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 검은잎'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25] 버스 정거장에서 / 오규원 (10)
  2. [2010.03.27] 엄마생각/ 기형도 '내 유년의 윗목' (4)

버스 정거장에서 / 오규원

[올드걸의시집]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오규원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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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생각/ 기형도 '내 유년의 윗목'

[올드걸의시집]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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