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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의 최전선_셀프인터뷰

 

봄눈이 내렸다. 두보는 한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인다 했는데, 한송이 눈에는 봄빛이 어이되는 걸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작년 3월 '글쓰기의 최전선'을 처음 시작하여 세 번의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한번 끝날 때마다 사랑하고 헤어진 것처럼 아팠다. 삶이 섞였다 분리되는 일은 분명 전율이고 고통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4기가 4월 17일 시작된다. 그 때는 햇살 따스하면 좋겠다. 보다 많은 분들과 수업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과목인 점을 감안하여, 강사가 직접 셀프인터뷰를 작성해보았다. 

글쓴이: 은유(수유너머R)    

 

 

 

# 글쓰기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글쓰기는 읽기, 생각하기, 쓰기가 한 몸처럼 이뤄지는 작업이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그래서 수업을 강의, 토론, 합평으로 진행한다. 강의는 글쓰기의 기본적인 기술 (카메라로 치자면 노출과 조리개 사용 등)을 배우고, 토론은 매주 한권의 교재를 읽고 와서 생각을 이야기하고, 합평은 각자 써온 글을 돌아가면서 읽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생각의 마중물을 붓고 사유의 회로를 다시 짜는 작업이다. 영감을 받고 자극이 와야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

# 매주 한편의 글쓰기 과제가 있다. 어떤 식으로 써야하는지  

; 매주 교재에서 키워드를 뽑아 줄 것이다. 청춘, 노동, , 사물, 여성, 인간 등. 책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다. 생활경험 밀착형 글쓰기다. 가령 <전태일 평전>을 예로 들면, 전태일이 스물 둘에 죽기까지 삶을 기록한 글을 읽고 나의 스무살 무렵 사회로 나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쓰는 거다. 어렵지 않다. 자기의 유년-청춘을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늘 앞날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구원은 과거에 있을 수 있다. 수업시간 교재로 쓸 <일방통행로>에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15살 때 알고 있었거나 행했던 일만이 언젠가 우리 자신의 매력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그렇다. 글쓰기 과제는 미래로 흐르던 리비도를 차단하고 어떤 목적에 갇히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삶을 차근히 들춰보는 작업이다.

 # 매주 책 한권을 읽는 게 무리는 아닐까? 

; 무리하지 않는 공부는 내 것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삶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서 일상 습관은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어불성설이다. 책의 한 챕터 대략 70페이지 정도로 분량을 정해준다. 그 정도는 읽고 써야 또 엉덩이 힘이 길러진다. 글을 쓰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연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 교재에 시집이 있는 이유는 

; 나는 책을 신뢰한다. 하지만 언어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말이 말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잘 안 된다. 그 고민에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같은 모국어권이라도 시집은 독해가 어렵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 내 삶-사고가 편협한 것이더라. 말과 말이 아니라 삶과 삶이 만나야 시가 읽힌다. 연구실에서 시 세미나 말들의 풍경을 진행 중인데 매우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자의 경험과 시구가 만난 부분을 읽고 이야기하다 보면 시가 환해진다. 그 어렵던 시가 통째로 와닿을 때 짜릿하다.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낯선 감각과 시선과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보는 능력, 듣는 능력에 비례해 생의 번뇌가 조금은 줄어든다.(고 믿고 있다) 

# 수업에는 어느 연령대가 모이는가. 

; 첫 수업을 해봐야 알겠지만 지난 1-3기에는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모였다. 중년여성은 자기 자식과 동갑인 학인을 만나기도 한다. 각자 써온 글을 읽으면서 자기 아들 또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내 아내는 여친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알고, 소소한 고민에 대해 다른 식으로 생각의 물꼬를 돌려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 과정이 인정 넘치고 복되다. 글 쓸 때는 스승이 필요하다기보다 좋은 자극을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 글쓰기 수업을 하면 뭐가 좋은가? 언론고시나 자서전 쓰기에 도움이 되는가? 

글의 구성, 좋은 글 보는 법, 언어를 절제하고 정확하게 쓰기 등 기본을 배운다. 하지만 언론고시 합격을 돕는 족집게 강의라기보다 내가 왜 언론사를 들어가려고 하는지, 무조건 열심히 많이 쓰면 글 솜씨는 늘겠지만 그렇게 내가 낮이고 밤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를 생각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 그럼   글쓰기의 최전선'의 필요와 의미는? 

글쓰기를 일컬어 나를 찾는다고 한다. 글 써오기 과제에도 무척 자주 나오는 단골 표현이다.(웃음) 하지만 그렇게 추상적으로 쓰면 그 다음 문장은 쓸 게 없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찾는다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 물질적으로 목록을 적는 거다. 가령, 나를 찾는 일이 누구는 농사짓기고 누구는 명품백 마련이고, 누구는 성형수술, 누구는 승진이고, 누구는 자식명문대 보내기일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카페에서 책 읽기일 것이다. 내가 뭘 하면 좋고 행복한지 자기의 욕망과 능력을 알고 그 이유를 작성하는 일, 나의 존재방식을 고민하고 자기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글쓰기다. 글쓰기 수업을 한 분들에게 나를 알게 됐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값진 것 고결한 것은 자기내면에 있다. 그걸 쓰면 된다. 또한 생각해봐야한다. 꼭 자기를 찾을 필요가 있는가. 딴 사람이 되어도 된다. 다른 누군가가 자기보다 낫다면 말이다. 나를 찾든, 나를 떠나든.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선언이다. 글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근데 전부 달라진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