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면 악기가 된다. 두드리면 열린다.’ 버려진 물건으로 악기를 만들어 공연하는 생태주의 퍼포먼스그룹 노리단의 주문이다. 그들이 떴다 하면 활짝 열린다. 쌓였던 울화가 풀리고 막혔던 소통이 뚫린다. 공연, 워크샵, 공공장소 리모델링 등 지속가능한 즐거움을 디자인하는 사회적기업 '노리단' 일터가 놀이터인 부러운 사람들의 흥겨운 소리를 따라갔다.
금속으로 된 은방울꽃 모양의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의자 안에 설치된 종이 도레미파솔라시도 울리는 ‘종의자’ 농구대 안에 자동차 바퀴휠이 달려 있어 골대에 공이 들어갈 때마다 ‘띵~’ 소리를 내는 ‘감돌농구대’ 오래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실로폰형태의 악기로 앉아서 쉴 수 있는 ‘고몽 벤치’
요것조것 신기한 것들이 모여 소리숲을 이룬다. 아이들은 노리단원들이 만들어준 빈 요구르트 병을 재활용해 만든 악기를 저마다 입에 물고 신나게 뛰어다닌다. 놀이터 가운데에서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바위처럼’에 맞춰 신나는 율동공연을 선보인다. 소리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축제가 한창인 이곳은 경기도 시흥 신천동 ‘삼미어린이공원’. 추적추적 늦가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이지만 개장식을 맞이하여 많은 이들이 모였다.
버려진 공간 살리고 주민들 이어주는 ‘커뮤니티 디자인’
“여기는 재리사장 가운데 자리 잡아 통로로만 이용되는 버려진 공간이었습니다. 재래시장도 활성화 하고, 휴식과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 기능을 회복이라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이 추진되었습니다. 장을 보다 우연히 만나 이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자 엄마를 따라 장에 나온 어린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놀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 공간, 그리고 어르신들의 쉼터로서 지역에 활기를 주는 공원이 된 거죠.”
노리단은 한국토지공사와 함께 삼미어린이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지난 3월부터 추진해왔다고 안석희 대표는 말했다. 그동안 주민 워크샵을 통해 수요를 파악하고, '버려진 것들을 가공한 악기'를 설치하여 공간과 사람 모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개장기념으로 노리단이 직접 만든 대형악기로 신나는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펼쳤다. 이처럼 노리단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제작, 교육, 공연, 공공디자인의 네 박자가 함께 어우러져 힘차고 신나게 굴러간다.
노리단은 일, 놀이, 학습의 자율적 청년문화작업장 ‘하자센터’의 첫 번째 빅 프로젝트로 2004년 태어났다. 노리단의 정체성은 버라이어티하다. 버려진 물건을 악기로 되살려내 흥겨운 공연을 펼치는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이자,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허물며 즐거운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며,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문화예술벤처를 표방한다. 2007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아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 제작, 공연부분과 놀이터 리모델링 등 공공디자인 영역을 담당하는 공공디자인팀까지 4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만 네 가지 영역이 통합 순환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입니다. 아침에는 교사로 교육을 하고 점심에는 배우로 공연을 하며 저녁에는 장인으로 살자가 저희 모토입니다.” 안 대표의 말대로 노리단은 스스로를 회사이고 학교이자 공장이라고 부른다. 단원은 모두 공연하는 배우이고, 워크숍을 하는 교사이자, 공장에서 악기와 놀이터를 만드는 장인이다.
사회적기업, 일이 놀이고 배움이고 나눔이다
노리단이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은 이렇다. 일과 놀이와 학습을 같이 하는 것,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서 자기를 고용하는 것, 지도 바깥에서 세계를 새롭게 보는 것의 출발점 중 하나가 사회적 기업이다.
노리단은 자동차 바퀴의 휠이나 하수구용 파이프, 폐철골·폐타이어, 빈 페트병, 나무조각 등 보잘 것 없던 물건들을 근사한 악기로 만들어 낸다. 이 악기들을 가지고 노리단이 오른 무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 공연'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제 초청공연'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소리놀이터도 설치하고, 재활용 악기제작법을 외부에 가르치기도 한다. 기업체 임직원 창의력 워크샵, 어린이 청소년 워크샵 이주민, 새터민 등 문화소외계층 워크샵 등 해마다 1천회가 넘는 워크숍과 2백여 회의 공연을 소화한다. 덕분에 노리단의 매출은 해마다 쑥쑥 증가추세다. 공연과 공공디자인이 보다 활발해진다면 내년 매출은 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안 대표는 내다봤다.
"직접 두드리고 거기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거잖아요. 우리의 활동이 다른 사회적 기업이나 문화예술인 등 좋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모델이 됐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이같은 ‘신의 직장’에서 일하며 놀고 배우는 복덩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단원이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은 프로인가 아마추어인가? 답은 단원만큼이나 다양하다. 노리단은 여덟 살에서 마흔 살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11명에서 출발해 현재 6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한다. 공공디자인팀 소속 장미 씨는 대학 4학년 때 학교 게시판에 붙은 단원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 작년 7월 노리단에 합류했다.
“일반 기업체에 가면 경쟁도 심하고 스트레스도 많잖아요. 노리단은 신나게 배우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금속공예를 전공했는데 여기서 폐품을 활용해 악기를 만드는 시도가 새롭고 재밌어요. 또 여긴 나이에 상관없이 전부 닉네임을 부르니까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돼요. 나이가 아닌 지혜의 차이에서 서로 배우고 보듬지요. 소통능력도 길러지고 공동체적 성취감이 큽니다.”
노리단 자랑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1년 반 동안 활동하면서 잊지 못할 일도 많았지만 올 일 년을 다 바친 이번 삼미어린이공원 리모델링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한 달 전 단원이 된 박태주 씨는 공연팀 소속이다. 공연팀은 다문화 여성, 군부대, 저소득층 공부방, 소년원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수많은 워크샵을 열고 있다며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설레는 꿈을 밝힌다.
“얼마 전 노인복지시설 장기워크샵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손자처럼 대해주시면서 너무 즐거워하셨어요. 노리단 프로그램은 일방적 교육이 아니고 단순한 레크레이션과도 달라요. 악기 연주는 전문가만 하는 게 아니고 내 몸, 자연, 버려진 것들 등 뭐든지 상상하면 악기가 되고 두드리면 음악이 된다는 걸 체험하거든요.”
아침엔 교사, 점심엔 배우, 저녁엔 장인으로 산다
노리단원들은 하나같이 생기발랄하고 당당하고 야무지다. 이유가 있다. 노리단원의 세 가지 자기약속이 있단다. 첫째는 자신의 일에 당당한 표정,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표정을 갖는 ‘표정에 책임지자’ 둘째는 자신이 집중했던 한 두 가지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기르고 그것을 글과 말과 행동으로 증명하는 ‘자격증을 증명하자’ 셋째는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연기하듯이 다양한 시도를 하라는 ‘소통을 연출하자’이다. 이렇듯 금과옥조 같은 원칙하에 단련된 노리단의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언제 어디서나 발휘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서운 한파에도 불구하고 노리단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포스코 CF 모델로 발탁되는가 하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핑팽퐁’ 앙코르 공연도 준비 중이다. 제 19회 ‘마카오 국제 아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두 번의 공연을 가졌고 지난 10월 15일 2008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부대공연으로 초대받아 당시 관객점유율 95%를 기록한 ‘핑팽퐁’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11월 22일부터 12월 7일까지 2주간 선보인다. 산업폐기물 악기의 멜로디 타악 퍼포먼스와 판타지 드라마가 결합된 넌버벌 뮤직 퍼포먼스 ‘핑팽퐁(PingPangPong)’의 화려한 무대를 다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