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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삼십세> 과제리뷰_이미지_과거_기억

그 때가 언제였던지, 저는 한 사람에게 단교를 선언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고마워. 그래도 나 죽을 때 그날 그 기억은 떠오를 것 같아.” 기억에 남는 생의 장면들. 돌이켜 보면 무덤에 안고 가고 싶은 이미지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여기서 이미지가 단순히 빼어난 영상미를 일컫지는 않겠지요. 독일어는 이미지(Denkbild)가 이미 사유-이미지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미지란, 사유를 자극하고 확장시켜 자기 속성을 변환시킨 어떤 생의 강력한 순간이겠지요. '전면 진실'의 환상을 안겨주는 그런 느낌들, 오롯한 느낌들. 헤세도 말합니다. '이미지가 되지 않는 과거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우리 수업에서는 기억-기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구 작업이 힘들지만, 자기 삶을 성찰하고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해볼 만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시고요. 책을 읽는 일에 대해서도, 내용이 몹시도 난해하여 - 정확히 말하면 익숙하지가 않아서- 나를 밀어낸다면, 그럴수록 붙들고 늘어져야죠. 어떤 내용이 쉽고 달콤하면 공부가 아닙니다. 기존의 사유의 틀을 확장하는 작업이 공부니까요. 등산하면 근육이 아픈 것처럼 힘들어야 정상이에요. 책을 읽을 때는 내 삶에 넣고 텍스트를 창조적으로 회전시켜보세요. 그럼 조금 재밌어져요.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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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세. 군더더기 없는 문장. 운율도 좋고. 술술 읽히고. 그런데 결정적으로 주제의식이 안 잡혀요. 오십세의 방황. 격정이 모호합니다. 생애주기에서 오십세 여성이 어떤 일로 고민하고 괴로운지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아래의 문장에 사례를 붙여주세요.

 

* 내 일에 최선을 다 하지만 조금의 만족도 느낄 수 없다. => ‘나의 일에 대한 규정이 필요해요. 어떤 일인지. 대외활동인지. 엄마 아내로서 일인지. 모두 다 인지. 그리고 어떻게 최선을 다하는지 구체적으로.

*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에서 나가고 싶다. 변화하고 싶다. =>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가 무엇인지. 사회적 제도나 관습에의 얽매임인지. 자기 한계인지. 변화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 고독과 외로움의 상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여행이후의 긍정적 변화인가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고민하고 방황할 기력이 없는 건지 등등. 구체적으로.

 

이러한 내용에 살이 붙어야 매일 매일 멍한 상태로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운다.’ ‘한 여름에도 손발이 시렵다.(->시리다) 이런 멋진 문장들이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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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과제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네요. 문장이 명확하고 사례별로 자유의 정의를 변주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 외로운 환경 탓에 -> 누구랑 어떻게 살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외롭겠다는 판단은 독자가 하게끔.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죠. (말하기 힘들면 괜찮고요^^)

* ‘그 뒤로 나는 하고픈 대로만 하는 게 자유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이 문장이 설득력 있으려면 한용운의 복종과 자유의 개념의 인과관계를 메워주세요. 지금 헐거워요.

*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최소한의 반항들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자유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라는 것을 배웠다. -> 좋은 문장

* 한 커풀 (->한 꺼풀) 위선의 가면을 쓰고 정말 좋은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던 나의 한없이 약하고 추한 본모습을 본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나를 보고서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아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 좋은 문장

* 그것은 내가 가장 힘든 순간들을 견뎌온 힘이 아주 낯선 사람들의 도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낯선 사람의 도움이 어떤 건가요? 앞의 내용과 연결 없는 전언 때문에 메시지 수용에 혼란이 와요. 보충해주세요.

 

* 마지막 단락, 조르바 묘비명 부분은 없는 게 나아보입니다. 사족 같아요. 자꾸 설명하면 글이 늘어져요. 아쉬울 때 끝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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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글로 쓰는 것이 꼭 치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 된다고 볼 수도 없어요. 아마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거예요. 중요한 것은 시도같아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면으로 섬세하게 응시하고 풀어내어 마주보려고 시도했다는 점. 이렇게 살아보기도 하고 저렇게 살아보기도 하는 과정의 가치를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유의미하고 소중할 거예요. 투명하게 걸러낸 생의 장면들.

 

이런 작업을 통해 괜히 말했나?” “남이 날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더 자유로워집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는 것이 자유의 제1 조건이 아닐까 싶어요.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 앞에 먹잇감처럼 던져지는 것을 피해서 자기에 몰두하는 행위를 거울놀이라고 명명했지요.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고 규정하고 보호하기. 거울놀이가 소극적 방어라면 글쓰기는 적극적 방어지요. “나는 글쓰기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놀이밖에 없었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그런 뜻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삶을 해석하는 일은 시도해볼만 하고, 잘 해냈어요. 문장교정 및 구성에 대한 고민은 더 읽어보고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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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나온 좋은 글입니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이고. 유딧님에게 내재된 를 더 보여주면 더 좋은 글 되겠어요. 첫 문장. ‘분명 행복했어야했다를 아예 빼거나 연결시켜주세요. ‘나는 가족을 벗어나 그토록 열망하던 여행 중이다라는 식으로.

 

* 함께 있어도 종종 혼자였다. 셋이 걸어가도 나는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하여 혼자 걷는 것을 즐겼다. -> 주어 넣어주세요. ‘가족과 함께 있어도 나는 종종 혼자였다. 남편과 아이와 셋이 걸어가도 나는 앞서거나 뒤쳐졌다. 혼자 걷곤 했다.’ 

* ‘거리낌 없는 행동과 젊음을 잠시 탐낸다. 튼튼하고 길쭉한 다리. 아름다운 남성성! 줌을 거둔다’ -> 유닛님만 쓸 수 있는 좋은 문장.

 

* 이제 겨우 8일 째였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의무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분명 행복했어야 했다.

-> 겨우 8일째.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리라 여겼다. 의무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추측대로라면 분명 나는 지금 행복해야했다. 그런데 외로웠다.

 

* 남편에게 온 메시지를 공개할 수 있음 하는 게 마땅해요. 유딧님이 가정의 품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부분이라서요. 가정의 안온함. 미움의 원천이지만 거기서 또 사랑도 같이 나온다는 역설을 더 치밀하게 사유해보세요.

 

* 내게 주어진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상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법칙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주의 법칙을 묵묵히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 ‘순응이라는 엔딩은 착한 결말이고, 현실은 더 못되게 굴 텐데, 여행 이전에 비하면 분명 더 마음이 편해지신 건가요? 주부의 방황 후 복귀라는 표준화된 결말이 아니라 유딧의 욕망과 현실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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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서두 참 좋습니다. 제도와 가족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적인 상황이 잘 그려져요. 봄봄님은 문장훈련이 되신 듯해요. 글의 구성. 촘촘히 서사를 만들어가는 연습에 집중하시면 되겠어요. 이번 글 같은 경우는, 내가 비혼이 된 이유가 드러나는데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비혼의 삶을 알고 이해하고 비혼으로 살아갈 용기를 준다면 유의미하겠지요. 그렇다면 본문에서 비혼의 삶에 대한 분량이 좀 늘어야합니다.

 

* 이미 20대 후반 나는 조금 정신이 없었다. 일은 죽어라 했고 열망을 채울 것들을 찾아 다녔다. 나의 궤도는 그때부터 벗어난 것일까. -> 열망을 채울 것들이 뭐였죠? 사례 제시. 그것이 궤도를 벗어났다는 게 논리적 인과성이 없어요. 열심히 일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그런 주류적 삶의 방식과 멀어진 계기에 대해 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세요.

 

* 비혼 모임을 시작할 때 비혼이라는 정체성과 지향을 명확하게 갖고 있지는 않았다. 내 삶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선택을 부끄러워했던 것일까. 그 선택에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 소개팅 자리는 몸이 거부하는데 비혼모임에 간 것부터가 정체성과 지향이 명백한 것입니다. 의지가 먼저 있고 그 뜻을 펼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가 있는 게 내 의지인 거죠. 선택을 두려워했지만 봄봄님 몸은 늘 어딘가에 머물었고 누군가와 같이 있었으니 그 부분을 애매하게 흐리지 말고 직시해서 있는 그대로 써주세요. 글에 더 힘이 생길 것 입니다.

 

* 두 개의 양가적인 것을 양 손에 동시에 쥘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자유는 가혹한 것. -> 이 부분도 범위가 커요. 인생이 원래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다가 저무는 일이니까요. 삶이 가혹한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면, 앞의 글 잘 써놓고 결론에서 메시지가 흐려집니다. 더 사유와 개념을 좁혀서 써주세요.

 

글이 경쾌하고 재밌게 술술 읽혀요. 삼십대와 사십대에 관한 노래로 비교해서 불편한 심경 드러낸 것 좋습니다. 39살이라는 애매한 경계의 나이 설정도 글에 긴장감을 주네요.

 

* 위로를 받고 싶어 친구에게 투정도 부려봤지만 너무나 명쾌하게 사십대라는 걸 인정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왔고 받아들이기 힘겨웠던 난 결국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사회적 인간이 되는 것은 포기하게 됐다.

-> 위로를 받으려고 친구에게 투정을 부려봤지만 사십대를 인정하라는 명쾌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웠던 난 결국 어디에 끼지 못하고 사회적 인간이 되는 걸 포기했다.

 

*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좀 더 평범하게 살기 위해 매사에 무뎌지는 것을 택한 나로서는 몇 년 뒤에 나란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조차 남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던 때였다. -> 좋은 사유. 근데 왜 느끼지 못함의 상태를 두려워했는지 궁금해요.

 

* 어쨌든 나는 사십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을 가졌고 객관적으로 충분히 논만큼 이제 억울한 마음은 누그러지고 혼란도 가라앉았다. 다시 일하기 시작한 지금 더 놀고 싶은 생각에 일하기 싫어 몸부림칠 때도 있지만 삼십대 때보다 더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늘어나고 또 실행하는 지금이 그때보단 평화롭다. -> 더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무엇인가요?

 

* 엔딩씬. 우울증 친구를 찾아가겠다는 마무리 훈훈하네요. 그토록 두려워하던 느낌 없음의 상태가 아니라 느낌 있음의 상태가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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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8시까지 학원 문을 지나야하고 밤 10시까지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어디서 무얼 하든 해방감을 느꼈다. 자유는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 자유는 내 안에 있었다.

* 연애라는 위험한 생활에 무능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입시실패라는 불행, 삼수생이라는 파멸의 이름을 갖고 싶지 않았다.

-> 좋은 문장. ‘위험한 생활에 무능했다는 통찰이 좋네요. 벤야민이 말하기를 깨어 있는 정신은 위험한 곳을 향한다고 했지만 현대인들은 소심해져서 대개가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죠.

 

* 이 글은 재수생활(자유유보) -> 대학생활(자유탐닉) -> 대학원생활(자유실패)의 연대기를 훑으면서 자유로 인한 몰락과 구원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자유는 내키는 대로지요. 늘 내키는 대로 늘 했는데 어느 순간 삶에서 버림받았다고 썼어요. 이 내용이 앞의 재수생 연애사례와 달리 너무 추상적이고 설명적이에요.

 

관념의 말을 좀 줄이고 사례를 써보세요. 이 글이 김예슬 선언처럼 대학원을 그만두는 나는 지금 대학원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주현 선언이 되려면 대학원 생활의 불합리와 부조리와 원형 탈모를 일으킬 만큼 신체의 변화를 생생하게 제시해야겠죠.

 

* 자유는 탄탄한 삶의 길에서 날 내 팽개쳤다. ~ 대학원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한 지금, 패배와 고통에서 벗어나 삶을 추스를 기회를 얻었다. 자유가 삶을 몰락시키기고, 구원했다.

 

-> 서사가 빠진 상태에서 아래의 문구들은 너무 현란하기만 해서 정작 주현이라는 사람과 주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래의 문장은 버리거나 다듬어서 쓰세요. 글은 무엇을 남기느냐가 관건입니다. 잘 버려야 세련된 글맛이 나죠.

 

* 쉼표와 홑따옴표 남용 자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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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몰입해서 읽었어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 연결돼 있고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네요. 등장인물에 대한 적절한 정보와 해석이 글에 균형을 맞춰줍니다. 특히 <삼십세>를 좋아하는 그녀에 대한 냉소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글을 살립니다. 나는 경험의 전당에 무엇을 올려 놓았나 반성하게 되네요. 아래 좋은 문장.

 

* 그녀는 어제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했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의 하나로 포장되어 경험의 전당들에 오를지 모른다. 서로의 것을 비교해 어느 좌절이 더 큰지 불행-배틀 battle로 허무해지고 싶지않다.(->싶지 않다) 혹 개인의 불행의 양을 정확히 쟬 수 있는 실린더라도 있어 내 것이 더 크다고 판명되어도 "이봐, 이런 나도 살고 있어" 같은 말로 위로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겪은 경험을 축복하지도 않는다. 그녀도 곧 책의 주인공처럼 삼십세를 넘기고 자신이 혐오한 중년의 날들을 맞딱드리게(->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날을 살아가다 그녀가 어제의 자신처럼 생각되는 어떤 어린 사람을 보게 되면 나도 예전엔 ……하면서 이야기 할 무기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어른으로 변한 것 뿐이다. (-> 것뿐이다.)

 

* 그녀는 이 주인공처럼 책을 많이 읽었다. 대학 때 전공이 미술사학이라 책을 많이 읽어야 했고, 본인도 책이 좋아 천 권인지 백 권인지를 손으로 필사를 하며 읽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책을 꼼꼼하게 잘 읽었다. (‘읽었다가 시방 과로중이네요. 중요치 않으니 줄입시다.)

-> 그녀는 이 주인공처럼 책을 많이 읽었다. 전공이 미술사학이라 독서량이 많았고, 본인도 책을 좋아해 수백 권을 필사까지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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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그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통의 승객이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죠. 억울하죠. 이 죽일 냄새. 당신들과 내가 자유롭기 위해 필요했던 냄새. 어쩌면 우리는 미워할 것을 찾고 있다. 좀 처절하구나.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한 얼굴에 꼭꼭 숨어 있다가 틈만 주면 길길이 날뛰는 의심으로 초조한 당신 얼굴 내 얼굴.

-> 좋은 통찰

* 플라스틱을 신봉하는 듯이 보이는 노숙자가 있다. 굳이 이 곳에서 그를 좇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그의 집은 신림 역(->신림역)일 것이다

-> 그는 플라스틱을 신봉하는 듯이 보이는 노숙자다. 굳이 이곳에서 쫓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그의 집은 신림역일 것이다.

 

* 그런데 r이 누구냐 하면 신림 역엔 나 어릴 적부터 있었던 미친 여자가 한명 있는데 그 여자가 바로 r이다.

-> 그런데 r이 누구냐 하면, 나 어릴 적부터 신림역에 있는 미친 여자이다.

 

* 당신은 늘 솟아나 있어. 오늘의 역사에서 태어나 그대로 사그러졌다가(->사그라졌다가) 다시 솟아나듯이 r은 늘 특유의 존재감으로 우뚝하고 당당했다. (좋은 문장)

 

* 벌꿀님 2차시 과제부터 연작시리즈로 하면 되겠어요. 꿀벌님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이 있어서 글이 정서와 소재의 통일성이 있고 읽고 나면 연주를 마친 악기의 떨림처럼 여운이 남아요. 꾸준히 써보세요. 매번 맞춤한 인용구도 인상적입니다. 좋아서 베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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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웃음이 터지네요.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제목입니다. 주제가 아직 본문에 나오지 않았다는 게 흠이지만요. 그런데 본인이 미완성이라고 했고 그렇게 보이지만 미완성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최대한 구체적이지 않게 고정되는 것을 경계하며. 그러자 놀랍게도 로맨스조는 관심가는 대로 필요에 의해 수많은 역할로 증식하기 시작했다.’

-> 한 사람의 캐릭터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니 좋은 글입니다.

 

* 자유롭게 분열 증식하는 로맨스 조가 어떻게 다시 억압 구속당하는지 속편 기다릴게요. 로맨스 조의 존재론은 특이하여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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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관한 리뷰는 잘 쓰기가 힘들죠. 줄거리를 어디까지 공개해야하는지도 모호하고요. 이 글은 줄거리가 전체적으로 비중이 많아요.(영화를 안 본 사람에게는 지루할 위험 있음) 내용을 줄여서 필요한 부분만 정보를 주세요. 그 판단이 어려운 것이지만요.

 

* 전달하려는 주제에 집중해서 아이들로 포커스를 좁히면 어떨까요. “내가 너를 사랑하긴 하는데, 그건 헛소리야.” “법적인 효력은 상관없는데요.” 등 욕망에 솔직한 아이들의 대화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이야기를 가지런히 구성-전개하는 거죠.

 

* 자기 삶의 진실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질주에서 느껴진다. 우선 두 아이가 솔직해서 가장 좋았다.

* 오오. 사랑의 이름으로 수없이 만들어지는 미사여구들보다 솔직해서 아름다운 고백이다.

* 아이들의 질주는 주변 사람들의 삶에 수직으로 내리 꽂히며 균열을 내고 변화를 일으킨다.

-> 이런 추상적인 표현들은 과감히 날리는 게 좋아요.

 

* 샘과 수지는 빛난다. 솜털이 보송한 두 아이는 모든 낡음에 죽음을 고하는 힘 자체다. 솔직하게,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기네 마음대로다. 이 아이들이 부러워 눈물이 난다. 지금 나는 끝까지 올라가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과 스쳐간 얼굴의 무게에 끄달려 불면의 밤을 보낼 뿐이다. 아침이 오면 세수를 하고 무겁기 만한 하루를 다시 살아간다. 새롭게 오는 아침은 지난날의 빚을 받으러 달려오는 일수쟁이 같다. 되씹고 되씹느라, 올라가지 못한다. 떨어지려니 무섭다. 왜 지난 시간은 나를 겁쟁이로, 늙은이로 만들어버린 걸까. 낡은 것은 법과 도덕만이 아니다. 가장 낡은 것은 나다.

-> 나의 심리상태를 계속 설명하는 일은 본인에게는 절실하고 남에게는 지루한 일이 되기 십상이에요. 감정 이입할 포인트가 없으니 빨려 들지를 못해요. 누구나 생에 찾아오는 무료함, 갈등, 방황이 아니라 고유의 내면을 보여주세요. 투명한 아이들의 거울로 비춰본 모습을요.

 

* 이 글의 소득은 자전거로 치면 넘어져보는 일, 즉 잘못 써보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의 실천적 체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