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0.16] 고양이 장례식
  2. [2012.03.30] 비 / 황인숙 (2)
  3. [2011.10.01] 해방촌, 나의 언덕길 / 황인숙 (6)
  4. [2011.01.30] 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 / 황인숙 (6)

고양이 장례식

[차오르는말들]

 

엄마, 오늘 하리 죽은 지 24일째야.” 딸아이가 무심히 말했다. 하리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다. 아니다. 키웠다고 말하기엔 해준 게 없다. 심지어 나는 얼굴도 몇 번 못 보았고 쓰다듬어 보지도 못했으니까.

나는 그간 애완동물을 키우자는 아이들의 집요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키우는 건 너네로 족하다고 공언했다. 집에 화초 한 포기 갖다 놓고 물주는 일도 내키질 않았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우주를 떠받드는 일과 다르지 않았기에 개나 고양이 털 한 올이라도 더해진다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들의 친구가 기르던 고양이가 왔다. “생후 10개월 밖에 안 됐는데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고양이가 딱하다는 말에 나도 맘이 흔들렸다. 아들은 용돈을 아껴 사료비를 대고 대소변을 치우는 등 정서적 물질적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허나 세상사 얄궂다. 고양이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두문불출 칩거했다. 나는 발길이 자꾸 갔다. 집안 어느 구석에 체온덩어리가 있다는 게 마음 쓰이지 뭔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밀당인가. 살금살금 들어가면 쌀쌀맞게 야옹~’ 했다. 그러길 일주일 지나자 고양이는 아들의 품에 공처럼 폭 안겨 있곤 했다. 아들은 고양이랑 새벽까지 놀다가 잔다고 으스댔다. 녀석은 마침내 내게도 야광봉 같은 눈길을 주었다. 정면으로 용안을 마주한 날, 나는 하리야부르며 정식으로 통성명을 했다. 아들은 고양이가 적응을 한 것 같다며 중성화 수술을 시키러 병원에 간다고 했고, 그날 오후 비보가 날아들었다. 하리가 마취 쇼크로 운명했다는 것이다.

열사흘 만이다. 만나자 이별이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다. 비유가 아니라 수의사는 골프 치다가 골프채에 벼락 맞아서 죽을 확률만큼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눈물바람 하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어디로 어떻게 가는가. 알아봤더니 일반쓰레기 봉투에 분리배출 하는 것이라고 규정이라고 했다. 철렁했다. 속이 비치는 홑겹 비닐에 싸여 오물들과 뒤섞여 내동댕이쳐지는 존재라니. 남편은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알아봤다. 딸아이는 고양이 장례식에 간다며 검은 옷을 챙겨두고 잠들었다. 남편과 아이들, 아들 친구는 하리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강화도의 한 사찰 근방에 뿌려주었다.

한달 후, 고양이 장례비용으로 쓴 20만원의 카드대금이 나왔다. 사랑의 시간이 가면 통속의 시간이 온다더니, 아니 사랑은 끝나도 카드 값은 남는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예기치 않은 지출로 잠시 근심하는 엄마와 달리 딸아이는 오늘도 하리의 생전 동영상을 틀어놓고 화면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같이 갸르릉거린다. “엄마, 하리가 10개월에 죽었잖아. 그게 사람 나이로 치면 17살이래. 2. 세월호에 죽은 언니오빠들이랑 신세가 같아.” 애도란 자기 안에 타자의 묘소를 마련하는 일(자크 데리다)이라고 했던가. 엄마가 세속의 시간을 사는 동안 열세 살 딸아이는 애도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하리가 죽은 지 24. 단원고 아이들이 죽은 지 164. 어른들 잘못으로 별안간 떠나간 무구한 영혼들, 그곳에서 다 같이 행복하길.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황인숙,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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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황인숙

[올드걸의시집]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싶다......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황인숙 시집, 문학과지성사

 

일요일에 성묘를 갔다왔다. 집에 두고 간 핸드폰에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뭔가 봤더니 추장 부친상 소식이다. 가슴이 덜컹했다. 며칠 전까지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기위해 일산 근처로 이사해야할 것 같다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뭐 그런 얘길했었다. 아버지가 오래 아프셨다. 27년 정도. 예전에 추장 인터뷰할 때, 아버지 얘길 꽤 길게 했었다. 아버지가 막내인 그를 유독 예뻐했고 아버지에게 업혔던 따뜻한 등을 기억하고, 중3때부터 아팠던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화학과를 지원했고 등등. 그 나눠가진 기억 때문인지 마음이 아팠다. 여러가지 이유로 심란했다. 작년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어떤 일인지는 분명한데, 감정 상하는 일이 있어서 다투었다. 내가 삐진 상태였다는 말이 맞겠다. 이메일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할말 다 했고 그도 할말 하는 듯 보였다. 서로 조심하는듯 그랬어요 저랬어요 예의 갖췄지만, 적대가 형성되면 인간은 가장 상처주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을 나는 싸울 때마다 느낀다. 니체가 말하는 해석이 그런 뜻은 아닐 텐데요. 나는 그러고. 시를 읽을 때 그렇게 읽진 않을 텐데요. 그는 그랬다. (정확히 대칭적인 응답을 해오는 이 대목에서 나는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

서울에 와서 며칠 후 술 마실 때. 로고스로 생긴 문제를 로고스로 풀거냐고 나는 화를 내고, 그는 그럼 파토스로 어떻게 풀 건지 말해달라고 했다. 팽행선을 그으며 달렸다. 내가 자기에게 정치적이라고 말해서 기분이 나빠서 그 다음 부터는 편지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내가 정치적이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한 거는 같다. 나는 지식(인)은 권력이 아니고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일 뿐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연구실 동료들이 나의 판단에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못 참겠다. 자기배반적 행위. 지식의 권력화. 내가 여기서도 이걸 봐야하는가 억장 무너진다. 그래서 평소 다정다감한 내가 꽤나 화를 냈다. 냉랭한 한 때를 보내면서 문득 쓸쓸했다. 그는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이었고 사람이며 사람이어야 하는데 신뢰가 흔들리니까 나라고 좋을 리는 없다. 어느 날은 버스 타고 가다가 민에게 말했다. 추장이랑 같이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뭘 해보고 싶었는지 까먹었다고. 그래서 슬프다고...근데 제아무리 삐친 마음도 시간이 섞이면 흐릿해진다. 얼굴 보면 무장해제된다. 꼭 그렇게 해석해야했었나, 자기반성의 시간이 도래힌다.

미운 기억이 휘발되는 중이었다. 맹렬히 화내는 것도 크나큰 애정인데 오래 긴장을 유지할 만큼 기력이 없다. 나이들면 이런 점이 좋다. 나이들어 부드러워지고 미혹되지 않는 건 세상과 화해해서가 아니라 생체에너지가 소진돼서다. 청년의 위험한 피, 솟구치는 피를 지키며 살수 없을 때 기성세대가 되는 거다. 사실 뭐, 사람 사이 정서적 유대라는 것이 얼었다 녹았다 그럴수 있지만, 그래야 자연스러운 것이겠으나, 그럴 때마다 이렇게 왕창왕창 티가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에게 미안하고 그러던 참이었다. 부친상 소식이 그 때 들려온 거다. 다정의 화법을 잃어버린 나를 어색해하고 있을 때. 추장이 그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시고 있을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스타벅스 스틱 커피 두 개 싸들고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해서 문상을 갔다. 검은 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순간 울컥했다. 나로서는 최대한 머물다가 새벽에 왔다. 웃고 떠들고 다른 친구들이랑 소란스럽게 놀았다. 상가집은 북적여야한다며 열심히 수다의 밤을 보냈다. 내가 남자친구였으면 발인까지 보고 갔을 거라며 민을 설득해 앉혀놓고 왔다. 할일이 없어도 누가 옆에 그냥 있어줘야할 때가 있다고 얘기했다. 수면 리듬이 깨지고 정서 리듬도 널뛰고. 일주일 내내 뒤숭숭하게 보냈다. 친구가 뭔지. 우정이 뭔지. 신념이 뭔지. 아는 관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맴돌고 떨구고. 나의 살아감은 미안함의 증식. 지금 전주에는 봄비가 온다는데...스산스산 종종거리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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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나의 언덕길 / 황인숙

[올드걸의시집]

 

이 길에선 모든 게 기울어져 있다

정일학원의 긴 담벼락도 그 옆에 세워진 차들도

전신주도 오토바이도 마을버스도

길가에 나앉은 됫돌들도 그 위의 신발짝들도

기울어져 있다

수거되기를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들도

그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도

가내 공장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도

무엇보다도 길 자신이

가장 기울어져 있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갈 때면 몸이 앞으로 기울고

내려올 때면 뒤로 기운다.

이름도 없고 번호도 없는

애칭도 별명도 없는

서울역으로 가는 남영동으로 가는

이태원으로 가는 남산 순환도로로 가는

그외 어디로도 가고 어디에서든 오는

. 경사길.

 

- 황인숙 시집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해방촌과 이별했다. 짐차를 보내고 정수샘 차로 비탈길을 털털털 오르면서 친히 호명했다. ()정일학원 안녕. 용왕정김치찌개집 안녕. 골목집 안녕. 수라간 안녕. 뚜래주르 안녕. 고창집 안녕. 7080콘서트 안녕. 후암동 종점 떡볶이 안녕. 용산02마을버스 안녕. 기사님도 안녕. 무거운 짐 들고 타던 꼬부랑 할머니들도 안녕. 안녕. 안녕.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나뭇잎 떼듯 속으로 읊었다. 징글징글한 이 오르막길캄캄한 밤중에 공부가 끝나고 힘의 과소상태에서 오르는 그 길이 꼭 북한산 같았다. 5분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무렵이면 스산함 절정이다. 남산 아래에서 서울의 가난한 야경을 보노라면 외롭고 그립고. 버스는 오지 않고. 눈물났다. 세상에서 분리된 나. 생생한 존재느낌. 이제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사라지는가. 사유의 벽돌을 나르던 기울어진 그 길. 나의 감각세포를 되살려주던 그 곳. 안녕. 나의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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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 / 황인숙

[올드걸의시집]

너는 종종 네 청년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네가 켜켜이 응축된 시간이라는 것을
네 초상들이 꽉꽉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나온 풍경들을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 지니고 날아다니는 바람이
너라는 것을

그 때 너는 청년의 몸매를 갖고 있었다
희고 곧고 깨끗한
아, 청량한 너의 청년! 

그 모습은 내 동공 안쪽
뇌리에 각인돼 있고
내 아직 붉은 심장에
부조돼 있다.


- 황인숙 시집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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