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비판요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7.17] 자본의 반복과 허무주의
  2. [2012.06.24] 노동이 교환가치이길 중단하려면 (2)
  3. [2012.06.11] 정치경제학비판요강 - 화폐와 자본 그리고 노동 (7)

자본의 반복과 허무주의

[스피노자맑스]

예전에 사보취재 다닐 때 들은 얘기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본사가 부산이었다. 서울 사무소 직원이랑 취재를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무 생각 없이 KTX가 생겨서 왕복시간이 단축되니 덜 피곤하고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모르는 소리 말라고 한숨이다. 새마을호 시절에는 어차피 하루만에 다녀오질 못하니까 부산에서 일 보고 회도 먹고 바다도 보고 좀 놀다가 다음날 왔는데 KTX가 생기니 당일출장 처리가 되고 다음날 피곤한데 또 출근해야해서 더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 기차나 버스를 타면 멀미나서 힘드니까 시간이 단축되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산업자본주의 초기에 가장 먼저 철도가 깔렸다. 물품운송. 자급자족하던 공동체에서 물건이 '상품'의 외형을 띠고 공동체 바깥으로 나가려면 길이 필요했다. 나치집권 시기에도 토건자본은 부흥기를 맞았다. 사람운송을 위해 철도 깔고 수용소 짓느라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굴뚝산업이 발달한 영남지역에 일찌감치 널찍하게 뚫린 고속도로. 운송수단이 발달하는 것은 자본의 순환에 전적으로 기여한다. 그렇게 자본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의 더 큰 폐해는 착취의 강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의 감각을 '빨리빨리'로 바꿔놓아사람을 쫓기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KTX가 생기면서 바깥풍경도 사라지고 사람사이 대화도 사라진 것처럼.자본의 속도가 빨라지면 자본에 종속된 일반인의 삶도 빨라진다. 삶이 쫓기는 것은 목적만 보기 때문이고 목적만 바라보면 주변부의 작고 약한 존재를 놓치고 밟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터넷 서점과 쇼핑몰의 '당일배송'이란 문구만 봐도 숨이 막힌다. 저 당일배송, 30분 배송 등 고객만족을 위해 죽어가는 건 배달노동자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각박한 삶의 공기를 형성해서 나에게도 나쁜영향을 미친다.     

 

얼마전 화물연대는 못자고 못먹고 과적하는 등 무리한 운송업무에 시달리다 못해 파업에 돌입했다. 사람보다 돈의 원리로 작동하는 자본. 그 자본은 유통속도를 '0'화하려는 의지(허무주의)가 있다는 맑스의 분석. 회전속도가 잉여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산물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경우 '거리'는 생산비용 증대로 나타난다.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자본의 시도.  저렴한 수송 및 통신수단의 생산은 자본에 기초한 생산의 조건이 된다며 맑스는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이라고 말한다. 도로의 경우는 개별자본의 특수한 이해가 아니라 자본 일반의 이해가 달려있는 생산조건이다. 자본이 도로건설을 필요로하고 또 도로가 수익을 낼 수 있기 위해서는 "대규모 교류를 전제"해야 한다. 사업의 필요성은 크지만 수익이 작을 경우 "자본은 철도를 국가 부담으로 전거시키거나..국가적 욕구로서 나라 전체에 미룬다. 자본은 이익이 있는 사업들..이익이 되는 사업들만을 수행한다."

 

유통시간 없는 유통

 

* 자본의 회전 

:  화폐 -> 노동과 생산수단-> 생산물 -> 화폐로 전환되는 순환 

"자본의 화전에서는 출발점이 귀환점으로 정립되어 있고 귀환점이 출발점으로 정립되어 있다"

 

- 자본순환의 중요성. "생산과정은 상품이 화폐로 전환되기 전에는 새롭게 시작될 수 없다.. 한 생산국면이 다른 국면으로 막힘없이 흐르듯이 이행하는 것이, 과거의 모든 생산형태들에서와는 전혀 다른 정도로 기본조건으로 나타난다."

- "주어진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생산물이 생산될 수 있는가, 주어진 시간 동안에 자본이 얼마나 자주 증식될 수 있는가, 그것의 가치를 재생산하고 배증시킬 수 있는가는 유통의 속도, 유통이 경과하는 시간에 좌우된다."

 

* 자본의 회전을 결정하는 시간은 크게 두 가지 -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유통은 생산과정에서 정립된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일 뿐 가치를 창출증식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가치 감소를 초래.

    유통시간을 단축시킬수록-자본의 회전을 늘릴수록- 자본에 유리하다.

-> 자본은 가치증식을 위해 생산과정 - 잉여노동시간 늘림, 유통과정- 자본의 회전수 늘림

-> 유통속도가 빠르면 자본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동일한 더 많은 잉여가치를 낳을 수 있다

    '유통속도가 자본의 크기를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은 가치자체에는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는다.

 

"자본은 한편으로 교류, 즉 교환의 모든 장소적 제약을 무너뜨리고 지구 전체를 그의 시장으로 정복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에 의해 공간을 절멸시키고자 한다."

---> 유통시간 없는 유통은 자본의 필연적 경향

 

* 자본가의 횡탈   

자본가가 자신의 시간을 바쳐서 유통에 나섰다고 해도 그것은 과잉시간, 비노동시간,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시간이다.

유통비용은 자본가의 시간이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은 것.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노동시간을 소모하는 과정이다.

"자본가는 사회를 위해서 노동자들에 의해 차출된 자유시간, 즉 문명을 가로챈 것이다."

 

* 생산과정 자체의 기술적 조건이 자본의 회전에 미치는 영향 문제 제기

-> 만약 농업처럼 어떤 자연적 조건에 따라 일정시간 동안 대지에 작물의 성장을 맡겨놓고 기다려야 한다면,

즉 생산과정 내에서 산 노동의 결합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다면 자본의 회전에 영향을 미친다. (비생산적)

 

자본의 소유통과 대유통

 

* 소유통:  노동자에게 급료지급 부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유동자본.

 "자본과 노동력 사이의 소유통은 자본 자체를 정립하고 자본의 증식과정의 조건이며 자본의 한 형태 규정, 자본의 실체도 정립한다"

* 대유통: 자본이 유통시간으로 나타나는, 생산국면 바깥의 자본운동.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구분

 

맑스는 고정자본-유동자본을 그 형태와 내용,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에서 해명

* 고정자본은 생산과정에서 고정. 생산과정 자체에서 소비되고, 다만 소멸하면서 가치를 유통으로 넘겨준다.

사용가치는 남지만 교한가치는 넘어간다.

"고정자본은 생산과정에 들어가서 머물자마자 생산과정에서 사라지며 소모된다."

-> 유동성이 커보이는 사물들 포함. 석탄, 목재, 기름, 수지 등 도구재료

* 유동자본은 사용가치가 양도될 때 교환가치도 실현된다.

 

* 고정자본의 자본의 구성부분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유통시간이 증가한다.

"일정시간에 그것의 재생산 횟수가 감소함에 따라, 또는 일정한 시간에 재생산되는 자본의 양이 감소함에 따라" 잉여가치의 생산이 감소. 

->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즉 기계화가 현실화될수록 이윤율은 내려간다.

 

* 자본의 회전을 줄이는 규정들

1) 고정자본의 경우 생산과정에서 천천히 소비되므로 자본의 회전을 감소시킨다.

2) 멀리 떨어진 시장. 생산물의 화폐로의 전환에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자본의 회전을 감소시킨다.

3) 농산물처럼 생산과정에서 생산물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자본의 회전이 감소될 수 있다.

 

자유경쟁에서 나오는 자유환상

 

* 자유경쟁에서 자유롭게 정립되어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자본이다.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자마자 자본은 지팡이를 내던지고 자기자신의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

-> 이 법칙, 이 외적인 필연성의 현실화가 자유경쟁. 이런 자유는 "모든 개인적 자유의 가장 완벽한 지양이다."

* 자유경쟁 찬미자들이 떠들어대는 "개인들의 사적이익 추구가 일반이익을 실현한다"는 말은

사적인 이익 충돌들의 상호작용이, 자본에 기초한 생산조건들을 재산출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맑스 읽고 나면 서늘하다.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

 

신고

노동이 교환가치이길 중단하려면

[스피노자맑스]

 

"임금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재생산도 포함한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의 이 표본이 죽으면, 다른 표본이 그를 대체한다. 50명의 노동자가 죽으면,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50명이 나타난다." (정경비요1권 -368)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한 구절을 같다. 뻔한 얘기.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인데 '나타난다'라는 동사가 낯선감성을 일으킨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걸까. 무한증식 무한복제 가능한 존재로 산다는 것의 쓸쓸함.  한 존재가 쉽게 다른 존재로 대체된다는 게 자본주의적인 폭력구조를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쌍차 분향소의 22개 영정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22명의 죽음은 22명의 다른 노동자로 대체되어 자동차는 차질없이 생산된다. 엠비시는 파업 130일을 넘겼는데도 방송은 그런대로 멀쩡히 진행되고. 재능노조는 61일로 농성1625일이라고 했다. 이제 투쟁사업장에서 천일은 기본. 쌍차걷기대회에서 단식농성 20일 넘긴 언론노조 위원장이 그랬다. 엠비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제 시작이라고.

 

맑스가 말하는 착취는 노동자가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부등가교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환가치 자체의 착취 구조를 문제삼는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게끔 되어있는 구조. 자본주의에서 생겨난 이 교환가치 시스템이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자가증식 운동이다.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능력을 사용해야 생기므로, 노동은 잉여가치의 원천이 된다. 생산수단이 박탈된 자유로운 개인(굶어죽을 자유를 가진 개인)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팔고 자본에 피땀을 흡빨리면서 임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구글도 예외없다. 자본의 질서에 들어갈 때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할 때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자아실현의 꿈을 펼칠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게 맑스의 주장이다. 여기서 발생되는 물음. 자본의 외부는 어떻게 창출하는가.  

   

공장이나 자본을 매개하지 않고서 바깥 세상과 관계 맺고 자아실현을 경험할 수는 없을까.

노동이 (교환)가치이길 중단하고, 노동이 자기단련이 되는 길은 없을까.

일할수록 피폐해지지 않고 일할수록 자아확장이 일어나는 그런 노동을 맑스는 단련이라고 불렀다.  

 

맑스의 또 한 가지 문제제기.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원자재는 썪는다. 기계는 먼지가 쌓인다. 공장은 폐가가 된다. 가령 집에서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시들고 냉장고 야채도 썪고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 것과 같다. 고로, "노동은 죽은 것을 살려내는 불이다." 그런데 정작 그 불의 담지자인 노동자는 복락을 누리지 못하고, 자본가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고 보물을 얻는다는 게 맑스의 지적이다. 노동자가 노동을 발휘해서 물건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손길이 닿지 하지 않았으면 쓰레기가 됐을 그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그에 따른 대가는 지불받지 못한다는 거다. 꿩먹고 알먹는 자본가. 노동자는 이중삼중 보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중삼중 착취를 당한다. 맑스 읽으면 심란하다. 한 인간이 피조물 상태에서 세계내존재로 던져져서 삶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고달픈 곡예가 되어야하는 걸까. 왜 노동자는 평생 일하고도 가난하고 고달픈가. 이 부조리한 세상은 왜 이렇게 잘도 돌아가는 걸까.   

 

 

 

신고

정치경제학비판요강 - 화폐와 자본 그리고 노동

[스피노자맑스]

<정치경제학비판요강1>172~308 요약 

 

1. 화폐의 기능형태

화폐는 모순되어 보이는 기능들의 복합체다. 맑스는 화폐가 어떤 기능적 형태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 역사, 그로부터 초래되는 위기들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1) 가치척도: 상품들이 교환되기 전에 이미 전제되는 척도로서의 화폐. 척도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로 기능한다. 가격으로서의 상품은 관념적 화폐로 전환된다.

2) 유통수단: 상품이 화폐로 실현될 수 없다면 그 가격은 단지 상상에 머물 뿐이다. 화폐는 모든 사물의 형리이고 모든 것이 바쳐져야 하는 화신이며, 모든 상품의 전제군주가 된다.

3) 화폐로서의 화폐: 부의 축적. 화폐가 가치척도나 유통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환. "화폐는 더 이상 수단으로도 척도로도 현상하지 않고 자기목적으로 현상한다“ -> 자본으로서의 화폐 규정을 예감.

 

* 유통수단으로서 화폐도식 W(배추)-G()-W(자전거): 화폐는 유통바퀴로서 유통에 머묾. 영구기관으로서 끊임없는 자기회전.

* 화폐와 화폐를 상품이 매개하는 도식 G()-W(배추)-G(): 화폐가 상품들의 단순한 교환수단으로서, 중간자로서, 결론의 소전제로서 나타나는 형태와는 특유하게 구별된다. “화폐도 유통으로부터 이탈될 수 있음을 보여줌.

 

** 화폐 그 자체를 목적으로 유통에서 퇴장시킨다는 것 - 화폐가 부의 보편적인 물적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화폐는 모든 사물 중의 일반자이다. 단순한 유통수단일 때는 종의 형체였지만 부의 일반적 대표자로 인식되는 순간 그것은 상품세계의 지배자이며 이 된다. “화폐는 욕망의 한 대상에 그치지 않고 욕망의 유일한 대상이 된다.” -> 치부욕의 탄생. 물욕은 화폐가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치부욕은 역사적 산물이다. 치부욕의 발전은 개성의 부재와 공동체의 몰락을 초래한다.

 

2.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1) 교환의 사회이론:

자연은 환율이나 은행가를 낳지 않듯이 화폐도 낳지 않는다.” 화폐를 역사적으로 발전된 생산관계와 상관없이 설명하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내재적 대립이 단순히 파악된 화폐관계에서 해소된 것으로 현상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더욱 다시 화폐로 도피한다.

 

2) 화폐제도의 발전은 표면적으로 자유와 평등 체제의 실현. 판매자에게는 구매자가 왕이든 노동자든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심층으로 다가서면 피상적 동등성이 사라진다. 교환가치가 생산체제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생산물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것의 규정을 따른다는 강제가 내포 됨. “결코 개인의 의지나 직접적인 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전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전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이미 사회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정립된다.”

-> 노동과 자본의 대립 잠재 : 일한 만큼 받지 못했다는 부등가교환만을 착취로 이해하고 교환가치 자체의 착취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문제 = 교환가치 체제가 이미 폭력적이라는 것.

 

3) 자본의 규정에 대한 경제학적 통념 비판:

순수유통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교환가치의 단순운동은 결코 자본을 실현할 수 없다. 유통의 외양 뒤에서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의 전제는 노동에 의한 상품의 생산,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의 생산이다.”

 

* 자본을 자본이게 하는 형태규정.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는 모든 대상화된 노동이 자본인 것은 아니다.” 만약 자본이 축적된 과거의 노동일뿐이라면, 자본은 모든 사회형태에 존재했으며 전적으로 비역사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잘못은 자본을 인간적 생산의 특수하게 발전된 역사적 단계로 만드는 특유의 규정을 추상해버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 자본은 관계로 파악해야지 사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프루동이 생산물과 자본을 동일시했던 이유는 그가 자본이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A는 그 자체로 노예가 아니다. 그는 사회 속에서, 사회에 의해서 노예가 된다.”

 

4) 자본에 대한 규정: 첫째. 유통을 전제하고 유통 속에서도 보존되는 것. 단순유통에서 교환가치의 실현은 사라지는 실현이다. 자본은 유통을 전제하지만 유통을 통해서 또한 보존되어야 한다. “자본은 번갈아 상품이자 화폐이다.” 둘째. 노동을 매개로 증식되는 교환가치. “노동의 단순한 등가물, 노동의 단순한 대상화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갱신되고 스스로 다시 유통을 시작하기 위해 노동에게만 바쳐지고 노동의 재료가 되는그런 교환가치로 스스로를 정립.

 

5) 대상화된 노동: 아무리 큰 화폐액도 그 자체로 자본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일정함이라는 한계, 그 규정을 넘어서는 무한성이 자본의 규정. 자기 증식하는 가치’. 어떤 사용가치가 자본에 마주하려면 화폐를 증대-배가 시키며 자본으로서 보존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 모든 상품들의 공통적인 실체, 교환가치들로서 그것들의 공통적인 실체는 대상화된 노동이다.

 

3. 자본과 노동의 교환

1) 자본가와 노동자의 교환: 노동자와 자본가의 교환은 등가적이다. 이 교환을 통해 자본가가 받는 것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처분이라는 사용가치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 자신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

* 임노동의 탄생: 임노동은 토지소유에 대한 자본의 행위에 의해 창출된 것. 토지에서 불필요한 입들을 청소하고 대지의 자식들을 그들이 성장한 가슴에서 떼어냄. 생산수단의 폭력적 박탈.

 

2) 절제와 근면, 그리고 박애: “최대의 근면, 노동과 최소의 소비는.. 그가 최대의 노동에 대해 최소의 임금을 받는 결과를 낳고, 노동의 일반적 가격을 낮춘다...일반적인 절약은 그들의 임금이 너무 높다는 것을 자본가에게 보여줄 것이다.” 노동자는 어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다만 환상으로서의 일반적 부가 그를 추동할 뿐이다.

 

* 맑스의 조언: 어느 정도 저축이 가능할 때 (노예와 구별하는 몫) 정서적 향유 범위를 넓혀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동, 신문구독, 강의청취, 자녀양육, 취향발전 등.

 

* 부르주아적 박애의 위선적 구호. “어떤 자본가든 그의 노동자들이 저축할 것을 요구하지만, 단지 그의 노동자만 저축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에게 노동자로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노동자 세계는 결코 저축해서는 안 되는데, 그들은 자본가에게 소비자로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 노동자가 절약을 통해 자본가가 될 수 있다는 환상. 절약을 통해 집적한 화폐가 자본이 되려면, 그것은 다시 노동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은 비자본인 노동을 가정하고 요구하는 것. “한 점에서는 지양되어야할 대립이 다른 점에서는 수립된다.” 자본이란 비노동으로서만 자본이므로, 자본이 자본이기 위해서는 노동이 자본에 마주서야 한다.”

 

3) 자본은 비노동이고 노동은 비자본이다: 노동자가 끊임없이 반복된 노동 후에 언제나 살아있는 직접적인 노동 자체만을 교환해야한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매일 반복할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력을 낭비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20년 동안 지출할 그의 전체 노동능력을 가져간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매번 생명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20년의 생명을 매번 조금씩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 자본은 노동자의 시체더미다.

 

* ‘자본은 필요하지만 자본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반박: 대자적으로 실존하는 노동이 노동자이듯 대자적으로 실존하는 자본 역시 자본가이다. 자본을 개별적인 자본가에서 분리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유일한 노동자에게 맞서 있는 유일한 자본가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다계급적 재생산. 뼈아픈 적대의 확인. 자본이냐 생명이냐.

 

11.jpg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