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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책 - 보통의 경험, 아주 특별한 용기

이걸 다 읽어야하는데머리맡에 책을 두세 권 늘어놓고 손에 한 권을 꼭 쥐고 이불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나의 취침 의식이 되어버린 일상의 풍경이지만 6월 들어서는 더 쫓겼다. 새로운 동료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다. 관련 서적 6. 베개보다 표면적이 넓다. 그런데도 책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꿈의 세계로 빠져버리곤 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다급했다. 경험과 정보와 감각 면에서 나는 한참 뒤떨어졌으니 분발해야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주변에서도 걱정했다. 내가 성폭력경험자들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경험이 없는데 그들과 같이 수업할 수 있을까?”

 

나에게 말을 건 이들은 당연히 내가 성폭력 경험이 없다는 전제 하에 말을 시작했다.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있어도 말 못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그랬다. 일상에서 마주치고 같이 책 읽고 말을 나누는 여성들에게서 성폭력 경험자의 가능성은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다. 당연히 없는 듯이 말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대학을 다녔음을 전제하고 초면부터 학번과 전공을 묻는 사람들처럼) 그런데 수업이나 세미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만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여성이기에 겪어야하는 아프고 내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친구가 말해주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그렇지 여성의 40%는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나온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DIY가이드'북 이름이 <보통의 경험>이란다. 네가 수업을 하든지 모임을 가든지 그 무리에서 최소한 두 명은 있다고 생각하면 돼.” 한숨이 새어나오고 고개가 숙여졌다. 고통이 만연한 세상에 적응하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쉴 틈과 빈 틈이 없다. TV나 뉴스에 선정적으로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에휴, 저 아이 (혹은 저 여자) 이제 어떻게 사니무심코 동정을 실어 말을 보태는데, 그 말이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삶을 살아가는 성폭력경험자의 고통을 들쑤셨을 지도 모른다.

 

인권감수성과 젠더감수성은 비례하지 않는다. 아니다. 젠더감수성 낮은 사람을 인권감수성이 높다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 아닌 자, 휴머니스트라 할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실존의 고통에 꽤나 연연했고 여성의 고통에 절규했어도 성폭력 경험자의 고통에는 무심했다.  나의 무지가 확인될수록 수업이 걱정스러웠지만 애초에 글쓰기 수업의 취지를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다른 내가 되기 위한 글쓰기. 다른 수업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듣는 자이면서 배우는 자이다. 차이가 있다면, 배우기 위해 더 열렬히 듣는 자가 되리라는 것. 몰입하여 듣다보면 더 잘 배울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니체 말대로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되기 위해, 듣는 신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철저히 나의 몫이다.

 

지난 주 토요일 622일에 첫 수업을 마쳤다. 십대가 세 명이나 왔다.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20대 동료들과 노는 법은 얼추 배워 가는데 이제 십대로 연령을 낮춰야 한다. 교실에 들어와서 눈을 잘 맞추지 않던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쉬는 시간에 말을 걸어주었다. “선생님, 스누피 닮았어요.” “오잉? 스누피? 성격 좋아 보인다는 얘길 하고 싶구나. 근데 스누피는 너무 안 섹시한데…^^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내가 떠들고 있는 사이 내 페이퍼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들을 만났을 때 깨지기 쉬운 유리잔 다루듯이 조심조심 해야하나, 성폭력경험자로 대상화 하고 범주화 하는 것이 옳은가’ ‘인간 보편의 고통의 틀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해야하는 게 낫지 않을까수업전에는  나의 태도를 두 갈래로 설정하고 고민했다. 지금은 두 경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을 꺼내고 다루고 익숙해지는 일이 대범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의 윤리를 하나로 정해놓고 쉽게 타협하려던 마음을 접는다. 고통은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책이든, 음악이든, 사람이든. 고통을 들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어야 한다. 글쓰기 수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섬세하게 결을 맞춰가면서 서로의 타인이 되는 것이다. 다만 상황의 특수함, 사건의 각별함, 실존의 절실함을 간과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 규정이 아니라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시간. 한 계절 동안 함께 수업을 하고 나면, 서로가 이전과는 조금씩 달라져 있기를, 그것이 책이든 사람이든, 이전에는 없던 친구가 생겨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