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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의 만남


“근데 왜 저를 부른 겁니까? 연구원들이라고 하셨죠? 삼성반도체 한 사업장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이 백혈병과 희귀암으로 죽어갔습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진보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성명서라도 내야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무슨 단체들 많잖아요. 삼성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건가요.”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투쟁조끼, 덥수룩한 수염, 형형한 눈빛이 천생 노동운동가의 포스였다. 원망과 애원이 범벅된 직설적 어법으로 첫마디를 열었다. 외면과 내면의 일치. 그 진실한 환대에 야단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저런 말 들어도 싸다. 삼성 나쁘다고 말만 했지 뭐 하나 실천적으로 연대한 것이 없으니 아무 말 못했다. 8일 저녁 수유너머N에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토론회를 가졌고 나는 조금 일찍 가서 인사를 드렸다.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삼성을 지난 5월부터 다루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삼성이 우리나라를 다 덮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라서 어디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견적이 안 나와서 미루고 미뤘다고 이실직고했다. 일단은 위원장님을 뵙게 되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말씀을 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위원장님은 “간을 보려는 거냐?” 끝까지 밀어붙이셨지만 역시 반박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난 취재거리의 간을 보러 간 거였다.  

삼성과 15년간 긴 싸움을 이끌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1993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주)이천전기에 입사했고 삼성그룹이 이천전기를 인수 통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노사협의회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11월 해고되었다. 2003년 삼성일반노조를 만들었고 2005년 수감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셨다. 삼성일반노조는 삼성그룹계열사, 사내하청, 협력업체 등 지역, 업종을 망라한 삼성관련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테이블에 두툼한 ‘삼성탄압백서’를 근거로 삼성 재벌의 무노조 노동자탄압의 실상을 듣고 백혈병 노동자로 죽어간 스물둘 스물셋의 꽃다운 삼성노동자의 동영상을 봤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내가 지난40년 소설, 영화, 책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모든 불의와 악랄함과 부도덕과 몰염치의 완결판을 구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에서 백주대낮에 저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에 다 같이 눈감고 있는 실상에 잠시 어지러웠다.  

삼성노동자는 5.18 광주였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차단돼 있었다. 삼성으로부터 ‘버림받는 또 하나의 가족’ 그들의 실상을 알릴 길이 없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의 진실은 세상에 가닿지 않는다. 학살원흉이라고 욕먹는 전두환이 이건희를 생각하면 억울할 것 같았다. 이 정보화의 시대에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삼성 노동자들은 이건희의 무노조 경영을 자기 안에 내면화 하고 이건희처럼 생각합니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노조를 만들어서 노동자의 권익을 챙겨주는 것보다 방해공작 하는 돈 이 덜 들기 때문이고, 세금을 내는 것보다 뇌물 주는 것이 돈이 덜 들기 때문에 온갖 정부기관, 언론사에 삼성장학생을 심어놓는 거죠.”  

삼성이데올로기의 내면화 내 안의 이건희가 삼성을 살려주고 있다. 주변에 보아도 굳이 삼성에 다니지 않더라도 임원급으로 '삼성을 생각하는' 애사심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데올로기의 뜻은 허위의식이다. 삼성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공포감.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신화가 된 믿음. 이건희 앞에 엎드리는 자발적 노예화. 이것이 삼성을 지탱한다. 그럼에도 위원장님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십년 전엔 삼성에 노조 만들려던 노동자가 납치됐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젠 노조를 만들려다가 잡혔다고 말한다고 굉장한 발전이라고 했다. 또한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과 투쟁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비록 관료와 언론이 결탁해 조직적 방해공작을 펼치고 회유 당할지언정, 아직은 돈에 길들여지지 않는 노동자도 있다는 얘기다. 또 올해 초 삼성일반노조 사무실도 생겼다고 좋아라하셨다. 점점 힘을 키우고 있다고.  

“저희는 광고를 기준으로 투쟁을 평가합니다. 삼성노조 투쟁이 신문에 기사한줄 안 나오지만 다음날 각 신문에 삼성 광고가 일제히 실리면 ‘아, 우리가 잘 싸웠구나’ 압니다.” 

삼성을 (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진즉에 사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다. 앞부분 몇 십 쪽 읽다가 덮어두었다. 너무 추해서 볼 수가 없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그 책에는 삼성노동자의 얘기가 빠졌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성환 위원장의 증언을 통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삼성제국의 실체가 폭로되고 있다. 100여명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 키운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의 발전이었는지 묻게 된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은 머지않아 유럽의 노조, 소비자단체, 비정부기구(NGO)들로부터 거대한 반대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 26000’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 빈대학 마르틴 노이라이터 교수는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아무리 말해도 꿈쩍 않던 삼성이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것 같자 작년에 사내에 노동건강연구소를 세웠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눈물겹다 밤 10시가 넘어 허둥지둥 빠져나온 큰 길가. 살아가야할 삶의 길이 펼쳐진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는 쓸쓸한 밤길.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가. 백년도 채 살다가지 못하는 인생인데 왜들 이렇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람 죽는 것을 예사로 알고 인간적 책무마저 방기하고 부를 탐하는 걸까. 인간다움의 가치보다 화폐가 전지전능한 신이 된 세상이 한스럽다. 사는 일이 허전하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런 법이 있는데도 사장이 지키지 않고 버젓이 인간 이하의 착취가 범해졌던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후부터 자기가 싸울 대상은 사장이 아니라 국가임을 직감하고 국가를 상대로 싸우다가 꿈쩍도 않자 분신 항거한다. 지
독히도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성환 위원장님은 전태일의 치미는 분노, 그 '기막힌' 심정, 그것과 같으리라.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게 없다' 고 말하며 삼성의 족벌경영체제를 무너뜨리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겠다는 위원장님, 삼성에게 버림받은 또 하나의 가족 반올림 사람들. 딸을 먼저 보내고 남편을 먼저 보낸 채 뒤늦게 ‘삼성의 학살’이라며 눈물짓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들의 편에서 돕는 의사 공유정옥 씨. 삼성노조위원장을 수유너머에 초대해준 박은선씨. 그녀를 일컬어 이진경선생님 왈 “젊은 친구가 80년대 민중예술관을 갖고 있다”고 말해서 웃었는데, 그녀의 열정 덕분에 삼성노동자에 마음자리 내어주게 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내는 비교적 살만한 단체의 후원금은 정리하고 삼성일반노조 후원으로 몰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은 너무 큰데 연대세력은 너무 작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성은 노동계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상식과 윤리의 문제다.

*<삼성일반노조 후원하실 분> http://samsunggroupunion.org (포털검색어: 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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