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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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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할아버지와 <송환>장기수 할아버지 닮은 점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든 것은 두 분의 입이다. 하루에 한 마디를 채 안 하는 할아버지의 꾹 다문 고집스러운 입. 마치 노동요처럼 신세타령이 구성지게 이어지는 할머니의 한탄스러운 입. 그리고 한평생 논매고 밭 가느라 구두 뒤축 닳듯이 닳아버린 투박한 손이 보였고, 뼈마디가 톡 끊어져버린 뼈 빠지게 일한 할아버지의 앙상한 발, 대나무같이 파리한 다리가 눈에 걸렸다. 수만 개 태양의 흔적이 남긴 잡티와 검버섯으로 뒤덮인 할머니의 거무튀튀한 얼굴까지. 두 어르신의 몸의 부분별 잔상이 오래 남았다. 무슨 고흐의 그림을 보듯 빨려들었다.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때도 그랬고, 싫지 않았다. ‘늙은 얼굴’을 영화가 아니면 그렇게 오래토록 부분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있을 기회가 사실은 없다..
2008. 여름. 김동원 감독 인터뷰 풀버전_1 #0 김동원, 애틋한 동경 을 본 사람들은 거의 그랬을 것이다. 감동이 넘쳐 감독님을 존경하게 됐다. 감동의 크기만큼 감독이 궁금했다. 은 곧 김동원의 자서전이었다. 그리곤 잊었다. 잊고 지냈다. 내가 송환을 감명 깊게 봤다는 사실조차. 한 달 전, 변성찬 선생님이 인디포럼에서 을 봤다면서 감독님 얘기를 꺼내셨다. “어, 선생님 저 그 영화 보고 싶어요. 구해주세요.” 다시 감독님을 떠올렸다. 마치 옛사랑처럼 그의 이름 석 자에 마음이 아련해졌다. 그렇게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다가 오마이뉴스에서 취재의뢰를 받았다. 나는 ‘운명’이라고 정의 내렸다. 확대해석을 해버렸다. 너무 좋았다. 마구 설렜다. 염려도 앞섰다. 4년 전에 쓴 감상 후기를 읽어보았다. 절절하더라. 4년 전의 내가 대견했다. 고민했다. 어..
김동원 영화감독 - 차갑게 관찰하고 뜨겁게 기록하라 만약 길거리에서 누군가 그를 보고 “감독님~"하고 부른다면 사람들은 영화감독보다는 야구감독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다큐멘터리 으로 유명한 김동원 감독. 그는 만화에 자주 나오는 캐릭터를 닮았다.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가난한 2군 선수의 집에 남몰래 쌀 한가마니 갖다 놓을 것 같은 ‘휴머니티’한 인상이다. 서류가방보다 괴나리봇짐이 어울리는 그가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영 어색하다고 하다는 김동원 감독. 하지만 교수실은 물리적 공간일 뿐. 그가 거주하는 장소는 그대로였다. 인터뷰 당일 연락두절로 애를 태운 그는 “새벽에 광화문에서 물대포 좀 맞다가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터놓는다. 물대포 세례에 핸드폰 분실한 ‘우리들의 교수님’ 물론 카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