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한인터뷰

우재월 가정방문간호사 - 더 낮은 곳으로...제2의 간호인생


더 낮은 곳으로 몸을 숙여 시작한
제2의 간호인생


우재월 씨는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장교 출신입니다. 흐트러짐 없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온화함은 단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봅니다. 그녀는 졸업 후 6년 간 군병원의 생활과 한 병원의 수간호사로 근무하며 착실히 ‘간호’의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중간의 육아기간의 공백을 제외하더라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간호사’로 지낸 셈이지요. 그러나 소위 말하는 베테랑이 되어갔지만 가슴 한 구석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해 더 알고, 간호를 더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방문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가정간호 과정을 수료하고, 제2의 간호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글 | 김송지영 자유기고가  사진 | 윤명숙




방문간호사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서울 4개 구 가운에 한 곳인 영등포보건소가 제 일터입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오전 방문 스케줄을 챙깁니다. 방문간호사는 관할 지역의 기초생활 대상자, 만성질환자, 소외 가족, 독거노인 등을 찾아갑니다. 가슴에는 명찰을, 가방에는 영양제와 파스, 그리고 혈압기, 청진기, 당뇨측정기, 고지혈측정기 등을 챙겨 넣습니다.

 


주름 접힌 목을 빼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핸들을 잡은 손이 저도 모르게 빨라집니다. 동네에 비슷한 중소 공업소가 많아서 길 찾기가 쉽지 않지만, 다리가 날개로 변하기라도 한 듯, 골목골목 누비며 잘도 다닙니다. 사람 한명 간신히 오를 수 있는 좁다란 계단, 가방은 가슴 앞쪽으로 품고 가야 지나갈 수 있는 복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방문…. 최대한 겸손해질 것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그 길을 통과합니다. 그리하여 밥상 하나 놓고 나면 돌아앉을 자리도 없는 방 안에 이릅니다.

 


“할머니, 방에 바퀴벌레는 없어요? 약을 깜빡했네. 다음에 근처에 올 때 드릴게요. 진료비 영수증도 챙겨놓으세요. 그래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이렇게 챙깁니다. 벌레 약을 챙기고 푼 돈 영수증을 챙깁니다.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작지만 귀한 것들은, 아마도 이런 자질구레함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상태가 안 좋으신 분은 주 1회 방문하고, 큰 지병이 아니면 계절에 한 번 찾아뵙습니다. 오늘처럼 이동목욕이 있는 날이면 차로 모시고 오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뵌 어르신들의 얼굴이 겨울을 지내고 난 산처럼 수척하고 허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으신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혈압을 체크하려고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고 특유의 고정멘트를 하십니다. “오래 사시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건강하게 사시다가 잘 돌아가셔야죠.” 이 세상 희로애락의 진실을 그 고귀한 주름 속에 담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어루만져 드립니다.

 


마비가 온 발이 자꾸 한쪽으로 기우네요. “딱딱한 벽에 발을 고정시키고 한 번에 적어도 30분은 하셔야 해요. 그래야 효과가 있지요. 이제 따뜻해지면 많이 걸으세요. 뇌졸증에는 걷는 게 최고의 운동이에요.” 촉촉한 땅의 기운 많이 받으셔서 할머니 마음에도 희망의 새 살이 자라나길 기대합니다. 어르신들은 몸보다 정신이 병드는 것을 더 염려하십니다. 그래서‘간이 정신상태 검사서’로 치매 검사를 해드립니다.“제 말을 듣고 조금 있다가 따라하세요. 나무, 자동차, 모자”할머니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침을 삼키며 집중합니다.“나무…, 자동차…, 으음… 모자!”“네! 잘하셨어요!”

 


기본적인 검사와 점검이 끝나면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로 마음의 ‘맺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처음엔 검은 연기 같은 한숨이 푹푹 새어 나오시더니 어느 새 웃기도 하시고 농담도 던지십니다.‘ 맞아요. 우리는 원래 잘 웃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잖아요.’당신의 긴 끈 같은 수다를 들으면서 외려 제가 많은 것을 배웁니다. 진정한 돌봄의 혜택은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대한간호협회 기관지 <대한간호> 2006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