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읽는다고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삶에 관한 엄청난 유용성 전략들을 담은 가슴 뛰는 잠언들이 살아 숨 쉬지만, 그 말이 현실에서 작동하기는 몹시 힘들고 드물다. 몇 몇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나니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했을 때 나의 무능을 책망하면서도 조금은 안도했다. 그 혼란스러움이 니체가 준 선물 같다며 잘 읽은 거라고 말해주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동굴과 속세와 바다를 오르고 내리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자기 깨달음을 전달한다. 그 과정이 녹록치가 않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차라투스트라는 실망하고 병들고 회복하고 고뇌하고 방황하고 의심하고 성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길을 떠난다. 이 같은 상승과 하락의 과정에서 자기 확신에 찬 목소리들이 팽팽히 대립한다. 차라투스트라와 동물들, 차라투스트라와 보다 높은 인간들은 같은 듯 다른 얘기를 말하면서 무척이나 헷갈리게 만든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불만스러울 정도로 개념과 가치를 흔든다.
예전에는 눈을 부릅뜨고 니체의 어록만을 골라서 취했는데 이번에 읽었을 때는 따옴표의 문장들이 거의 니체의 목소리이자 내면의 아우성으로 보였다. 자기안의 혼돈을 지니고 묵묵히 걸어가면서 별 같은 문장을 탄생시키는 시인 중의 시인. 니체의 위대함은 그것이 아닐까. 애초에 진리는 없다고 몸으로 살면서 찾아보라고 등 떠민다. 하면 된다고 부추기기보다 하면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고 직언한다. 공들여 쌓은 모래성을 파도가 쓸고 가버리는 게 삶인데 어떻게 살래? 결국은 니체로부터는 환상적인 정답보다는 일상적인 숙제가 주어진다. 매 순간순간 ‘삶의 딜레마’를 안고 가는 힘을 기를 것.
좋은 책이 그렇듯 좋은 영화도 질문한다. 삶의 지난한 문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안 풀리는 상황을 보여주고 이게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뱅뱅클럽>은 그런 점에서 좋은 영화다. 수단의 기아상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내전상황을 담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가들의 실화를 살린 이 작품은 포토저널리스트가 안고 가야할,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목엣 가시’같은 문제를 던진다. 사진가의 윤리. 살육과 굶주림, 고난과 분노의 처참한 상황을 카메라로 담는 행위는 외면인가 개입인가.
굶어죽어 가는 수단의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를 앵글에 담은 사진이 퓰리쳐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수상작 사진을 보고 질문을 쏟아댄다. 그 소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구했습니까? 사진가의 눈빛은 흔들린다. 그는 소녀를 구했어야 하는가, 셔터를 눌렀어야 하는가. 셔터를 누르고 소녀도 구했어야하는가. 사진가는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를 돌보는 ngo와 혁명가의 활동까지 겸해야만 하는가. 또 아프리카 내전의 상황을 기록해서 퓰리처상을 받은 백인 사진가에게 한 흑인사진가가 독설을 퍼붓는다. 흑인이 흘리는 피로 부와 명예를 얻는 백인 사진가라는 식으로...
흑인사진가 말하는 게 참 못됐지만, 더 좋은 질문방법을 생각해야겠지만, 쓸쓸한 진실이 들어있다. 포토저널리스트라면 듣고 안고 품고 가야할 쓴 약 같은 이야기다. 그런 갈등과 고민 없이 피사체를 대하고 셔터를 누른다면 대상화의 오류를 저지르기 쉬울 것이다. 내 주변에 사진가들을 봤을 때도 항상 떠오르는 문제였다. 국내로 국외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 나서서 사진작업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돈을 벌고 이름을 알린다. 어떤 맥락에선 유의미한 일이고 어떤 관점에선 미화된 밥벌이다. 그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뭘까. 사진가의 좋은 선택이 아니라 그 딜레마를 안고 가는 힘으로 보인다. 좌절과 눈물과 갈등. 그게 힘겨워 쉽게 결론짓고 타협해버리면 그 사진에서는 가난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 간의 연대도 사라질 것이다.
<뱅뱅클럽>은 사진가의 윤리에 관한 영화만은 아니다.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냐는 물음에 ‘질문하는 사진’이라는 답변이 제시된다. 사진을 본 후 많은 생각이 일어야한다는 거다. 어디 사진뿐이랴.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질문하는 삶이다. 사진 속에 약자의 피와 절규는 눈에 보이니 다행이다. 우리가 타는 자동차에는 공고실습생의 피 말리는 노동이, TV와 핸드폰에는 삼성노동자의 생리불순 유발하는 피땀이 들어있고, 커피에도 가난한 백성의 검은 눈물이 들어있다. 나의 물질적 안락과 향유가 어디서 오는지, 남의 고통에서 오는건 아닌지 종종 물어야하리라.좋은 영화 본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질문을 멈추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더 타락할 것임을, 좋은 작품은 뜨겁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