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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옆소극장

<사라문 사진전> 천국보다 낯선


나, 길을 잃었어  자발적 백수의 길로 접어든지 석 달. 자신을 선천성 '길치'라고 규정한 그녀와 삼십 여분 수다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 시간 낭비이고 헛사는 것 같다. 슬며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왠지 훌쩍 여행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생을 놓아둠. 가만히 있음은 곧 정체라고 여긴다. 우린 이미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졌다. 왜 뭘 꼭 힘들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까. 해야 한다는 강박, 하면 된다는 환상이 쌍두마차로 우리 삶을 견인하고 있다.

죄의식 없이 마음껏 빈둥거리는 것도 고난도의 삶의 운영 능력이다. 휴식도 공부하기 못지않게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젊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엄마 말씀이 젊어 실컷 고생하고 이제 좀 놀아볼까 싶으니 몸이 아파서 말을 안 듣고 입고 싶은 옷도 없고 옷 입고 갈 데도 없고 기껏 모아 놓은 돈 쓸 데라고는 병원비 밖에 없다더라. 내 평생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가을, "우리, 놀까?"  "그래, 놀자!"  그녀의 남친이 구해준 <사라문 사진전> 티켓 2장 들고, '09가을산백수'와 '데이트생활자'는 예술의 전당으로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