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멀리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늙은 철학자의 얼굴을 닮았다. 이파리 다 털어내어 뾰족하게 드러난 바위능선에선 날선 정신성이 배어난다. 도심 안쪽서부터 그 엄엄한 기운의 파장을 헤치고 북한산성 입구에 이르렀다.
잿빛도시의 흐름이 끊기고 바로 흙길이다. 울퉁불퉁 길 따라 아담한 주택 서너 채 늘어섰고, 그 마지막 집에는 ‘생태보전시민모임’이란 표시가 나뭇잎처럼 무심히 달려있다. 시민단체 간판의 무거움 대신 찻집문패의 낭만으로 운치를 더한 그곳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표방하는 생태보전시민모임이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은 1998년 자연생태 보전운동을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 창립한 시민단체입니다. 활동내용은 습지, 웅덩이, 강, 나무 등 주변의 자연환경 기초조사와 모니터링 등 생태감시활동과 시민대상 생태교육입니다.해양과 대기오염 등 지구촌 환경 전반을 아우르는 여타 환경단체와는 달리 저희는 ‘도시생태계’로 활동범위가 전문화돼 있습니다.”
창립 당시 은사를 돕던 것을 인연으로 2000년부터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는 민성환 씨. 그는 ‘밖’으로 나가서 펼치는 생태감시활동과 ‘안’으로 불러 모아 진행하는 생태교육이 두개의 수레바퀴처럼 나란히 생태보전시민모임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숲 속 자연학교, 아이들 ‘생태감성’ 길러요
“생태교육은 1999년도부터 숲속자연학교를 열고 있습니다. 봄에 신입생을 뽑아 12월 말까지 매주 한번 씩 모여 고구마 굽기, 계곡탐사, 텃밭 일구기, 나무 새총 만들기, 천연염색 등 다양한 수업을 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생태적, 자연친화적 감수성이 길러지고, 나아가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생태도시 조성의 씨앗이 뿌려진다고 생각합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는 민성환 사무국장의 등 뒤로 아이들 작품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씨앗의 가시종류를 분류한 그림부터 티셔츠와 도꼬마리 열매로 만든 천연다트판, 실로 엮은 거미줄 등 사방 벽면이 그대로 생태작품 전시장이다. 바닥엔 동물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다. 자연을 정성껏 옮겨온 그것들엔 조막손이 꼬물꼬물 쓰고 만들고 관찰한 흔적이 역력해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대자연이란 놀이터에서 나무며 돌멩이를 장난감 삼고, 풀과 벌레를 벗 삼아 생활하는 숲 속 자연학교는, 유치부, 초등부 합해 연 4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은 또한 자연의 어린이, 작은 산에도 손길을 내민다.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람한 산림녹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근에 있는 소중한 산림녹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취지하에 일명 ‘작은 산 살리기’ 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작은 산 살리기는 잘못된 등산로 이용과 관리, 무분별한 체육시설물의 설치, 쓰레기 불법 투기 등 잘못된 숲 관리로 산림이 죽어가는 것을 막는 운동을 말합니다. 설악산 한라산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큰 산보다는 이름 없고, 볼품없지만 가까이 있는 우리 마을 작은 산이 우리들에게는 훨씬 소중하거든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도 하고요.”
적게 쓰고 적게 버리기 = 생태보전
이렇듯 지구 만물 다양한 개체들의 개성을 서로 존중하며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생태도시조성 전령사가 권유하는 생활 속의 ‘생태보전 실천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 생활에 만연해 있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쓰고, 많이 버리는 풍토가 결국 지구 온난화를 불러일으키고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따라서 겨울철 내복 입기, 물과 종이 아껴 쓰기, 반찬 덜 받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을 검약한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곧 생태보전활동입니다. 인간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종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칩니다. 지구라는 유한한 공간과 자원에서 내가 더 가지면 남이 덜 갖게 되는데, 그 남이 사람뿐 아니라 생물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문명은 진화했을지언정 집 앞을 흐르던 개울물이 사라지고 한여름 땀을 식혀주고 마을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느티나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는 친환경 도시재창조를 위해서는 지자체 같은 조직 차원의 접근과 더불어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석유는 40년, 가스는 60년, 석탄은 100년 정도 버틸 것이라고 한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도 석유가 들어가는 것을 감안할 때 결국 ‘아껴 쓰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인 것이다.
현재 생태보전시민모임은 여진구 대표 외에 5명의 상근활동가가 사무국을 맡고, 강서습지생태공원에 2명, 고덕수변생태복원지에 1명의 자원활동가가 파견돼 있다. 이들은 지역 별로 되살림 창작대회, 토요생태교실 개최, 문화지킴이 양성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친다. 또한 430여 명의 회원들이 이 자발적 시민모임의 행보에 물심양면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07년도 사업계획은 회원총회를 통해 결정합니다만 새해에는 지역기반 사업을 할 듯합니다. 인구 48만 명이 살고 있는 은평구는 비교적 자연생태계가 양호한 편입니다. 은평뉴타운처럼 곳곳에 아직 개발 가능성이 많기에 저희도 할일이 많습니다. 숨 쉴 공기, 마실 물, 가꿀 땅은 우리가 지켜나가야죠. 독자여러분도 회원으로 가입하셔서 도시생태계 보전에 동참해주세요.”
회원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모인 후원금은 자연스레 주위로 흘러간다. 오는 토요일 이 ‘숲속 작은 집’에 은평구민 20명을 초대해, 뉴타운 주택택지개발로 살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내쫓기게 된 너구리들의 이야기를 그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예정이다. ‘참가비는 환경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글귀가 시선을 잡아맨다. 자연의 그것처럼 넉넉한 인심을 지닌 생태보전시민모임. 그들은 서울의 허파 북한산과 하나가 되어 도심 곳곳에 생태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