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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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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정리> 욕망하는 신체의 정치경제학 # 복합적 신체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착취에 대항해 ‘우리가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는데 기계가 맞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노동자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로 산업기계의 이지적 기관이다. 인간이 어쩌다가 산업기계의 부속이 됐을까. 자본의 욕망(리비도) 때문이다. 자본은 자기 몸집을 불리기 위해 인간을 손으로, 화폐를 혈액으로 삼아 생산물을 낳는 신체다. 자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욕망하는 신체는 단일체가 아니라 복합체이고 기계처럼 작동한다. 욕망의 흐름 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물과 동물의 구별없이 모두 접속하여 네트워크 형태의 신체를 구성한다. 즉, 하나의 부분-기관이 항상 다른 부분-기관에 연결되면서 형성되는 리비도적 신체이다. 어떤 욕망의 흐름을 생산하고 어떤 흐름을 절단-채취하는지에 따라 신체는 매번 다른..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우리시대 이데올로기의 실재들 라캉의 실재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재에 관한 정의는 흡사 선문답을 연상시킨다.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선문답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나 깨닫지 못한 입장에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재는 관성적인 현존, 실정성의 충만, 상징적 질서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 간극이다. 실재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견고하고 꿰뚫을 수 없는 중핵.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론적인 일관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괴한 순수 실체이다. 등등. 실재는 단단한 덩어리이면서 구멍이고 현존하면서 선행한다. 라캉(지젝)에게 이데올로기는 환상이고 이 세계를 이루는 상징질서이다. 실재는 환상 가로지르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박정수의 분석을 참조해 우리시대 이데올로기의 실재들을 살펴보자. * 파시즘의 실재 파시즘의 인간관계는 고문자와 피고문자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지젝의 반복, 은유, 혁명 반복, 중층결정, 죽음충동, 그리고 혁명. 내겐 삶을 구성하는 원리로 읽힌다. 니체의 계보학에서 사건의 반복에 민감해야한다는 걸 배웠다. 그 말이 뇌리에 박힌 건 나의 삶에 반복되는 실존의 고민과 고통들 때문이었다. 개인사이건 사회적문제건 ‘반복’을 겪을 때면, 아니 당할 때면 내가 꼭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복을 줄 세워 놓고 돌파지점을 애써 고민하곤 했다. 그런데 계보학에서 반복 분석은 사건들의 점진적 진보곡선을 추적하는 게 아니다. 어떤 역사적 배치 속에서 탄생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반복. 박정수가 강의안 1면 톱으로 다룬 반복. ‘왜 반복이 중요한가?’라는 헤드라인이 가슴을 때린다. 우리는 보통 반복을 과거의 어떤 것이 차이를 낳는 시간의 부침을 견디고 동일하게 되돌아오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