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1.04] 질병을 사랑한 니체, 운명애 (5)

질병을 사랑한 니체, 운명애

[니체의답안지]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철학, 내가 지금까지 실행하고 있는 철학은, 삶의 저주받고 비난받던 면 또한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얼음과 사막을 더듬는 방랑이 내게 제공한 오랫동안의 경험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철학의 주제를 전부 완전히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내가 체험한 이런 실험-철학은 시험적으로 근본적인 허무주의의 가능성마저 선취한다; 그렇다고 이 철학이 부정의 말에, 부정에, 부정에의 의지에 멈추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철학은 그 정반대에까지 이르기를, - 공제나 예외나 선택함이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디오니소스적으로 긍정하기에 이르기를 원한다. - 이 철학은 영원한 회귀를 원한다 - 동일한 것, 매듭의 동일한 논리와 비논리를 원한다. 한 철학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 삶에 디오니소스적으로 마주 선다는 것 - 이것에 대한 내 정식은 운명애다. (니체전집 21. 16[32])



니체는 평생 질병에 시달렸다. 열두 살이던 1856년에 머리와 눈의 통증으로 김나지움을 휴학했다. 이후 내내 두통과 근시에 시달렸고 신체상의 통증이 없을 때는 자주 소화 장애와 우울증을 겪었다. 말년에는 발작 등 정신장애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어떤 날에는 밤이 지나면 더 이상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1879년 편지)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나는 중병을 앓고 있던 때도 결코 병적이지 않았다며 자신의 저서를 위대한 건강의 표현물로 칭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문건과 저서를 종합해보면, 니체는 질병을 변신의 기제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병은 내 모든 습속을 바꿀 권리를 나에게 부여했다. 병은 나에게 망각을 허용했고 또 그것을 명령했다. 병은 나에게 조용히 누워있을 것을, 여가를 가질 것과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함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병 속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보다 더 큰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 <이 사람을 보라>

가장 큰 고통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남들한테도 몰락하고 생성하라, 파멸하고 창조하라고 말하는 걸까. “하늘에 이르는 환호를 배우기 위해서는 죽음에 이르는 비애를 각오해야한다는 표현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고통기와 회복기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고 사유를 벼려가는 한 철학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니체는 스스로를 의사이면서 환자인 나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가 위대한 건강이라는 명명을 얻어내기까지 겪었을 엄청난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도 살아야할 삶. 도대체 인간은 왜 사는가, 수시로 물었을 것 같다.

니체는 왜 살았을까. 인간을 허무적 위험에 빠뜨리는 그리스도교 이성중심주의 이천년 철학역사와 한판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이것은 사는 이유다. 저마다 사는 이유는 다르다.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등등 경험적인 영역이다. 이렇듯 사는 이유(reason)가 상대적이라면 사는 원인(cause)은 절대적이다. 심연의 철학자 니체의 탐구영역은 사는 원인에 가 닿는다. 인간은 무조건 살아야한다는 것. 아니,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살게 되어있다는 것. 내가 살고자 목적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산다. 내 이성이 아니라 몸이나 감정이 사는 방향으로 나를 미는 힘이 있다. 이것은 논리적이거나 사유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며 신체적이고 본래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의 일이다.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신체다. 금기와 원죄의 영토였던 몸의 재발견. 생에 대한 놀라운 복구본능의 체험. 니체가 육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긍정의 철학 나아가 운명애를 말하는 것은, 질병과 동고동락한 그의 삶의 조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조증과 울증의 반복은 상승과 하강의 변화무쌍한 문체로도 드러났다. 사실 자체는 없으며 해석만 있다는 니체의 말대로, 삶에서 좋고 나쁨은 어떤 지평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질병에 시달렸던 니체는 그 경험에서 얻은 이익을 이렇게 규정한다. 

"오랫동안 끔찍할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이 흐려지지 않는 병자의 상태가 인식의 획득을 위해 가치가 없지는 않다. 깊은 고독과 모든 의무와 습관에서 갑자기 허용된 자유가 수반하는 지적인 이익을 전적으로 도외시하더라도, 무서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서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게 세계를 내다본다. 그에게서는 건강한 사람의 눈이 보는, 사물을 둘러싸고 있는 저 보잘 것 없고 기만적인 매력들이 사라진다." <아침놀 114>

병을 통한 최고의 냉정함 회복한 니체는 또한 "수많은 종류의 건강상태를 거듭해서 통과하고 또 통과해야 하는 철학자는 그만큼 많은 종류의 철학을 뚫고 지나가게 된다"고 자신한다니체에게 질병은 순전히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개체의 파괴적 고통은 세계 전체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신체를 탄생시킨다. 


.... 어느덧 내일이면 니체글쓰기 수업 9차시다. 두번 남았다. 시원섭섭증이 도진다. 운명애를 주제로 강의안을 쓰는 중에 앞장을 가져왔다. 글을 쓰면서 새삼 놀란다. 니체가 삶을 긍정하라는 것은 고통을 긍정하라는 말이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