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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一文一思  (one sentense one idea)

글쓰기 말고 글 고치는 일을 했었다. 원고 리라이팅. 교정과는 조금 다르다. 읽히지 않는 글을 읽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탈자 수정은 물론 단어 교체, 문장 삽입, 문단 위치 변경 등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뤄진다. 사보 기획자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사보에 넣을 임직원 원고를 고치는 일이었다. 대부분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인데 상태가 심각했다. 딱딱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문장이 엉켜서 주어가 실종되기 일쑤였다. 앞에 한 말 뒤에 또 하고 중구난방에다가 결론도 모호했다. 견적이 안 나와서 울고 싶은 적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새로 쓰고 말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 막막했다.

계속 하다 보니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이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문장해체다. ‘일문일사’ 원칙에 따라 문장을 잘랐다. 문장이 너무 길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긴다. 십중팔구다. 문장을 단문으로 잘라놓으면 문제점이 쉬이 드러난다. 그 다음 주어와 서술어 짝을 찾아주고, 문장을 재배치한다. 그러면 사실관계가 명확해진다. 여기까지만 해도 7부 능선은 넘은 거다. 만약에 단문으로 쓸 수 없는 경우라면 한문장에 최소한 경우 주어-서술어가 두 개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중복 단어를 없애고 까다로운 표현을 쉽게 바꾸는 등 버리고 벼리면, 리라이팅 끝~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생각만을 담자. 독자는 순서대로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처리할 수 있다. 문장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긴 문장은 고민하지 말고 두세 개로 나누자.  (글쓰기 생각쓰기)   

                                         
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가까이 두라  

예문을 보자.


1단계: 특이한 것은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

얼핏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주어-서술어가 짝이 안 맞는다. 특이한 것이 뭐라는 건가? 이렇게 고쳐보자.

2단계: 특이한 것은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좀 낫지만 매끄럽지가 않다.

3단계: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이것이 정답이다. ‘이 사실이 특이하다’가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이다. 영어는 중요한 문장이 앞부분에 오지만 한국어는 중요한 정보가 뒷부분에 온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주어-서술어를 붙여라.

* 좋은 문장을 쓰는 초점으로서는 첫째 ‘간결하게’요, 둘째 ‘재미롭게’요, 셋째 ‘친절하게’요, 넷째 ‘유익하게’ 따위를 들 수 있다.
-> 좋은 문장의 초점은 네 가지이다. 첫째 ‘간결’이요, 둘째 ‘재미’요, 셋째 ‘친절’이요, 넷째 ‘유익’이다.


:선물:
긴 문장으로 울림을 자아내는 문학작품의 경우는 '일문일사'를 예외로 해야겠지만, 중문으로 인한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타고난 문장가로 꼽히는 김승옥의 작품 <야행>을 읽다가 발견한 ‘아름다운 지뢰’다. 어떻게 고치면 더 좋을까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그릇 속의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가 번지듯이 그 여자의 안에서 번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발끝까지 번지고 있는 저 쓸쓸한 느낌이, 만약 그 사내가 말을 걸어오던 처음부터 그의 얼굴을 봄으로써 이내 그 여자를 사로잡았더라면 아마 그 여자는 자기 쪽에서 먼저 사내에게 팔을 내밀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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