있게요. 글 자체만 본다면 고치기 이전 것, 처음에 몸을 구르는 나를 본 장면으로 시작한 글이 더 긴장감 있고 좋았어요. 치밀함과 성실함은 글쓰기에 좋은 미덕이죠. 내면을 향하는 이 섬세함의 미학이 자신과 연결된 세계를 넘나들며 글이 더 활개치고 넓어지면 좋겠어요.

 

김수영문학관에서 얘기한 그 말들에 대한 건가요. 말들에 대한 정보가 없이, 나를 벼랑으로 몰아세웠다고 하니 글과 독자가 연결될 매개가 없습니다. 화났고, 외롭고, 슬펐고, 갑갑했고 같은 설명적인 단어는 나르시스적 감상에 빠지기 쉬우므로 피해야합니다. 가슴에서 회오리치는 말들, 나를 상처주고 간 사람들을 하나씩 차례로 쏟아놓고 헤아려보세요. 한해 한해 사람사이가 어려워지는 것은 관계가 넓어지고 자아도 혼란스러워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성장통이죠. 당시는 힘들어도 단단해질 거예요. 새로운 세계로 호기심 안고 나아가고 심연을 확인하고 절망하고 고민하게 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요. 토론연극에 대한 정보와 설명 기쁨은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그 단락은 글에도 힘이 있어요. 토론연극을 배우면서 생겨난 갈등을 토론으로 봉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도 글의 긴장감을 주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물음들이 커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상대방과, 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싶은가, 본인이 말한대로 큰 물음으로 도망가는 현실 회피는 이것으로 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