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수박

[차오르는말들]

커다란 수박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전형적인 옛날엄마였다. 알뜰과 궁상의 화신. 그래서 여름에 수박을 살 때도 1만원이 넘으면 망설였다. 지금이야 물가가 올라서 1만원 이하 수박이 거의 없지만 4-5년 전만해도 내 기억에 1만 2천원이면 제일 크고 좋은 수박을 살 수 있었다. 근데 엄마는 소심해서 그걸 못 사고 꼭 7-8천 원짜리 수박을 샀다. 대략 아기 머리 크기의 수박이다. 운이 좋으면 잘 익은 것이지만 대부분 못난이 수박이라 그리 당도가 높진 않았다. 내가 5천원 차이로 웬 궁상이냐고 뭐라고 하면 엄마는 “시원한 맛으로 먹지~” 라며 끝까지 저가수박을 고집했다.  

어쨌거나 ‘얼음’같은 수박을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할 만큼 엄마에게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여름에는 입맛도 없고 음식도 잘 상하고 마땅히 반찬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세 끼가 두 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외식을 척척 했던 것도 아니니 ‘끼니의 영원회귀’가 얼마나 버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나만해도 여름엔 물 컵도 많이 나오고 빨래도 두 배로 늘어난다. 온 집에 창문을 열어놓으니 먼지가 많아 아침저녁으로 닦아도 걸레가 새까맣다. 샤워를 자주해서 목욕탕 청소도 자주해야 한다. 매년 여름마다 가사노동에 비실거리는 나를 보면서, 싱크대 앞을 슬슬 피하고 음식매장을 어슬렁거리거나 종로김밥에 냉큼 전화를 거는 나를 보면서, 삼복더위에도 부침개를 부치느라 콩국수에 넣을 소면을 삶느라 가스불 앞을 지켰던 엄마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렇게도 여름을 힘들어하던 엄마는 결국 여름에 돌아가셨다. 엄마를 구박만 했지 무겁다는 핑계로 고가의 수박 한번 사다드리지 못한 게 미안해서 제사 때는 수박을 정성껏 챙긴다. 지난 수요일이 엄마기일이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왕이면 유기농으로 사려고 초록마을에 전화를 했더니 다 팔렸단다. 25000원짜리 수박이고 낮 2시였는데 동이 났다니. 세상의 모든 엄마가 우리엄마처럼 미련하게 살지는 않는다. 그 생각을 하니 엄마가 새삼 더 불쌍했다. 친정에 가서 제사상에 놓을 조기를 굽는데 땀이 났다. 아빠가 에어컨을 켜면서 실외기 커버를 벗기셨다. 번거롭게 뭘 씌워놓느냐고 했더니 올 들어 처음 튼다는 거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십년 넘은 에어컨이 아주 새것처럼 하얗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도 손자랑 사위나 와야 에어컨을 켜주셨다. “도대체 에어컨이 액자야, 보기만 하려면 뭐 하러 샀어.” 내가 답답해서 잔소리하면 전기요금이 아깝다고 하셨다. 지지난주 시댁 갔을 때도 어머님은 “너희들 온다고 에어컨 청소했다”고 하셨다. 시댁친정 양가가 해마다 자식방문의 날이 에어컨 개시의 날이다. 그냥 여름이 속상하다. 요즘엔 우리엄마 레퍼토리를 어머님에게도 반복적으로 듣는다. ‘죽는 날까지 자식에게 폐 끼지 않고 가는 게 소원이고 그러려면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들의 삶에서 알뜰과 궁상은 한 세트로 상호촉발하며 작용한다.  

왜 엄마들에게 행복은 늘 충족유예 상태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삶. 자식을 위해 당신은 포기하는 삶. 워낙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러신 줄은 안다. 그래도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엄마가 ‘호강’ 한번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내 일신의 호강은 주체적으로 지금 챙겨야 한다는 엄정한 사실. 물론 상상만으로도 내가 물질적 육체적 곤경에 처해 귀여운 자식에게 신세지는 건 부모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자식입장에서도, 부모님 수발들지 않은 상항이 오면 더 편할 것이다. 가사노동이라는 작은 개울 하나 건너면서도 이리 엄살이면서 부모봉양이라는 큰 산을 어찌 넘을까, 미리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지만...닥치면 또 살아질 것 같다.

'늙음', 그 존재의 무너짐을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가슴은 아프겠지만 '삶의 과제'로 의연히 받아들이면 안 될까 싶다. 울며불며 눈물바람을 할 것이고 태어난 걸 후회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살만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겠지. 아이들이 족쇄 같아 '괜히 낳았다'고 원망했던 것처럼 괜히 죄없는 부모님을 탓하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힘든 일 포기하고 떠난다고 자유롭지 않다. 이건 자유에 대한 환영이고 망상이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도 한 걸음 내딛으면서 자유로워진다. 다리 힘이 길러지면 다음 봉우리는 더 쉽다. 이제껏 삶은 그랬다. 이 세상에 아무 좋기만 한 인연은 가짜이고 무탈한 게 꼭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 소원대로, 지극정성 새벽기도 드린대로 자식신세 단 1초도 안지고 바람처럼 사라진 우리 엄마를 생각하며, 난 거듭 결심한다. "엄마처럼 죽진 않겠다." 때에 따라서 자식에게 민폐도 끼칠 수 있다고 노년의 슬로건을 바꾸기로 한다. 죽고 싶을 때 죽지 못해 자식에게 '짐짝'처럼 귀찮은 존재가 된다면 짐짝의 입장에서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지. 그들에게 절망, 인내, 증오, 갈망, 원망, 이해, 체념같은 살 내리는 감정을 안겨주겠지. 나쁜 엄마인 채로 서로의 존재를 풍성하게 하는 좋은 인연으로서 끝까지 소임을 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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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수박, 엄마

<안토니아스 라인> 미래를 낳는 엄마-되기

[극장옆소극장]

여자는 출산을 거치고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젠더를 크게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호적과 아이에게 ‘몸’이 묶이기 전까지는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유로운 개체로 맘대로 살 수 있고 그래도 사실 큰 탈이 없다. 적어도 한 생명이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면 제도의 벽, 일상의 벽에 자꾸 가로막힌다. 맞벌이를 해도 애가 아플 때 눈치 보며 조퇴하는 것도, 회식 때 먼저 일어나는 것도 대부분 엄마다. 불편하고 부당하고 답답한 게 많다. 나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질서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고민은 고민대로 하면서 끼니와 빨래의 영원회귀를 견디며 아이와 함께 매일을 살아낸다.

개인적으로 육아의 과정에서 나를 무화시키는 경험은 특이했다. 단단한 자의식은 종종 삶이라는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놓여 졌고 버터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그러고 나면 나는 더러 고소한 빵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아니었으면 인간을 넘어 생명에 대한 애틋함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 엄마 살이는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데 자양분과 경쟁력이 된다. 하루하루 ‘삶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문제해결력, 인내력, 포용력, 통합적 사고력, 관계형성능력 등이 증진된다. 그렇다고 엄마가 진리의 화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가족이데올로기에 빠져 편협하고 왜곡된 정서를 갖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상식적인 경우에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자아를 가로질러 타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관계를 형성하는 ‘훈련의 장’은 된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자기(일) 밖에 모르고 ‘엄마’(같은 아내)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삶의 실질적 생산 능력이 떨어지며 진리에의 충동이 삶에의 충동을 앞서는 남성은 여러모로 열등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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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의 기일

[차오르는말들]

엄마의 기일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엄마의 죽음은 아이의 출산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사건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삶은 이미 죽음과 배반을 안고 시작된다. 그것이 ‘인생 별 거 없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으면 한 줌 재로 될 몸뚱이 나를 다 쓰고 살자’는 억척스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엄마의 딸. 굳센 금순이가 됐다고나 할까. 이것은 존재의 깊이와 상관없는 강도다. 단단함. 억척스러움 같은 거. 생의 군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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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넥타이부대가 08년 유모차부대로 바뀐 까닭은

[사람사는세상]

신자유주의는 '엄마'가 대세다. 유모차부대의 등장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시대적 요청이다. 이제 ‘엄마’는 단순히 낳는 자와 기르는 자를 넘어 양육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 노동의 주체, 노동력 생산(출산)의 주체이자 사회변혁세력의 주체로 그 지위가 변화되었다. 사회적 관계구성의 중핵이 엄마로 바뀐 것이다. 왜 여성도, 모성도 아닌 '엄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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