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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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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충고 우연이다. 어느 단체의 기념행사에 갔다가 아는 선배랑 상봉했다. 거의 4년 만에 보는 얼굴. 반가웠다. 내가 다음 행선지가 있어서 헐거운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 날인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었다. 선배가 물었다. ‘나 많이 늙었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꼭 저렇게 물어본다. 식상한 대사가 웃겨서 ‘응’ 그랬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인터뷰를 갔다가 다시 우연히, 마주쳤다. 깜짝 놀랐다. 두 번의 우연을 기념하여 일을 마치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더라. 재물운이 넘쳐 자랑거리가 많은 사모님 동창의 재회라면 모를까, 없는 자들의 사는 얘기는 사는 게 힘든 얘기로 흐르기 마련이다. 또 삶의 골치 아픈 문제는 대부분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냥 관계가 아니라 끊을 수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관..
어떤 재회 서울에 6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이틀만에 집밖을 나가 단지내 하얀 눈밭을 보노라니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사랑 태지도, 못잊은 그놈도 아니다. 예전에 계시던 경비아저씨다. 지나치게 정직한 연상작용에 나 자신도 당황했지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낭만으로 바라보기엔 눈이 산사태 수준이고 도로가 빙판길이라 걱정이 앞섰다. '아저씨가 계셨다면 우리 동네 앞에 눈도 더 많이 치워주셔서 주민들 다니기가 한결 수월했을 텐데...'싶어 아저씨를 그리워했다. 며칠간 눈이 치워진 오솔길로 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오늘 처음 주차장엘 갔다. 방학을 맞아 온종일 방과 부엌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냉장고보이 냉장고걸 덕분에 식량이 바닥나버렸다. 대대적으로 장을 보고자 근 5일간 방치된 차를 찾았다. 우리..
사람이 변한다는 것 저번에 선생님 만났을 때 선생님이 쓴 소설 세 편을 전달받았다. 집에 와서 꼼꼼히 읽어보고는 감상문을 써서 메일로 보냈다. 객관적 독자의 입장이 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비평전문가도 아니지만, 글과 선생님을 사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말씀드렸다. 이런 내용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정갈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는 질투심을 유발했습니다. 여기에 깊은 성찰 끝에 삶 속에 터진 명문장이 있었으면 글의 품격이 더 살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A작품은 구심력이 뛰어나 잘 읽히는데 주제의식이 미약합니다. B작품은 20년 전이 아닌 지금 나온 이유가 설득력이 없는데다가 남주인공 캐릭터가 밋밋해서 러브스토리에 긴장이 안 생깁니다. C작품은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가슴 먹먹하면서도 덤덤히 읽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