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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책방

<섹슈얼리티와 광기> 근대적 주체가 말하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좋은 책은 ‘질문’한다. 그런 점에서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수영의 <섹슈얼리티와 광기>는 우선 좋은 책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근대 문학의 주인공들은 왜 죄다 아파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의 근엄한 계몽주의가 힘을 잃은 뒤 등장하는 1920년대 근대문학은 온갖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로 들끓는다. 김동인과 염상섭 나도향 등의 소설은 섹슈얼리티와 광기라는 소재로 가득했다. ‘임야’ ‘표본실의 청개구리’ ‘약한 자의 슬픔 ’ ‘타락자’등에는 성윤리를 저버린 여자, 불감증의 아내, 종교적 열정과 살해의 망상에 사로잡힌 아들, 성적 불능자이며 도착적인 남편, 히스테리에 걸린 간호부, 관음증 환자인 전차 차장 등이 등장한다.

도대체 주인공이 혈색 좋고 무탈한 삶을 사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성적인 욕망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혹은 죽음충동을 극복하지 못해 삶의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 된다. 그들은 자기 외부적 장애보다는 성욕과 광기라는 ‘내부의 적’ 앞에서 동요하고 혼란스러워 하곤 했다. 폐병에 걸린 고뇌하는 잿빛 청춘. 원고, 편지지, 약갑 등은 지식인 청년의 전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