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사라진 물음, 이상한 물음, 필요한 물음

[비포선셋책방]


지난 봄 ‘시대의 양심을 찌른’ 김예슬 선언이 한 달 뒤 책으로 나왔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대자보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럽고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었다. 그날의 가슴 뛰고 울컥하던 감동이 서서히 잦아들 즈음이 되니 ‘읽어볼까’ 마음이 동했다. 그런 거 보면 확실히 책도 시절인연이 있다. 만약 출간 즉시 읽었으면 지금처럼 차분히 새록새록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시대의 양심을 찌른 빛나는 시어(詩語)

내용은 대자보에 붙은 김예슬 선언을 줄기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나의 이야기, 적들의 이야기, 거짓희망에 맞서기 등.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쉰다. 이건 조단조단 풀어낸 산문이 아니라 날카롭게 벼려낸 빛나는 시어다. 물 흐르듯 읽히는데 뜨거운 불덩이가 느껴진다. 그가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지 ‘누가 내 삶의 결정권을 가져갔나’고 따지는지 ‘살아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라고 외치는지, 숨죽이며 다음 문장을 쫓게 된다. 
 나는 휴가가는 차 안에서 책을 보다가 감동에 겨워 아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대학과 시장은 우리를 값비싼 ’지식상품‘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이에 질세라 다른 기관들도 각자 자신들의 교육적 사명을 발견하고 개척해 나가고 있다. 신문, TV, 인터넷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전파하며 광범위하게 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 알아내고 배우는 기회와 만남은 잃어버렸다... 내 몸으로 내가 하지 않은 것조차 안다고 믿게 하며 그런 자신을 지식 엘리트라고 착각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떠돌기 시작한 평생학습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나는, 이제야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건 사람은 죽는 날까지 힘써 배우고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평생을 지식상품의 소비자로 연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스스로 경험하고 해낸 것이 없이 퇴화되어 버린 존재는 모든 영역에 걸쳐 ’소비자‘가 되었다. 이것이 국가와 대학과 시장이 만들어낸 최종의 인간상이다.(58)

나는 아직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하는 아들은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고 남편이 껴든다. “그러니 덕윤이를 대학에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나는 맞섰다. 그건 아이가 선택할 문제이다. 고등학교 자퇴하고 음악 한다고 다 서태지 되는 거 아니고 피겨 한다고 다 김연아 되지 않는다. 대학거부한다고 김예슬 되나. 어떤 절실함이 없이 부회뇌동 기분에 휩쓸려 내린 결정은 결코 삶의 내적 동력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왜 쉽게 말하느냐.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다양한 정보를 주고 조언하고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거늘... 말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볼륨이 커져버렸다.  

남편이랑 애들 교육문제만 나오면 다툼이 난다. 원래 남편은 사고구조가 단순해서 섬세하게 사유하지 않고 꼭 극단적인 결론을 내려버리고 얘기를 시작하니까 답답하다. 저번에도 딸내미랑 셋이 연대캠퍼스엘 갔다. ‘대우관’ ‘삼성관’ ‘GS관’이 곳곳에 생겨나고 건물 이름이 죄다 바뀌어 있었다. 남편이랑 연애할 땐 슬쩍 중앙도서관도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철통경비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접근금지였다. 이게 바로 자본에 잠식당한 교육, 기업의 인력하청업체가 된 대학의 현실이라고 내가 개탄했더니 남편은 또 “그럼 덕윤이를 대학에 보내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  

사라진 물음, 이상한 물음, 필요한 물음

가든 못(안)가든, 필요한 물음이다. 김예슬은 책의 서두에 말한다. 왜 대학을 꼭 가야하는가라는 '사라진 물음' 그리고 왜 대학을 그만두는가라는 '이상한 물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겠다고. 물음에 대한 답변은 충실하다.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함이 녹아있다. 이는 내가 그동안 고민해온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사보기자를 하면서 ‘신의 직장’ 혹은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국내 유수의 기업들을 3-4년 출입했다. CEO부터 촉망받는 신입사원까지 만나고, 아주 깊은 내막까지 관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내 아들 보내고 싶은 회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런 회사에 입사하기부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서울대 입시준비처럼 앞만 보고 달려서 학점과 자격증에 목숨 걸고 자신을 상품화해야 한다. 회사에 와도 학생때나 삶의 패턴은 비슷하다. 학점의 노예에서 실적의 노예로 바뀔 뿐이다.  

김예슬이 지적한 ‘끝나지 않은 트랙’이다. 경주마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회사에 사우나, 헬스시설, 카페를 으리번쩍 하게 갖춰놓으면 뭐하나. 그런 회사일수록 일이 고되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은 진리다. 시설 좋은 감옥일 뿐인데, 직원들은 회사에서 추천하는 자기계발서에 밑줄 그어가며 더 충실한 부품으로 자기영혼의 구조를 조직에 맞도록 세팅한다. 인간세상 경쟁이야 늘 있었다지만 가늘고 길게 ‘만년과장’으로 정년퇴직할 수 있는 회사는 이제 없다고 봐야 한다. 삶의 속도를 기업의 생산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바로 아웃이니까.  

제 정신 갖고 윤리적 주체로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 내가 40년 살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되도 않는 철학책 뒤지고 낑낑거리면서 어렴풋이 파악한 ‘거대한 예속의 흐름’을 김예슬은 일찌감치 간파해버린 것이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아주 래디컬하게. 래디컬은 근본적인이라는 뜻이다.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뿌리에서부터 파악하는 김예슬의 혜안에 존경을 보낼 뿐이다.  


'나눔문화' 만숙의 열매, 김예슬

처음에 ‘김예슬 선언’ 대자보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조직에서 훈련된 사람'이란 것이었다. 조중동스럽고 한나라당스러운 '배후'발상과 유사하지만 뜻은 정반대다. 조직의 노리개로 이용당했다는 게 아니라 좋은 동료들과 좋은 공부를 했다는 의미다. 글의 힘이 남달랐다. 이건 개인의 방황에서 나오기 힘든 ‘고통스러운 사유의 훈련’의 결과물이다. 고통스러운 이유는 삶의 틀이 깨지기 때문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머리말 자기소개에 쓰여 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사라진 대학에서 고민하다가 ‘대학생나눔문화’를 알게 되었고(사진) 사회 불의에 저항하고 국경너머 평화를 실천하고 밤새워 토론했다고.  

김예슬은 지금 ‘나눔문화’연구원으로 일한다.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건 나눔문화는 그 옛날 사노맹의 박노해 씨가 만든 단체다. 재작년 광우병 집회 때 촛불소녀 아이콘을 만든 데도 나눔문화다. 최근 4대강 반대 집회 등에서 나눔문화 회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완전 성실한 나눔문화에 호감이 갔다.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언제 한번 취재를 가볼 예정이다. 니체는 문화의 힘을 강조하면서 스스로의 미래를 보증할 수 있는 인간은 좋은 공동체에서 길러진다고 했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라고 말하는 저 가슴 시린 오기의 소유자. "자기 자신의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인간,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하나의 잘 익은 만숙의 열매"(니체) 김예슬을 길러낸 토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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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으른꿀벌 [2010.08.12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한 빛깔의 글(에리카 골드슨(Erica Goldson) 2010.08.11 17:39 )

    [편집자주] 지난 6월 25일 Coxsackie-Athens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수석졸업한 에리카 골드슨(Erica Goldson)의 고별 연설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스스로를 반성하듯 풀어나간 이 연설은 교육 철학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경쟁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예전에 선(仙)을 공부하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도를 깨우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곰곰이 생각한 후, “10년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빨리 깨우침을 얻기 위해 진짜 많이 노력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스승은 “그렇다면 20년 정도 걸리겠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제가 진짜, 진짜, 무진장 노력하면 어떨까요?” 스승은 이 질문에 대해 “30년”이라고 묵묵히 대답했습니다.

    실망한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오래 걸린다니요? 왜 그런 말씀을…”.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놓고 정진하면, 하나의 길만 바라보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즉, 목표에 연연할수록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고찰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

    저도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면서 비슷한 딜레마에 부딪혔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시험이니, 석차니, 모두들 어떤 목표를 세워 놓고 학습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목표 달성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할 뿐이니까요.

    아마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졸업생 대표까지 맡게 되었으면 뭔가 배웠을 것 아니냐?”. 네, 뭔가 배우긴 했겠죠. 하지만 잠재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 지명,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일자 같은 것들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또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 속에 입력된 지식을 지우고… 학교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자”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제 그 목표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거든요. 게다가 수석이라는 영예까지 얻었으니, 즐거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동기생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결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해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학교의 세뇌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는 공로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가을이 오면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직장에 들어가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증서(대학 졸업장)를 따내기 위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 사고하는 인간, 그리고 모험을 하고 싶은 인간입니다.

    일꾼이라는 것은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시스템이 준비해 놓은 체제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이 노예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수업시간에 경청하지 않고 노트에 그림 연습을 했던 동기생들은 나중에 위대한 화가가 될 지도 모르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한 저는 어느 누구보다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과 후 자신이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느라 바빴던 동기생들은 다음 날 숙제를 해오지 못해 혼났지만, 저는 한 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작곡과 작사에 열중하는 동안 저는 학과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한 특별활동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왜 수석이 되기 위해 그리도 발버둥을 쳤을까? 네, 물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긴 합니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제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헤매게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설계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관심분야도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렸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교육학자인 John Taylor Gatto씨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수업시간, 교과목, 시험 같은 것들을 보다 덜 엄격하게 관리하고, 학생들에게 뛰어난 스승들을 붙여 주고, 학생들에게 자율을 허용하고 때로는 모험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면 젊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호기심, 모험심, 활력을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시스템은 우리 학생들이 모두 똑같아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으며, 학교가 정한 룰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을 가지는 학생들은 실패한 자들로 평가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H.L. Mencken은 1924년 4월, The American Mercury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지적 잠재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안전한 수준으로 획일화시키고, 모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불만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개성을 없애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국 공교육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들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들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비판적이지 않은 사고도 존재한다는 겁니까? 사고라는 것은 정보를 처리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걸 진정한 사고라 할 수 있습니까? 단지 남의 의견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저도 이런 식으로 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10학년 때 Donna Bryan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남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 질문해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Bryan 선생님을 알게 되지 못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예전에 비해 많이 깨어났지만, 아직도 제 정신은 약하게 느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곳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얼마나 정신 나간 곳인지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개성을 억누르는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합니다. 기업과 물질주의가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난센스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나중에 자동화될 수도 있는 일, 불필요한 일, 열정도 없고 의미도 없는 노역과도 같은 일을 하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열정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돈이 동기부여가 되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열정이 동기부여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를 격려하기 보다는 훈련시키려고만 하는 시스템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열정은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주입 받은 내용들을 자동적으로 내뱉도록 훈련된 로봇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별합니다. 우리 모두 이보다는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암기보다는 혁신을, 쓸모없는 일보다는 창의성을, 정체보다는 숙고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단지 졸업장을 받고, 취직을 하고, 업계에서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반복적인 소비를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가장 슬픈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처럼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업과 정부로부터 권위에 순종하는 사회의 일꾼들이 되기 위한 세뇌교육을 충실하게 받고 있으며, 이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제가 살아온 지난 18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보다 나은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도망가서 다시 배울 수도 없습니다.

    제 유년 시절은 이미 막을 고했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저랑 똑같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손에 놀아나 잠재력을 억압당하는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철학자이고, 꿈꾸는 자이고, 탐험가고, 예술가고, 작가이고, 엔지니어입니다. 우리 모두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꿈 실현을 위해 돕기보다는 억압하는 교육 시스템만 없다면 말이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땅속에 깊게 박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교육 시스템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후배들도 절망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자신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세요. 자신의 지적 능력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쓰이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을 요구하세요.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걸 공부해야 해”라는 변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얘기하세요. 교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기 보다는 배움을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하세요.

    제가 지금까지 비판한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은 제 얘기에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욕하려는 게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려고 하는 말이니까요. 여러분들은 이 무능한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교육자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잖아요. 여러분들도 위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라고 지시하는 것과,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벌을 받게 되는 현실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계시잖아요. 젊은이들이 장차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제 곧 시스템을 떠나시는 동기생들에게는, 지난 몇 년 간 교실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잊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여러분들의 후배들을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는 세상의 미래이며, 잘못된 전통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부패의 벽을 허물고 미국 내에 새로운 지식의 정원을 가꿔나갈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교양과 지혜로 무장한 우리는 이 힘을 좋은 용도로만 쓸 것입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악습을 타파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하고, 진실을 요구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섰습니다. 저 혼자서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 제 주변 환경, 그리고 지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동기생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경쟁했지만, 여러분은 제 피와 살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졸업생 대표입니다.

    이제 이 학교, 학교를 운영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작별이 아니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입니다. 우리가 함께, 진정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기 위해서 다시 만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인증하는 종이 쪼가리부터 받도록 하겠습니다! [번역, 블로거 krysialove]

    • 은-유 [2010.08.12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멋진 연설이네요. 경쟁이 참 무서워요. 영혼을 병들게 하죠. 저마다 60억개의 길을 가고 본성을 꽃피우면서 자유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2. 연초록 [2010.08.13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밤 이 글을 읽고 오늘 아침 신문에서 나눔문화를 표절하라는 안병진 교수의 글을 또 만났습니다.

    나눔 문화? 어제 밤의 글이 생각나서 www.naunum.com에 들어가보았지요. 우리가 무엇을 읽고 본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것으로 소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공간에 대해서 눈뜨게 된 이후 나는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기쁜 마음으로 글을 읽어보고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았습니다. 감사

    그리고 지난 번 이야기한 the 100 제국의 네그리와 하트의 그 하트가 쓴 책인데요, 덕윤이에게 이야기해보고

    읽고 싶다면 인물에 대해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 책을 구하면 어떨까 해서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요,일산에서 같은 학년, 혹은 더 아래 학년의 아이들이 그런 책을 읽고

    메모도 하고 있다고 전해주실래요?

    • 은-유 [2010.08.13 2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신문에 '나눔문화' 보고 놀랐어요.ㅋㅋ 표절할만 하죠. 그리고 더100은 제본할게요. 덕윤이에게 읽으라고 들이대야죠. 다행히 영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3. 봉급생활자 [2010.08.1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노해씨가 그런 단체를 만드셨군요. 처음알았네요.^^;; 김예슬의 전공이 경영학인데 약간 놀랐어요. 인문사회 계열 학생인지 알았죠.^^; 경영학을 하면서 경쟁과 효율 이외의 생각을 학기가 쉽지 않다던데 말이죠.ㅋ

    • 은-유 [2010.08.13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노해씨 대단하시죠. 꿈도 기도 죽지않았어요ㅋㅋ 우리신랑도 경영학도인데 '경쟁과 효율' 담 쌓고 살아요ㅋㅋ 본성은 쉽게 안 바뀌는 거 같아요.

  4. 세이라 [2010.08.13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요즘은 늦기 전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길을 찾을까 고민하는 중인데, (서른이 되진 않았지만 이제 가까워오고 있어서 과연 해야하나 두렵기도 하고) 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그 계획 안에 고려되고 있어서.. 이 글을 읽고 나니 조금 복잡해지네요. 혹 학교라는 시스템에 돌아가는 결정을 하더라도, 예전에 시스템에 충실했던 내가 아닌 나 스스로를 깨닫기 위해 공부해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은-유 [2010.08.14 0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이라님, 서른 전이면 정말 '청춘'이에요.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언제라도 늦은 때는 없는 것 같아요^^ 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예속되는 게 문제잖아요. 학교과정을 잘 활용하면 되죠. 아무 고민없이 등 떠밀려 진학하는 게 아니고 뜻이 분명하다면 배움의 장으로는 학교시스템도 좋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깨닫기 위한 공부라면 삶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면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거에요. 용기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