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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6] 벚꽃 핀 술잔 / 함성호 (7)
  2. [2010.08.31] 낙화유수 / 함성호 (14)

벚꽃 핀 술잔 / 함성호

[올드걸의시집]

마셔, 너 같은 년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분지 내가 작분지

술이나 쳐봐, 아까부터 자꾸 흐드러진 꽃잎만 술잔에 그득해

귀찮아 죽겠어, 입가에 묻은 꽃잎이나 털고 말해

꽃 다 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게

니는 니가 좀 따라 마셔

잔 비면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말고

술보다 독한 게 인생이라고?

뽕짝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술이나 쳐

또 봄이잖니

- 함성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 , 문학과 지성사





지난 금요일 파티하쥐에서 인디밴드 네 팀이 출연했다. 홍대 두리반 주차장이 해방구가 됐다. 미니 락페의 열기. 오랜만에 잘 놀았다. '푼돈들' 사랑스럽다. 이름처럼 헐렁한 그룹이다. 기타 2. 베이스 1로 이뤄진 삼인조. 드럼도 없다. 사보 취재다니면서 만난 직장인 밴드 정도의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컨셉이 뚜렷하다. 자칭 '옛정서 발굴밴드'. 올드하다. 신파와 뽕끼가 좌르르 흐른다. 들기름처럼 느끼한데 엿가락처럼 착착 감긴다. 매력적이다. 그밤 이후, 계속 입에서 멜로디가 굴러다닌다.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결코 녹지 않는 싸구려 눈깔사탕의 위력. 로맨스 조의 보컬은 뼈 마디마디를 눌러준단 말이지. 몇달 전 연구실에서 '공공미술' 토론회 할 때 왔던 분이다. 미술도 하고 음악도 한다. 낭만종결자. 그날 발표할 때 옆에 앉은 이. 문화컨텐츠 기획자랑 연신 귓속말해댔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진짜 멋있어요." 그러게 말이다. 상상력의 과잉상태와 고급한 똘끼와 부족함 모르는 가난이 탐난다.
  
파티 뒷설거지로 새벽 3시 다 돼어 귀가했으며, 잠깐 자고 일어나서 글쓰기 수업에 갔는데 2시에 시작해서 7시 40분에 끝났다. 같은 분량의 강의안, 비슷한 구성의 수업인데 왜 이리 러닝타임이 길어지는지 미스테리다. 5시간 40분. 최고 기록. 피로회복 차원에서 카페모카와 아메리카노 2잔을 연거푸 마시고 생수 1통을 들이마신 나는 수업 중간에 오줌보가 터지려고 해서 뛰쳐나갔다. 요란한 마지막 수업. 다음주 합평 MT만 남았다. 배고파서 온몸이 아팠다. 친구들 여덟 명과 밥앞에 주저앉았다. 벽마다 달력그림이 걸렸고 일년내내 성탄전구가 깜빡이고 7080노래가 줄창 흐르는 '울엄마' 누군가 '엄마손'으로 착각했던 이름도 구슬픈 밥집. 밥 다 먹고 해방촌부터 서울역까지 걸었다. 한 30분 코스. 가로등불빛 쏟아지는 밤길. 구불구불 보도블럭길. 미개발 둘레길. 글쓰기수업 끝나면 토요일에 심심할 거 같아요. 누군가의 말에 미리 외롭다. 노래했다. '외로움 떨쳐 버리고 웃자 웃자..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수봉언니 애달븐 음성이 회초리같다. 그래. 뭐. 술보다 독한 인생 무슨 걱정이더냐. 뽕짝 흐르는 밤. 늦봄 맑은 밤. 근데 제목이 왜 '젊은'태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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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 함성호

[올드걸의시집]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

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

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

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

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

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

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

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 함성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 중에서


 

 

사랑하는 일을 왜 사과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런 설정이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놓고 배우자 혹은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속죄의 발언을 한다. 난 그것이 못마땅하다.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사랑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의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것이다. 맹금류가 양을 잡아먹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와 같다. 동의할 수 없다. '그 잔인'은 아무 죄가 되지 않는다. 흔한 비유로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닥치는 ‘사건’이다. 신호를 준수하고 횡단보도 정 가운데로 조신히 건너도 사고가 나려면 어떻게든 나지 않나. 모든 사랑은 ‘어찌할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선택불가. 일단 수용한 후의 감정조절이 있을 뿐이다. 안 당하면 화평하고 무난하게 사는 것이고 당하면 폭풍이 한차례 덮치는 것이다. 몰락도 나쁘지 않다. 이런 얘길 하면 묻는다. '니 남편이 그래도?'라고. 마음 같아선 존중해주고 싶다. 한 때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가 남편이다. 그에게, 다시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전제하는 게 더 쓸쓸하다.

태진아/이루 부자와 작사가 최희진씨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오서와 김연아도 그렇고. 김연아 엄마가 회사차렸대서 착찹했는데, 암튼 동시에 벌어진 일들이 유사한 구조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과년한 남녀가 논쟁의 중심에 있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엄마아빠가 시키는대로' 사는 자식들. 한국사회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다. 태진아가 자기 아들 이루와 헤어질 것을 종용하며 그녀에게 공갈협박을 했단다. 그녀 말마따나 ‘왕족도 재벌가도 아니면서’ 온갖 모욕을 다 당한 모양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침드라마는 허구가 아니다. 이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비열한 거리다. 추억이고 사랑이고 돈으로 다 밀어버리려는 불도저 같은 남근-권력에 저항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는 자신의 태도가 스스로 몰락하는 길임을 알지만 억울하게 오래 사느니 핫하게 하루를 살겠다고 벼른다. 게임은 끝났다. 원래 지킬 것이 많은 사람과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이 싸우면 후자가 이긴다. 김예슬 선언의 결기가 느껴진다. 나는 오늘 사랑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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