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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대학로,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김광석


겨울-봄, 정미소  

정미소. 대학로의 구석의 카페다. 카페모카가 맛있다. 머물고 있노라면 정이 흐르고 미소가 고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애정 충만한 나의 해석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날은 내가 늘 앉던 자리, 창밖 풍경이 예쁘게 편집되는 그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창가 바로 앞에 앉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삼십여 분 여유가 생겼다. 건빵 봉지 속 별사탕처럼 내겐 너무 달콤한 보너스.

커다란 통유리로 햇살이 들어찼다. 눈이 부셔 몸을 뒤로 빼 앉았다. 미동도 없이 멍하니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데 어떤 고요가 차올랐다. 선방에 앉은 것처럼 몸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 시간을 붙들어 두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공간의 아름다움은 카메라가 기록하지만, 시간의 아름다움은 무엇이 기록하지? 내가 시인이라면 시를 한편 지었을 텐데.

몸이 시를 낳지 못하니, 낳는 시늉이라도 해볼까나 싶어 시집과 노트를 꺼냈다. 마침 ‘창가에 앉아’라는 시가 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창가에 앉아를 적어 내렸다. '창가에 앉아 너를 생각하며' 한글을 배우는 아이처럼 한자 한자 눌러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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