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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킥킥 당신 이쁜 당신...'이소선 <어머니>

[올드걸의시집]

 

소선小仙작은 선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작은데 태어났을 때는 을매나 작았겠느냐며 옛날이야기 하듯 당신 생의 기원을 더듬는 할머니가 정겹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의 삶을 담은 영화 <어머니>를 보았다. 곱고 예쁜 이름만큼이나 영화가 소소하고 재밌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평생 살아왔는데 그런 칭호가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으니 노동자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겄냐고 조단조단 말씀하시는데 웃음이 난다. 질그릇처럼 투박하게 때론 놋그릇처럼 쨍쨍하게 때론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게 울리는 어머니의 일상 

창신동 좁은 골목길 올라간 방에서 고스톱을 판이 벌어진다. 어머니는 은행에서 출고된 포장용 동전꾸러미를 종자돈으로 꺼내놓으며 어느 금융위원장이 고스톱 칠 때 쓰라고 준 것이라고 자랑한다. 왼손에 힘이 없어 오른손 손톱을 깎지 못할 때는 신세한탄 구슬프고, 꽃무늬 이불에 드러누워 낮잠 잘 때는 들숨날숨으로 늘어진 뱃살 출렁인다. 손님들과 앉은뱅이 밥상 마주하고는 시종 어서 먹으라며 빨갛게 나눈다. 초고추장 찍어 굴을 먹고 얼음 띄운 냉면을 비비고 싱싱한 딸기를 건넨다. 주먹 불끈 쥔 걸개그림 앞에서 마이크를 쥐는 순간 눈썹 하나 떨림 없이 수천수만 노동자를 압도하고 천둥 같은 박수와 깨알 같은 웃음을 끌어낸다.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아들에게 그동안 혼자서 잘 있었느냐사람들이 찾아와서 얘기 많이 하고 가드냐묻는 음성은 진흙처럼 척척하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공터의 사랑> 부분 

 

네모난 하늘에 번지는 순수하고 투명한 긍정의 기류. 영화에는 인물다큐가 빠지기 쉬운 영웅주의적 관점이 없고 한 사람 생의 스스로 그러함이 무심한 구름처럼 흐른다. 어느 새 빗물 같은 눈물이 내린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술회하는 장면은 비통의 극에 달하고, 상처 그 이후 어머니가 사람을 챙기는 잔잔한 말들과 표정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비애’(김수영). 가령 어머니는 다큐를 찍는 감독에게 총각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있다더니 몇 살이냐 묻는다. 7살이라니까 놀이방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30만원이라는 말에 큰돈이네, 있는 사람한테는 껌 값이지만 없는 사람한테는 큰돈이지한다. 그리곤 작은 한숨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사는 게 힘들어한없이 시어빠진 그 대사가 가슴에 박혔다. 신념의 올곧음을 행하기는커녕 일상의 고단함에 치여 사는 날들. 점점 시들하고 쩨쩨하게 기우는 삶을 연민하던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말을 낚아챘다. 그러니까 기껏 영화관에 앉아 눈물콧물 찍어가며 이소선의 위대함을 보기보다 나의 초라함을 위로한 것이다.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 <울고 있는 가수> 부분  

 

눈물의 투사. 이런 적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에 시어머니가 고관절이 부러져 입원하셨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가서 병실 문을 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반응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늘 세로로 서 계시던 분이 가로로 누워있으니 낯이 설고 며칠 사이 확 쪼그라든 모습에 연민이 치밀기도 하였지만, 실은 울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멀쩡히 지내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다만 일주일이라도 앓다가 돌아가셨으면 이별을 예비했을 텐데 싶어 두고두고 한스러웠다. 입원실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를 보니 느닷없이 엄마의 얼굴이 개입한 거다. 효심 아니라 통한. 이 눈물의 사회학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엄마 친구가 하도 섧게 울어 이제 고만 우시라고 했더니 그러셨다. “니 엄마 가엾어 우는 게 아니다. 내 설움에 우는 거지.”

그 후로 종종 목도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시청 분향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려왔다.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자기설움 토해내는 갖가지 궁상과 청승의 사연들. 소방호스보다 긴 눈물의 행렬들. 고역의 시절을 살아내느라 지친 민초들은 광장에 마련된 공식 초상집에 와서 꺼이꺼이 울다가 가곤 했다. 박완서는 단편소설 <친절한 복희씨>에서 눈물에 담긴 미묘한 복합감정을 멋진 문장으로 정리했다. 첫사랑이었던 그에게 청첩장을 건네니 그 남자가 우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건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

내일의 노래란 있는 것인가

정처없이 물으며 나 운다네

- <늙은 가수> 부분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 든어머니, 이소선은 2011931일 향년 81세로 영면에 드셨다. 어머니 생애 마지막 2년을 그림자처럼 붙어서 기록한 태준식 감독 제작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더 놀다 가지라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자주 찾아뵐 게요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오던 창신동 골목에서 전체의 그림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조직과 효율이라는 몸에 밴 그동안의 작업 관성을 버리고 작업했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눈길이 고맙고도 궁금했다. 그이의 가슴에는 어떤 큰 비애의 강물이 있어 한 삶을 이리도 고요히 받아낸 걸까. 덕분에 나는 어머니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는 게 힘든데 그 힘듦에서 어떻게 재밌고 값지게 살아야할까, 삶의 기본값으로 주어진 설움과 청승을 어떻게 품고 갈까, 아주 구체적으로는 어디에 돈과 시간을 써야할까를 배웠다.

19701113. 불에 타 온몸에 붕대를 감고 끓고 있는 전태일은 엄마에게 말한다. 내가 죽는 건 암흑 속에 작은 구멍 뚫는 거 에요. 그 구멍을 조금만 넓혀주세요. 어머니 그렇게 사세요. 빨리 대답하세요. 그래.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잘 안들려요. 크게, 크게! 아들은 더 크게 대답하라고 애원하다가 눈을 감는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돌아 일주일을 잠을 못 잔다는 어머니. 생피 번지는 기억 안고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드러눕고 살아간 당신. 생전에 집회현장에서 연행이나 구류로 끌려간 횟수만도 250회가 넘는다는데, 어째서 영화에는 억척스러운 투사가 아닌 다정한 선녀가 노니는가. '킥킥 당신 이쁜 당신......' 용량이 매우 크고 자애롭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한 어머니의 영혼을 빌리고 싶다. 남의 입에 밥 들어갈 끼니를 걱정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주름이 늘고 검버섯 피어난 어머니의 생은 얼마나 시적인가.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찍어라

찍힌 허리로 이만큼 왔다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또 찍어라

또 찍힌 허리로 밥상을 챙긴다

 

비린 생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도 먹고

드러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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