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미술학도들이 하면 환경운동도 다르다. 딱딱한 문건, 식상한 구호 대신 재기발랄한 작품과 풋풋한 초록감수성으로 친환경 메시지를 전한다. 세 번의 큰 전시와 크고 작은 게릴라 전시를 통해 에코세대의 소명을 다하는 그들은, 환경을 사랑하는 대학생 전시모임 ‘Green One’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작품으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7월 초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연일 퍼붓는 빗줄기가 이들에겐 바늘처럼 따갑다. 해마다 조금씩 일찍 찾아오는 여름, 해마다 조금씩 더 더워지는 이상기온도 걱정인데 폭우까지 내리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다. 어서 지구의 위독한 상태를 알리고 환경사랑의 문화를 가꾸고픈 ‘착한 욕심’이 앞서는 까닭이다. 그것도 ‘말’이 아닌 한 편의 멋진 ‘예술품’으로서 폼 나게 말이다.
“그린원은 환경에 관심이 많은 미대생들의 전시 모임입니다. 우리가 만든 작품을 통해서 사회에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환경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픈 마음으로 환경전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 화가 등 세상을 표현하고 메시지 전달력이 있는 사람들이 환경을 공부하면서 올바른 인식을 한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작용했고요.”
그린원을 결성한 김영준 씨(국민대 공업디자인4). 그는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생태위기를 보고 듣고 자란 에코세대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명예교수이자 유명한 환경운동가인 윤호섭 교수에게 배우면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과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고 2007년 가을에 모임을 꾸린 것이다.
포스터, 설치작업 등 다양한 그린감수성 뽐내
‘한번 해보자’는 실험정신으로 시작했지만 과정은 순조롭고 결실도 풍성하다. 그린원은 지금까지 세 차례 큰 전시를 가졌다. 2008년 2월에는 첫 전시회 ‘원하는 것은 자연이다’를 현대자동차 계동 사옥 문화센터에서 열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5월에는 상암 CGV 영화관에서 열리는 환경재단 주최 서울환경영화제에 부스를 마련했고, 8월경에는 한중문화청소년미래숲센터와 함께 사막화 방지를 위한 전시를 개최하면서 입지를 구축했다. 그린원 3기 대표를 맡고 있는 박우진 씨(서울대 동양화과 대학원)는 ‘전시의 추억’을 터놓았다.
“사막화 방지 전시회는 저희들이 방학 내내 올인 해서 준비했어요. 단체작업 5점을 포함해서 개인 작업까지 총 20점을 출품했죠. 그 중에서 재활용 상자의 골판지를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 것을 표현한 tipping point 라는 작품이 가장 호응이 좋았어요. 작품 앞에 유리벽을 만들어서 빨간 테이프로 바이털 사인을 그려 넣었죠. 지구의 사망을 알리는 의미로요.”
이처럼 그린원이 내놓는 작품은 높은 완성도와 상품성보다는 거침없는 상상력과 발랄한 도전정신의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다. 20여 명 회원이 각각 디자인·회화·건축·조각·도예 등 전공은 다르지만 ‘환경’이라는 키워드로 뭉쳐서 포스터, 설치작업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신진희 씨(건국대 산업디자인4)는서울시내 자전거 지도를 만들었다. 자전거 도로가 끊기는 위험구역과 공기주입기가 있는 자전거 매장 등이 표시되어 있는 실용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의 친환경 지도다.
“기존의 서울시 자전거 지도를 보고 직접 타고 다니면서아쉬운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현재 은평구, 마포구 등 제작했고 나머지도 각 구별로 제작해서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밖에도 나뭇잎 그림의 부채가 달린 나무형상, 알루미늄 캔을 이용한 팔찌, 교사용 친환경 교구 등이 있다.
미대생 위한 ‘환경 철학-실습’ 교본 만들 것
그린원은 매주 금요일에 모임을 갖는다. 주제를 정해 책 읽고 스터디를 하거나 환경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후 드로잉 작업으로 남기는 등 고된 지적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2학기에는 그동안 학습하고 활동한 내용을 엮어서 단행본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기후’ 부분을 펼쳤을 때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알차고 재밌는 내용을 담아서 후배들이 그린원 활동의 교본으로 삼도록 할 것”이라고 허은희 씨는 말했다.
하지만 최근 장기 불황에 따라 근근이 이어지던 기업과 단체의 후원이 끊겨 단행본 제작비용을 구하지 못한 상태다. 또한 전시모임이다 보니 따로 동아리 방도 없어 모임 때마다 카페나 회원들 학교의 빈 방을 전전한다. 작품을 보관할 마땅한 장소도 없다. 이렇듯 제반 상황은 어렵지만 그린원의 붓질을 멈출 수는 없다. 아니, 더 많은 그린원이 생겨나길 소망한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미술은 간접이든 직접이든 만듦으로써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요. 특히 산업디자인의 경우 지속적으로 물건을 생산해야하는 딜레마가 있죠. 생각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위기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소비적 삶에 휘말리기 쉽잖아요. 그럴수록 더욱 더불어 살아가는 눈을 키우고 생태적 가치와 실천을 고민하는 미대생들의 모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푸른-지구, ‘그린원’의 무한 증식으로 지구가 녹색으로 뒤덮이는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