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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맑스

엄마의 윤리학1 - 제 정신으로 살기위해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작년에 봤을 때 먹물 활자를 눈으로 훑는 거 같았다. 그런 책은 처음이었다. 공리. 정의. 정리. 주석. 보충 등등 번호를 매겨가며 논의를 전개하는, 철학책이라기보다 수학책에 가까웠다. 이과적 두뇌도 아니고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1,2,3..만 봐도 판단중지가 일어나는 나로서는 현기증 나는 구성이었다. 그런데 섹시한 문장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었다. 끌림이겠지. 또 스피노자는 나의 사랑 니체오빠가 애정해마지 않는 철학자다. 고병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철학자는 니체를 좋아하는데 니체의 모든 저서랑 에티카랑 놓고 최고의 책을 한권 고르라고 하면 ‘에티카’를 택하겠어요.” 그의 꼬심에 넘어가서 에티카에 다시 도전했다. 7주에 걸쳐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단 훨씬 보이는 문장이 많아졌다. 흐릿하게나마 대략의 밑그림은 그려진다. 아래 인용해 놓은 김수영의 글을 보는 순간, 이건 에티카를 다섯줄로 요약한 것이라며 무릎을 쳤다. 에티카에 나온 개념으로 '엄마의 윤리학'에 대해 사유해보았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 생활은 유동적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 김수영전집2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0.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한 때는 이런저런 '직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살수록 바람이 소박해진다. 직업군을 택하기보다 삶에 임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느낀다. 남에게 멋져 보이는 직업을 고르고 거기에 성실히 복무하며 사는 게 아니라, 나의 ‘좋음’을 성찰하고 몰두한 결과물로 나에게 맞는 직업이 찾아지는 거 같다. 이미 선택지가 주어진 익숙한 세계에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나만의 고유한 삶의 창조. 여기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필요하다. 그것을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 증명했다. 운명에 휩싸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사는 법을 촘촘히 엮어 <에티카>로 정리했다. 또 다른 한 사람. 약동하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의심했고 안주를 거부했던 김수영은 시를 썼다. 유독 몸과 육체가 많이 등장하는 김수영의 시편은 그의 ‘에티카’였던 것이다. 

나의 에티카는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 순간, 나의 에티카는 엄마의 에티카가 됐다. 결혼/출산 전에는 나의 선택에 따른 (불행한) 책임을 나 혼자 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니까 식구들의 삶이 밀접하게 맞닿아 나의 좋음이 식구들의 나쁨(불편)이 되기도 한다. 항시 2-3인분의 인생을 합해 총체적 좋음을 고려하며 삶의 순간순간 크고 작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6개월짜리 루니 강의 듣는 것, 소소한 친교활동까지. 나의 선택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들의 인생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