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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거리의 고통을 사랑하라


월악산 자락으로 짧은 여름휴가를 갔다. 남편 친구가 빌려준 펜션을 거점삼아 강으로 산으로 하루씩 다녀왔다. 낙동강 지류 어디쯤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아이들은 커다란 나룻배 모양 튜브를 빌려서 타고 놀았다. 나는 물이 무릎까지 닿는 바위에 걸터앉아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깎아지른 절벽과 그것을 와락 껴안은 듯한 초록빛 강물의 절경에 심취해있었다. 덕윤이가 노를 저었다. 겁이 많은 꽃수레는 반은 웃고 반은 굳은 채 앉아있었다.  

오빠에게 천천히 하라는 둥 뭐라고 쫑알쫑알 말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후 보니까 배가 저만치 흘러가 있었다. 물이 ‘결코’ 깊지 않았다. 안전선 부근에서 노는 성인남자들 얼굴이 강물 위로 쏘옥 나와 있었다. 그런데 배가 자꾸 멀어져갔다. 아들 녀석이 방향을 틀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노를 빼려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배에서 내리려고 몸을 틀었다. 우왕좌왕 안절부절. 그러는 와중에 배가 좌우로 기우뚱 흔들리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꽃수레는 사력을 다해 울기 시작했다.  

다급했다. 뭔지 모를 공포가 엄습했다. 꽃수레는 수영도 못하고 키도 140센티밖에 안 된다. 갑자기 잔잔한 강물이 검은 혀를 날름거리는 파도같았다. 소리를 질렀다. “저 배 좀 잡아주세요.” 멀었다. 아무에 게도 가 닿지 않는 외침. 점점 물살이 거세졌다. 발을 내딛는데 내 맘대로 보행불가였다. 깊은 수렁. 물살이 본드처럼 내 몸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나를 저지했다. 애들이 점점 떠내려가는데 난 어찌하지 못했다. 샛노란 튜브배가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할 기세였다.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 순간 어떤 여성이 고개를 돌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 애들 좀...” 크게 손짓을 했더니 다행히 그녀가 배의 끈을 잡고 끌어다주었다. 꽃수레를 얼릉 품에 안고 물가로 걸어나왔다. 어른들이 부담 없이 노는 유원지이다. 하지만 겁의 여왕인 나에겐 수심 2미터의 깊이로 느껴졌다. 약 1분간의 소동이 1시간처럼 길었다. 표준시공간을 초월하는 감각으로 다가온 사건. 나중에 보니 내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물속에서 버둥대다가 바위에 부딪친 모양이다. 결심했다. 다시는 강물에 발 담그지 않으리.  

태풍이 닥친 날. 바람소리에 눈이 떠졌다. 만화에 나오는 찢어진 눈이 달린 악마의 바람이 문 앞에 닥친 듯했다. 창문이 미친 듯이 덜컹거렸다. 꽃수레가 잠에서 깨었다. “엄마 무슨 소리야? 우~ 우~ 공룡 울음소리가 자꾸 들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와장창 소리가 났다. 유리가 깨졌다. 폭포같은 파열음. 칼끝처럼 날카로운 울림. 충분히 오싹했다. 꽃수레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무서웠다. 둘이 꼭 껴안았다. 엄마와 딸이 아니라, 조난당한 두 사람은 체온을 나누었다.  

영원할 것 같던 바람이 잦아들고 날이 밝았다. 베란다 창문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한 조각도 남김없이 모조리 유리가 떨어졌으며 창틀 고무까지 야무지게 빠져버렸다. 바람이 불어 베란다에 떨어진 유리가루가 거실까지 날아들었다. 남편이 낑낑대며 치웠다. 난 망연자실 한참을 서 있다가야 움직였다. 거실을 쓸고 닦는 동안 발바닥에 작은 유리가 박혀 피가 흘렀다. 유리 파편과 빨간 핏자국이 엉켰다. 영화에 나오는 폭격 맞은 집. 아수라장 전쟁신이었다. 삼사일 동안 그렇게 닦았어도 아직까지 해가 들면 어디 숨어 있던 유리가루가 보석처럼 반짝 빛을 낸다.  

안양천 주변도 난리더라. 나무의 곧은 절개는 어디가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의 형상으로 처참히 쓰러진 늙은 수목들. 그것을 보고서야 난 태풍이 ‘큰 바람’이라는 걸 난생 처음 깨닫는다. 김소월의 시 <초혼>에 나오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할 때 그 ‘산산이’가 얼마나 처절한 감정의 해체인가를, 마루의 유리가루를 닦으며 비로소 실감한다. 여름날 물놀이 헤프닝을 통해 '강'을 배운다. 강물에 휩쓸려, 물살에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폭풍우에 휘말리듯,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 등등의 생생한 의미를. 김수영의 말대로 '느낀다'는 것은 정말로 느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기형도를 생각했다. <입속의 검은 잎> 첫 장에 나오는 시작메모.

나는 한동안 자연의 무책임한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이 글귀를 너무도 좋아해서 국민교육헌장처럼 줄줄 외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어휘에 매료된 무책임한 동경이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비유를 대수롭지 않게 썼던 것 같다. 심상한 듯 작용하는 자연의 그 어마어마한 힘도 모르고 '거리의 고통'도 없이 말이다. 거리의 상상력이 곧 글의 힘이다. 일상의 크고 작은 재해가 많이 닥칠수록, 세상과 마찰할수록 글쓰기는 윤택해진다.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뀌(신형철)지 않고서는 삶의 통찰을 얻긴 어렵기 때문이다. 벼락같은 표현, 진솔한 울림을 주는 글은 몰락, 그 후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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