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읽다 - 그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달랐다

[은유칼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였다. 내게 용산역은 ‘용산참사역’이고 불에 탄 남일당 건물에 유가족이 사는 그 일대는 망자들이 떠도는 슬픈 무덤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안 가기도 이상했다. 뭐 내가 나라 걱정에 단식투쟁 하는 투사도 아니고, 살던 집에서 먹던 밥 먹고 하던 일 하는 범속한 나날을 살다가 가끔 집회에 나가는 소시민 주제에 공연도 자중하고 금욕하기란 민망한 것이다. 그래서 갔다. 

 
그와 밴드 멤버들이 날렵한 검은 정장을 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속으로 기뻤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됐으니 저건 애도의 복장일지도 모른다고 내 뜻대로 해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틀스’ 코스프레였다. 몸은 공연장에 있고 마음은 남일당으로 기우는데,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까만 밤을 수놓는 불꽃쇼는 영원처럼 길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여름밤의 폭죽을 봐/ 울음이 결국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을(26쪽).”


내 마음은 멍울졌다. 폭죽 양만큼 속울음이 터졌다. 공연 시작 전에 묵념이라도 했으면 좀 좋아. 아마 용산에서 무슨 행사한다고 저토록 많은 폭죽을 쏘았으면 그 단체를 생각 없다고 욕했겠지. <시대유감>이라는 노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불렀을까…. 그가 사는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가 같지 않으며 나의 유감이 그의 유감이 될 수 없음을 그날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혼과 결혼으로 평창동 대저택에 은거한 뮤지션의 음악은 내 사십 대의 BGM(배경음악)이 되지 못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콘서트가 열린다고 했다. 같이 ‘팬질’하던 친구에게 공연 전전날 연락이 왔다. 스탠딩 앞 번호에 ‘1+1’로 산 반값 표가 한 장 남았는데 가지 않을래? 살림하는 아줌마 본능인지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인지 솔깃했다. 어떤 결정에서 8만원이 그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는데, 16만원 들여서까지 가고 싶진 않지만 8만원이라면 한번 가볼까 싶기도 했다. 시든 사랑은 식은 죽만큼이나 시시하다. 아무튼 갔다. 헤어진 애인의 결혼식 가는 심정으로.

<그래, 사랑이 하고 싶으시다고?>
박세미 외 지음
제철소 펴냄

정확히 8년 만의 조우다. 그는 서태지와 ‘아들들’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방탄소년단 멤버와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했다(아래 사진). 장기간 비활성화됐던 내 ‘덕력’도 살아났다. 친구와의 첫 곡 맞히기 내기에서 내가 이겼고, 기타 음 한 소절만으로도 곡명을 읊었다.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보컬까지 겹겹의 사운드에 휩싸이자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즐거웠던 시간만을 기억해줄래”란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그럴게’ 약속하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아름다웠지// 말할 때는 시제가 슬프게 느껴졌다(110쪽).”

뮤지션의 사회적 구실을 생각한다. 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말처럼 뮤지션은 음악만 하라는 요구는 꽤나 정치적이다. 예술과 정치, 아이와 어른, 공과 사, 무대와 일상 등을 나누는 분리 기획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고 약자들이 고립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 직업·나이·성별에 무관하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2009년,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피폐했고 지쳐 있던 난 그에게 온갖 이상을 부과했다. 있는 그대로 음악에 감응하지 못하고 자기의 풀리지 않은 문제와 욕망을 남에게 투사했고 충족되지 않자 돌아앉았다. 지금은 반성한다. 한 사람에게 시민의 책무를 기대할 순 있으나 그 실천의 속도와 방법까지 나와 같기를 바란 건 편협했고 무례했다. 

이번 공연에서야 본다. 동시대 ‘문화 대통령’이 아닌 국내 상위 계층의 재력가이자 탁월한 기획력과 실력을 갖춘 영리한 뮤지션으로 그가 무대에 있고, 8만원 절약에 기뻐하는 장기 채무자이자 불안정 노동자이고 록 마니아로서 내가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 끼어 있다. 이게 팩트다. 나의 ‘음악 자아’를 활성화해주러 온 내 인생의 중요한 타인,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불을 덮고 죽는다(56쪽)”라고 하니 목 끝까지 덮을 이불 한 채 개키는 심정으로 한 시절 추억을 접는다.


- 시사인 <은유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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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리베카 솔닛이 처음 되고 싶었던 건 도서관 사서였다. 도서관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는 장소였고, 그 안에는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책이라는 보물 상자를 열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책과 한층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시사IN 윤무영

솔닛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깊고 넓어서다. 때로 시 같기도 하고 때로 잠언 같기도 한 문장은 독자를 오래 책 속에 붙든다. 자전적인 이야기와 성찰에서 출발하는 글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을 잇고, 환경과 인간의 역사를 엮으며, 종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논평으로 밀고 나간다. 

여러 사상가와 작가의 문장을 재료로 삼지만, 솔닛의 글은 단단한 ‘현장’ 위에 서 있다. “내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준 것은 네바다 핵실험장이다(영국 문예지 <화이트리뷰>, 2013년 인터뷰)”라고 할 만큼, 솔닛은 작가와 활동가라는 두 가지 역할을 충실히 살아왔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인권운동, 기후변화,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권 반환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의 현안에 참여해왔고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도 적극 가담했다. 2010년 미국의 대안 잡지 <유튼 리더>는 솔닛을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솔닛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2008년에 찾아왔다. 미국의 독립언론 매체 <톰 디스패치>에 기고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제목의 원고는 이전에 쓴 어떤 글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맨스플레인(mansplain: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가 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됐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는 국내에서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와 개정 출판된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출간을 기념해 솔닛이 8월25일 4박5일 일정으로 처음 방한했다. 강연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신청자가 폭주했다. 애초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강연 장소를 준비했던 출판사는 800석 규모의 행사장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최종 신청자는 1400명이 넘었다. 유료 행사 ‘페미데이’ 역시 일찌감치 마감됐다. 몇 년 전 방한한 마이클 샌델이나 슬라보예 지젝을 능가하는 대중 동원력이었다. 주요 매체가 강연 현장을 보도했다. ‘솔닛 현상’이라 부를 만했다. 

<시사IN>은 8월26일 서울 마포구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리베카 솔닛을 만났다. 대담자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등을 쓴 은유 작가가 나섰다. 독립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여성의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1시간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회견과 강연장에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시사IN 윤무영 8월26일 은유 작가(왼쪽)와 리베카 솔닛은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은유:이번에 개정 출판된 <걷기의 인문학>에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환경운동가·철학자·페미니스트·예술가 등 다양하고도 입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계기가 있었나? 솔닛:이민 2세대(솔닛 어머니의 조부모는 아일랜드, 아버지의 부모는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지대 출신이다)이자 좌파 성향을 가진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트로츠키주의자였고,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의 반식민혁명을 지지하셨다. 또 내 남동생은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솔닛의 남동생인 데이비드 솔닛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시애틀에서 이른바 ‘시애틀 대첩’이라 불리는 반WTO 시위를 주도했다). 동생이 뉴스레터를 발간할 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 이슈들이 얼마나 응급한지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 

은유:현장 기반의 공부가 글을 쓸 때 어떤 도움이 되었나? 솔닛:일단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말하고 싶다. 여성으로 산다는 일은 일상적으로 굉장히 많은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다. 여성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이를 일종의 시민권 문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여성 이슈는 사적인 문제이니 그냥 이런 환경에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좀 더 남자처럼 보이게 입어라, 아예 총을 사라, 호신술을 배워라,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로 이사를 가라…. 남성 폭력이 만연한 환경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적응하라고 나에게 강요했다. 

은유:나는 가부장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에게 부여되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페미니즘 공부가 절로 됐다(웃음). 당신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일과 공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나? 솔닛:조카를 여럿 둔 고모로서 나 역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웃음). 남편이 없고, 아이가 없다는 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활동가나 작가로서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하는 데 시간적으로 방해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방한 일정을 마치면 히말라야에서 머물 예정이다. 그런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은유:솔닛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의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가? 솔닛:페미니즘의 근간이 되는 생각은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정폭력이나 차별 같은 불의한 일이 분리되고 구별함으로써 감춰지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내 작업을 해왔다. 역사학자는 이거, 인류학자는 이거, 하는 식으로 각각의 학문 분야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거부한다. 특정 분야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생태학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모든 것은 상호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위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보수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의 문제는 사회나 경제 시스템과는 무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으로, 이 말대로라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줄 필요가 없다. 고립주의적인 보수 이데올로기의 대립항으로 상호연결성, 의존성에 기반한 진보 진영의 사상이 인문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은유:한국에서는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사사롭게 여긴다고 할까. 솔닛:미국에서도 논픽션이 비슷하게 폄하되는 측면이 있다. 시나 희곡, 소설은 고매한 문학인데 저널리즘은 쳐주지 않는 식으로. 그러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논픽션의 위상이 계속 올라간 측면이 있다. 

은유:솔닛의 영향인가?(웃음) 솔닛:전혀(웃음). 나는 사실 논픽션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데 마치 유색인종을 지칭할 때 논화이트(non-white, 백인이 아닌 사람)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픽션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전이나 지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논픽션이 세계를 소유하고, 픽션은 그 안에 있는 섬 아닌가? 나는 논픽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은유: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소설 쓰냐?’ ‘시는 안 쓰냐?’라고 묻는다. 솔닛: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렇게 묻는다. 그게 꼭 글쓰기가 오를 수 있는 정상인가? 되묻고 싶다. 

은유: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어떤 독자가 당신의 방한 행사를 다녀와서 이런 후기를 남겼더라. ‘나에게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온 정도의 존재다.’ 솔닛:글을 쓸 때 ‘오웰이라면 어떻게 썼을까’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너무 감사한 평가다. 

은유:글쓰기 수업을 할 때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을 꼭 넣는다. 에세이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굉장히 공감하는데, 남성들은 난감해한다. 이 감수성의 차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솔닛:여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위주의 교육,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책을 접하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책을 쓸 때도 남성 독자에게도 꼭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멀고도 가까운>을 쓸 때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생각하거나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와도 이어질 것 같은데,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과거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나 성 소수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논픽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체제나 현상을 깨뜨리는 증언을 담는 것이다. 

은유:<멀고도 가까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를 말하는 주체로 끌어낸다. 솔닛:그 부분이 내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했던 바다. 내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와 연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민음사 제공 8월26일 민음사 주최로 열린 ‘페미데이’에 참석한 리베카 솔닛(마이크 든 이)이 ‘공적 공간을 걷는 여성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은유:어머니가 딸에게 가하는 억압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책에 나온 당신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과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아들은 곱셈이고, 딸은 나눗셈”이었던 경험 같은 것들이다. 

솔닛:<멀고도 가까운>은 내가 쓴 책 중 가장 여성주의적인 책인데, 서평 등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다. 최근에 한국에서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성혐오를 페미니즘을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더 열등한 지위, 제대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걸 나에게 물려준 측면이 있다. 그게 내 지난 50여 년의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극복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머니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계와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됐고, 어머니와의 긍정적인 경험들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은유: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걷기의 인문학>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새로 보낸 서문에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솔닛:걷기의 힘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역사에 고스란하다. 근간에는 아랍의 봄이 그랬고, 한국의 촛불혁명이 그렇다. 공적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증거다. 100만명이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모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걷기를 통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은유:촛불집회는 공적인 감각을 몸에 새기는 경험이었다. 당신은 낙관적인 것 같은데, 광장에서 진보적인 구호를 외치고 현실에서는 보수적이고 위계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처럼 민주주의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괴리가 생기더라. 솔닛:광장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평등을 경험했길 바란다. 이를 통해 위계질서를 거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특히 가정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룬 경험이 사적 경험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은유:싸워야 한다는 건가?(웃음) 솔닛:경험이 전염성을 갖기를 바라는 거다(웃음). 

은유:정권교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젠더 이슈는 뒷전이 된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여성혐오 발언이 나왔고, ‘해일 밀려오는데 조개 줍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남성중심성 앞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솔닛:미국에서 힐러리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과 굉장히 유사하다. 물론 힐러리는 젠더와 무관한 이슈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지만(웃음). 삼성의 이재용도 보자. 그 사람이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남성은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모든 남성의 대표로 취급되지 않지만 여성 한 명의 잘못은 모든 여성의 잘못이 된다. 젠더를 기반으로 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해 폄훼하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트럼프는 가부장제의 모든 해악을 대표하는 존재로, 남성을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가 중요하긴 한데 다른 모든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 여성 이슈 중요하지. 근데 아직 너네 차례 아니니까 저 뒤에서 기다려.’ 이런 느낌이랄까? 가부장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싸워온 시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은유: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은 계속 사적 존재, 보조적 구실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공적 자아에 대한 공포가 큰데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솔닛: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아주 훌륭한 일들을 해왔다. 노력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변화가 더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다. 여러분이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래, 깊은 뿌리를 가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남성에게 가정과 일을 다 건사하고 있느냐고, 잘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일·가정 양립’은 당연히 아내 몫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런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이슈들을 계속 공론화하길 바란다.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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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이벤트 - 규슈의 가을을 걷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창간 10주년 기념 ‘함께 걷는 길-규슈올레 편’

규슈의 가을을 걷다

“나 자신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올레길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 더 행복했어요.”
<시사IN>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함께 걷는 길’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의 반응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행선지는 규슈올레. 광활한 대자연과 굴곡진 역사가 있는 그곳을 ‘은유 읽다’를 연재 중인 은유 작가와 함께 걸어 봅니다.
군함도 답사와 서경식 교수의 특강도 준비돼 있습니다

● 일시
2017년 11월23일~26일(3박4일)

● 프로그램

날짜세부일정식사
제1일
11월23일
07:20 인천국제공항 국제선 앞 미팅
09:35 인천국제공항 출발 
10:55 후쿠오카공항 도착, 입국 수속 후 사가현으로 이동
규슈올레 다케오코스 걷기(일부구간)
사세보로 이동, 석식 및 은유 작가와의 만남
HOTEL:사세보 파라다이스 가든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중:현지식
석:호텔식
(뷔페식)
제2일
11월24일
08:30 호텔 조식 후 히라도 이동
규슈올레 히라도코스 걷기(전 구간)
아리타 도자기 마을로 이동
우레시노 이동, 호텔 체크인 후 온천욕
HOTEL:우레시노 사쿠라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도시락)
석:호텔식
(가이세키)
제3일
11월25일
08:30 호텔 조식 후 나가사키 이동
군함도(하시마) 배편 이동 및 답사
서경식 교수 특강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등 시내 답사
HOTEL:나가사키 도미인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4일
11월26일
08:30 호텔 조식 후 후쿠오카현으로 이동
규슈올레 미야마·기요미즈데라코스 걷기(일부구간)
후쿠오카 시내로 이동, 자유시간
18:20 후쿠오카 공항 출발
20:05 인천국제공항 도착 및 해산
조:호텔식
중:현지식 

※ 상기 일정은 항공편 및 현지사정에 의해 변경 될 수 있습니다.
※부산 김해공항 출발/도착을 원하는 분은 신청시 메모란에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문의 전화 02-3700-3284, event@sisain.kr). 부산 출발/도착 독자는 인솔자가 없으니 e-티켓을 보내드리면 개별적으로 발권을 진행한 뒤 후쿠오카로 이동 후 공항에서 합류해 주셔야 합니다. 부산 출발/도착도 참가비는 동일합니다.

● 참가비 
* 성인 139만원(<시사IN> 정기·후원독자 본인은 10% 할인, 125만원), 아동(만12세 미만) 119만원
※지금 <시사IN> 정기구독(1년 이상)을 신청하시면 신청 완료와 동시에 독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참가신청 후 예약금(1인당 30만원) 입금이 확인되면 예약이 확정됩니다. 나머지 금액은 10월20일까지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입금은 신청자 이름으로 해주시고, 입금 계좌는 다음과 같습니다. 농협 301-0206-0861-11(유한회사 퐁낭) 
   예약금 입금과 동시에 여권사본을 이메일(event@sisain.kr) 또는 팩스(02-3700-3299)로 보내주십시오.

● 숙소
* 3박4일 전 일정 동안 호텔에서 숙박하게 됩니다.
* 호텔은 2인1실(성인)입니다. 
   어린이는 성인 2인과 같은방을 사용해야 합니다(엑스트라베드가 필요할 때는 미리 요청해 주십시오). 
* 호텔 1인실을 원할 경우 10만원(3박)의 추가요금이 발생합니다. 

● 참가인원
70명(선착순)

● 기타
* 출발 30일 전에 전자항공권, 예약 확정서 및 개인 준비물 안내사항을 메일 또는 팩스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 규슈의 11월말은 가을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나 일교차가 심한 만큼 건강과 복장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규슈올레 구간에서는 7~14km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됩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은 차량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 환불 규정
* 여행 개시 30일 전까지 통보시:계약금 환급
* 여행 개시 29일 전~20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10%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19일 전~10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15%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9일 전~8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20%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7일 전~1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30% 제하고 환불
※항공권 발권 이후는 취소 수수료 200,000원이 발생합니다.
※상기 수수료율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른 것입니다(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여행 출발이 취소될 경우에도 동일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 다른 궁금한 내용이 있는 분은 다음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 02-3700-3284, event@sisain.kr)

■ 이 프로그램은 (사)제주올레 및 예비 사회적기업 퐁낭과 함께 진행합니다. 예비 사회적기업 퐁낭 로고

● 함께 걷는 길 게스트 소개

은유(작가)

2011년부터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했다.  
삶에 밀착한 글쓰기와 말하기로 독자층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성·청년·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을 위한 글쓰기 수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을 썼으며, <시사IN>에 ‘은유 읽다’ 칼럼을 연재 중이다.

서경식(도쿄게이자이대 교수)

일본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현재 도쿄게이자이대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 시절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준식과 서승의 구명 운동을 벌였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현실, 예술과 정치의 관계, 동아시아 평화 등을 화두로 글을 써 왔다. 

● 함께 걷는 길 코스 소개

# 다케오 코스

다케오는 사방을 에워싼 산들 속에 고요히 자리잡은 오래된 온천마을이다. 
수령 약 3000년의 신비하게 생긴 거대한 녹나무들과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온천들, 4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도자기 가마 90여 개가 있어 전통적인 풍광과 자연경관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올레길을 걸은 뒤 혁신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다케오도서관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 
한국에도 이 도서관을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이 번역·출간돼 있다.

# 히라도 코스

히라도는 이미 1500년부터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상업적인 교역을 시작한 곳으로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다. 
정갈한 히라도항에서 보이는 바다는 투명하고, 정박한 배들과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의 건물들은 새침한 소녀처럼 예쁘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불린다는 가와치 언덕을 비롯해 천주교 성지, 절, 교회, 마을 등이 공존하는 이국적인 풍광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종점에서는 소박한 족욕탕이 올레꾼들을 기다린다.

# 군함도

일본명 하시마. 섬이 군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처음부터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 개발됐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석탄이 생산됐으며, 1940년경에는 그 생산량이 연간 40만여t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800여명의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배고픔과 위험에 처한 채 하루 12시간 동안 채탄 작업에 시달렸다.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됐다가 2009년 이후 관광지로 개방됐다.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국 등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 미야마·기요미즈데라 코스

미야마·기요미즈데라 코스는 일부러 설계한 듯 역사와 자연이 딱 맞게 안배된 코스다. 
특히 기요미즈데라절(淸水寺)로 가는 구간은 이 코스의 백미다.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합해 만든 석조 다리 메가네바시를 지나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 기요미즈데라 혼보정원(淸水寺本坊庭園)이 나타난다. 
섬세함과 형식미를 자랑하는 일본 정원의 원형을 보여주는 정원이다. 
가을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정원을 나서 기요미즈데라 절도 둘러본다. 오백나한(五百羅漢)이 기다리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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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전하고픈 말

[은유칼럼]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데 계단 아래까지 한 아이가 따라 나와 말을 건다. 작가가 꿈이라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한다고, 다른 과를 가도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묻는 눈동자는 초조함으로 일렁였다. 고등학생들을 만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부모의 반대 이유도 한결같다. 돈 벌기 어렵다는데, 취직이 안 된다는데, 밥 굶는다는데.

어느 밤에 문자가 왔다. ‘쌤,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같이 글쓰기를 공부하던 20대 후반 학인이다. 나는 초기에는 최저생계비 마련이 어렵다고 답했다. 직장에 다니는데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것 같다고, 일을 그만둘까 하지만 돈 문제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고,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며 그는 대화창을 빠져나갔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민음사 펴냄

스무 살 이전이나 이후에나 진로 고민은 중단 없다. 그 꿈이 글 쓰는 일이라면 더하다. 해법이 없진 않다. 질문에 엉킨 쟁점을 풀어주면 된다. 작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글로써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몸에 맞는 장르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한 달에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 이를 질문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 글쓰기 욕망을 정교하게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대개는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나는 작가라는 말이 여전히 어렵다. 뜻과 범주가 모호하다. 행위인지, 직업인지, 자격인지, 욕망인지, 존재 그 자체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으로 내 꿈을 구체화하고 실천했다. 주변에선 작가로 활동하려면 문창과나 국문과를 늦게라도 가라고 권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자격 요건을 갖추기보다 일단 쓸 수 있는 걸 쓸 수 있는 데에 썼다.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해 활동했다. 본 것, 들은 것, 한 것을 쓰다 보니 그게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논픽션이었다. 논픽션 분야는 등단 제도나 절차가 없으니 내가 작가가 됐는지 안 됐는지 가늠할 척도가 없었다. 그게 속편했다. 작가라는 긍지 없이, 작가가 아니라는 결핍도 없이 쓸 수 있었다. 

돈벌이는 별도로 충당했다. 자유기고가를 주업으로 일감이 없을 땐 자서전을 대필하고, 공공기관 백서를 쓰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인터뷰해 납품했다. 이 세상에 나쁜 언어를 유포하는 일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썼고, 원고료를 받아 책과 커피와 쌀을 사먹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쓰고 싶은 글’을 썼다.

파블로 네루다의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창과 간다고 작가의 길이 보증되고 경영학과 간다고 그 길이 봉쇄되진 않는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나는 우리나라의 하고많은 불행을 보아왔다. 내가 보는 가난-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129쪽).”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지키면서 고통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나는 그들 책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하고많은 불행의 언저리를 서성이다 보아버린 것을 쓰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곧잘 나온다. 나는 네루다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책들은 서가로 보내자,/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책에 부치는 노래 1’ 중에서,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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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이라는 착각, 정상이라는 환영

[은유칼럼]

초여름 볕이 좋아 이불을 빨아 널다가,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으면 저 집은 평범한 일상이 돌아가는구나 알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빨래는 평화의 깃발인가. 두 아이를 면 기저귀 채워서 길렀다. 전업주부라 시간이 많았다. 하루치 똥오줌을 받아내고 세탁기를 돌리고 하얗고 네모난 기저귀를 널고 마르면 걷어서 개켰다. 일상 의례처럼 날마다 빨래를 하던 그 시기가, 그러고 보니 내 생애 가장 평범한 날들이었다. 평범의 뜻이 무변고·무고통·무탈함이라면.

얼마 전 여성 쉼터에 사는 한 친구가 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는데 부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저 거실 안에는 지금쯤 식구들이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겠지 싶고 자기도 저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거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황급히 끼어들었다. 그 집에 막상 가보면 애들은 학원에 갔거나 방에서 핸드폰 하고 있고 아빠는 없거나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와서 잔뜩 쌓인 설거지통을 보고 한숨 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직간접 경험에 근거해 말했고, 우린 같이 웃었다. 

3년 전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2012)의 저자 은수연씨를 만났을 때다. 그는 가해자로부터 단절된 이후 일상의 변화를 말했다. 요즘 눈에 독기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세월호 사건에 남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힘든 과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더 이상 일상이 엉망이 되지 않는 상태를 평범함으로 규정했다.

평범한 삶을 누구는 집 안에서 찾고 누구는 집 밖에서 찾는다. 무엇이 평범함이냐, 그 뜻과 의미와 기준은 각자 다르다. 평범함이 행복이고 평범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 있으면 행복하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한 거 같다. 평범함의 의미를 자기 삶의 맥락에서 똑 부러지게 규정하는 은수연씨에게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나의 평범했던 날들, 낮에는 흰 빨래가 걸리고 밤에는 거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에서 퍽 무탈한 일상을 이어갔으나 행복이 막 샘솟지도 않았다. 그 안전하고 예사로운 4인 가족 틀을 벗어나 캄캄하고 어지러운 외부 세계에 맞닥뜨렸을 때, 글쓰기로 하루하루 정신을 깨끗하게 빨아 널고 낯선 이웃을 만나고 삶의 가치라는 내면의 등을 밝힐 때 외려 충만했다.

그날 쉼터에 사는 친구와도 얘기했다. 혈연끼리 마주하고 과일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만큼 같이 사는 생활인들과 빵을 먹으면서 평범함에 관해 대화하는 것도 좋은 일상 같다고. 안전한 거처로서 주거 공간은 삶의 기본 조건이기에 필요하지만 ‘정상 가족’이라는 환영이 만든 집은 깨뜨려야 할 무엇이라고. 그건 집이 노동과 위험의 공간인 약자들을 배제하고 집을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 점유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니 말이다.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평범하지 않은 여성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까지 걸어온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선천적 장애로 멋대로 뒤틀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어머니는 손님이 오시면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어 보이지 않게 했다며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184쪽)”이라고 말한다. “자기혐오, 숨기는 것에서 오는 고통, 침묵의 답답함(359쪽)”에 갇혀 살다가 집을 나오고 세상과 부딪치며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버릴 수 있었다며 더 일찍 버리지 못했음을 개탄한다.

저자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정상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기를 쓰고 추구하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환영 같은 거야(369쪽).” 베란다 빨래와 불빛에는 멀쩡해 보이는 남의 삶이 있고, 자기 삶은 수치와 상처와 결핍으로 얼룩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놀라운 기적’에 잠복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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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우기에서 고양이 되기로

[은유칼럼]



수레 집에 혼자 있겠구나. 밖에서 전화하면 딸아이는 정정한다. 아니, 무지랑 둘이 있어. 아, 그렇지 무지가 있었지. 자꾸 까먹는다. 무지는 우리집 고양이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서 나는 아이 혼자 있다고 여기고, 고양이를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딸아이는 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렵다. 

3년 전,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품고 있는 장면이 ‘명화’ 같았다. 친구의 지인 새끼 고양이들인데 다 입양이 결정됐고 한 마리만 남았다며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말로 졸랐으면 단박에 거절했을 텐데 사진을 보곤 홀렸다. 나는 고양이 입양 불가 의견을 빈대떡 뒤집듯 뒤집었다. “그럼 데려오든가.”

흰색·밤색·검은색 털이 멋스러운 삼색이가 식탁 아래 오도카니 몸을 말고 있었다. 딸아이는 고양이를 신발주머니에 넣어 운반했다고 한다. 도보로 20분 거리다.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니 계속 야옹야옹 거렸단다.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 열세 살 여자아이와 생후 3개월짜리 고양이의 동행. 어미 품을 벗어난 어린 생명체의 두려움과, 다른 생명체를 품은 어린이의 책임감이 둘을 단단히 묶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사IN 윤소영
두 존재의 교감에는 ‘종’의 동일성보다 ‘곁’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고양이 이름은 무지로 지었다. 내 삶의 모토인 ‘네 무지를 알라’는 의미의 무지. 무지 귀엽다는 뜻의 부사 무지. 딸아이는 인터넷으로 육묘 노하우를 빠르게 학습하고는 전문용어로 고양이의 행동을 해설했다. 저건 식빵 자세, 닭 자세, 꾹꾹이, 그루밍…. 그리고 병든 노모 돌보듯 조석으로 사료와 물을 챙겼다. 무지랑 놀기가 중요 일과로 자리 잡았다. 둘은 좁은 거실을 톰과 제리처럼 가로지르며 뛰었다. 


나도 놀고 싶었다.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유인해봤는데 무지가 시큰둥했다. 왜 엄마에겐 반응이 없냐고 물었더니 수레가 말한다. “엄마, 고양이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몸을 그렇게 뻣뻣이 세우고 있으면 오겠어.” 

그러고 보니 난 항상 무지를 아기처럼 번쩍 들어올렸다. 내 눈높이로 끌어올리면 고양이는 1초 만에 빠져나가곤 했다. 수레는 늘 엎드려서 네 발로 무지랑 눈을 맞추었다.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되기”인가. 자신의 고정된 위치를 버리고 다른 존재로 넘어가기. 한 사람의 놀이 능력은 곧 교감 능력이자 변신 능력이고 사랑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어”

고양이는 만져지는 자연이다. 무지는 명당자리를 용케도 발견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자마자 손 씻고 오면 그새 외투 위에 여왕처럼 앉아 있다. 목도리, 스카프부터 쇼핑백, 책까지 폭신하든 단단하든 보드랍든 뭐든 한 겹 깔고 본다. 커튼 사이로 한줌 볕이 들면 그곳이 아무리 손바닥만 할지라도 몸집의 표면적을 최대화해 누린다. 볕을 모은다. 무지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고양이를 싫어한 게 아니라 고양이 키우는 걸 싫어했구나.


버지니아 울프가 쓴 <플러쉬>라는 소설에서 난 수레와 무지를 떠올렸다. 주인공이 코커스패니얼 견공 플러쉬와 여주인 바렛이다. 냄새와 행동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플러쉬와 언어 생활자 바렛은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장벽(36쪽)”을 느끼지만 반려 관계가 되어 “각자에게서 휴면상태인 것으로 서로를 완성시켜준다(189쪽)”. 플러쉬는 여주인의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는데 무지가 밤마다 수레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 같았다. 두 존재의 교감에는 ‘종’의 동일성보다 ‘곁’의 연속성이 중요함을 책과 현실이 증명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개를 키웠다. 평생 개의 행동과 습성, 감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플러쉬>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게 아니라 개가 되고픈 사람이 쓴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딸아이 수레의 말도 헛웃음으로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사인 은유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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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슬픔만 한 혁명이 어디 있으랴

[은유칼럼]

“눈물이 안 멈춰요.” “대통령 연설에 눈물 흘리긴 처음이에요.” 5월18일, 눈물바람으로 SNS가 넘실댔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전문과 동영상을 너도나도 인용하고 공유하고 복기했다. 한날한시에 다 같이 운다. 남의 아픔에 감응하는 이 집단적 애도극을 보며 비로소 정권 교체를 실감했다. 

내게 눈물은 길조다. 모두가 웃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세월호 참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가졌으면 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기업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고, 폭력이나 치욕을 당했을 때 큰 소리로 울고불고 떠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긴 병명처럼 세간에 오르내릴 정도로 무감각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웠다.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도 더러 고백하곤 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메말라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 ‘문제 있다’고 여기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돈이나 스펙이 아닌 슬픔 없음을 근심하는 사람의 탄생이 내심 반가웠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감정과 느낌을 되찾을까. 이 물음은 어떻게 인간다운 세상이 가능한가와 닿아 있다.

내 슬픔의 계보를 따져본다. 슬픔의 첫 습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자료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망월동 묘역을 다녀오면서 소위 세상에 눈 떴다. 당시 구 묘역의 황량한 무덤가에 놓인 영정 사진에 눈 맞추고 유가족이 써놓고 간 편지를 일일이 다 읽었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오월 광주를,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통장부터 회원 가입까지 온갖 비밀번호 네 자리를 0518로 지정했다. 그 숫자를 암호 삼아 세상을 읽고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의 저자 백상현은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는 것 자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능이 존재한다(23쪽).” 슬픔에 빚진 나로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퍼서 책 보고 슬퍼서 글 쓰고, 이 슬픔에서 돌아 나와 저 슬픔으로 건너간다. 

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 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 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이번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가 감동적인 이유가 바로 이 ‘슬픔의 가치’가 존중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주체들이 공동체의 내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을 때 국가는 그들을 억압하려 했고, 길들이려 했다(44쪽).”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자’ 같은 “생각의 방황을 정지시키는 고정관념들(25쪽)”에 타협하지 않았고 슬픔을 털어내지 않았다. 문학에서 일상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불러냈다.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자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욕망(45쪽)”이다. 슬픔의 인간띠가 더 길어지고 질겨졌으면, 부디 애도의 눈물바람이 오래갔으면 한다. 아무도 침몰하지 않도록.



- 시사인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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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남해금산

[은유칼럼]


서울 강남역, 정오의 해를 받아 번쩍거리는 고층 빌딩들이 산처럼 우뚝하다. 마천루의 도시라도 온 양 감탄사를 연발하던 딸아이는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찰칵. “엄마, 여기가 강남이야?” 내 대답을 듣기도 전, 아이는 가장 기세 좋은 건물을 가리키며 어디냐고 묻는다. 


저 일대가 삼성타운이라고 했다. 아이가 흠칫한다. 우리 집은 수년 전부터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는 저런 ‘화려한 건물’에서 일하고 싶다며 나를 힐끗 본다. 입사도 어렵지만 갈 곳이 못 된다고 난 일축했다. 아이가 재차 묻는다. “내가 삼성 안 가면 백수로 산다고 해도 반대할 거야?” 


그때서야 빌딩 아래 비닐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반올림’ 농성장. 몇 번 지지 방문을 갔을 땐 지하도에서 8번 출구로 나와 곧장 농성장에 들어갔다. 건너편에서 보긴 처음이다. 푸르스름한 유리 건물에 껌같이 희고 넓적하게 달라붙은 모양새다. 풍찬노숙 어언 600일째. 빌딩 꼭대기만이 아니라 저 아래까지 봐야 한다고, 저기에 76명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다고 딸아이에게 일러주었다. 초일류 기업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해마다 학기 초에 가정통신문이 온다. 아이의 질병이나 고민, 진로를 묻는 신상조사 설문지엔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직업’ 문항이 있다. 그 공란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아이의 욕망과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좋은 직업을 설계하기 곤란한 사회에 산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남의 직업을 내가 원한다는 설정도 마뜩지 않다. 당사자의 꿈은 수시로 변한다. “초라한 소기업은 질색”이라며 대기업에 다닐 것을 천명하다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했다가 그냥 부자면 된다고도 한다. 욕망은 날것이고 희망은 계통이 없다. 


나는 딸아이가 선망하는 유수의 대기업을, 으리으리한 건물을, 사보 기자로 일하면서 수년간 드나들었다. 10년 전인데도 모기업 사옥에는 헬스장, 최신 커피 머신과 푹신한 의자가 비치된 카페가 있었다. 직원용 무료 시설이다. 처음엔 부러웠다. 그런데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 카드를 찍으면 종일 건물에 갇혔다. 안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일했다. 야근하고 회식하고 헬스장에서 땀을 빼고 책상으로 돌아갔다. 고득점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동선을 통제한 기숙형 입시학원처럼, 그곳은 고생산성을 위한 기숙형 회사 같았다. 노동자의 하루를 통째로 삼키며 기업은 몸집을 불려갔다. 


어머니, 저희는 금빛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갇힌 지 오래됐어요 
(…) 
어머니, 무서워요 
금빛 거미가 저희를 먹고 
흰 실을 뽑을 거예요 

- 금빛 거미 앞에서 (53쪽) 


20대에 나도 금빛 건물에서 일했고 30대엔 외부자의 시선으로 살벌한 내부를 뜯어보았다. 40대엔 삼성 직업병 문제, 이랜드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 사건, 대한항공 임원의 갑질 사건,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의 자살, 연출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대기업이 무서워진다. 등 따시고 배부른 정규직도 있겠지만 소수의 안위는 다수의 희생과 침묵을 기반으로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무감한 기업 문화가 미세먼지보다 더 공포스럽다. 아이를 피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가정통신문의 부모가 원하는 직업란엔 ‘예술가’라고 썼다. 피아니스트나 화가 같은 협의의 예술가가 아니다. 자기 삶과 노동의 균형,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예술가라는 이상을 담았다. 대기업 직원이든 작은 가게의 점원이든 대수랴. 일할 때 자기 의견과 불편을 말할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직장이고,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경쟁 구도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들로 존중하며 동료와 만나는 일이면 좋겠다.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23쪽)” 밥 때문에 생겨나는 치욕 앞에 무릎 꿇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지만 삶에는 귀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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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끼니와 끼니 사이에 명령과 복종이 있다

[은유칼럼]

'패스트푸드로 버티는 아이들.’ 인터넷 포털 화면에 뜬 기사다. 학원 시간에 쫓겨 5분 만에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 모습과 서울 대치동 일대 편의점·패스트푸드점 풍경을 스케치했다. 학원 다섯 곳을 다니고 과외 두 개를 한다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런 생활’을 했다고 증언한다. 역시 ‘이런 기사’의 마무리는 전문가 의견. 라면과 패스트푸드가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니 채소나 과일 위주의 식단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라고 식품영양학 교수는 충고했다.


내가 전문가라면 일몰 이후 학원을 금지하고 아이들의 식사권과 수면권 등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다. 실은 남 얘기가 아니다. 중3인 딸내미도 일주일에 두 번 수학 학원에 간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본인의 선택이다. 방과 후에 주먹밥이나 과자를 사먹고 밤 8시에 학원을 마치면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나는 부랴부랴 돈가스 튀기고 국을 데워 늦은 끼니를 대령하면서도 나쁜 현실의 공모자가 된 듯해 착잡하다. 그것도 그때뿐. 월·수·금 오후 4~5시에 집에 와서 뒹굴거리면 또 그것대로 심란하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에서 시험에 단련된 아이들과의 성적 격차가 벌어지는 건 빤한 일이기에 그렇다.


남편이 목동의 학원이 밀집된 건물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교사와 원생들이 주 고객이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몰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새벽 1~2시에 교습을 마치고 와서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는데, 고3 수험생만 있는 게 아니라 중학생도 꽤 된다고. 아이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종류의 밥과 음료수를 사가니 나중에는 얼굴과 메뉴가 외워지더란다. 


심야 고속도 아니고 어쩌다 심야 학원이 생겼을까. 어른으로 치면 부실한 저녁 먹고 매일 야근하는 회사에 해당한다. 수당이 없는 야근이다. 아직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10대 아이들이 제때 먹지도 못하고 시멘트 건물 형광등 불빛 아래 종일 묶여 있다니, 늘 그래왔으니까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심야 학원은 아무리 봐도 기괴한 풍속도다.


그즈음 <먹는 인간>을 읽었다. “고매하게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347쪽).” 저자 헨미 요는 이 질문을 안고 탐식의 나라 일본을 떠나 세계 15개국을 누빈다. 독일 감옥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밥을 먹고, 방글라데시에서 음식 찌꺼기를 사먹는 빈민들을 보고, 필리핀 산속에서 인육을 먹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 잔류 병사들 얘기도 현장에서 검증한다. 대한민국 편도 있다. 청학동에서 예절의 맛을 음미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비통의 맛에 관해 듣는다.


“그 세계에는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하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330쪽).”


한 존재를 ‘먹는 인간’으로 바라보면 아릿함이 더해온다. 전쟁이나 재난이든 일상이든 사람은 무릇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행해야 하는” 그것을 수행하고 산다. 먹는 일은 때론 위안이고 때론 치욕이다. 저자가 최근에 이 책을 썼다면 청학동 대신 대치동을 가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밥버거의 맛을 물어보면 독일 감옥의 수감자처럼 말했겠지.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지(105쪽).”


끼니와 끼니 사이 벚꽃이 난분분한 봄날, 딸아이는 말한다. “벚꽃 꽃말이 중간고사래.” 해마다 벚꽃 시즌이면 다가올 중간고사에 대비해야 하는 중·고등학생들 처지를 빗댄 말이다. 꽃을 놓치고 밥을 거르며 자란 아이들 몸에 무엇이 남을까.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는 것은 자발적 자기 착취에 길들여진다는 것이고 명령과 복종의 속도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먹는 인간’으로서 아이가 통제의 맛에 길들여지느니 부모가 초라한 성적표에 길들여지는 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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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수만큼 우리는 돈을 번다

[은유칼럼]
개강 후 두 번째 수업에 과제 발표자가 결석했다. 과제 부담일까, 개인 사정일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저, 오늘 안 오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지난주에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았는데요.” 예기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전달을 못 받았다며 얼버무리고 끊었다. 문자로 남길 걸 괜히 전화했나.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날 전화를 끊고 수업을 잘 마쳤다. 집에 가는 길, 얼마 전 통신사 해지방지팀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현장실습생이 떠올랐다. 취소·환불이란 말들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파고드는 따가운 경험. 나는 20초 정도의 짧은 통화였는데도 가슴에서 휑한 무엇이 자꾸 올라왔다. 만약 그게 온종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더구나 경험의 군살이 붙지 않았을 열아홉 살 사회 초년생이라면 말이다.

미국 빈민 여성의 생존기이자 노동 르포르타주인 <핸드 투 마우스>의 저자 린다 티라도는 말한다. “나는 내 상처의 수만큼 돈을 번다(49쪽).” 베이고 데는 상처만 뜻하는 게 아니다. 짜증, 분노, 무시 같은 것도 독처럼 쌓여서 영혼을 부식시킨다. 필자는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처방이 내려지곤 한다며 말한다. “의사들은 잠을 잘 자고 잘 먹으라고 환자에게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마치 그게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88쪽).”

ⓒ윤성희
4월12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에서 한 지게꾼이 원단을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다.

늘 단순한 상황 판단은 타인의 구체적 처지에 대한 고려 없음에 기반한다. 나도 전적이 있다. 큰애 세 살 즈음 육아로 후줄근해진 내 청춘을 보상받기 위해 옷을 샀다. 단정한 모노톤 셔츠였다. 여름철이라 한 번 입고 세탁소에 맡겼다. 일주일 넘게 감감무소식. 세탁물 수거하는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이동 중에 분실했단다. 이튿날 그 직원은 5만원을 내밀었다. 옷값의 절반이다. 그러곤 사장에게 분실 건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개인 부담으로 배상을 받는 게 영 찜찜했지만 새 옷을 잃은 속상함에 묻혀 금세 잊었다.

몇 년 후, ‘뭐라도 좋으니’ 일해야 했을 때, 자유기고가로는 수입이 불안정해 친척 회사의 경리 업무를 도왔다. 6개월가량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매장을 드나들었는데 그곳은 이전에 쇼핑하러 갈 때와는 다른 장소였다. 민속촌에서나 보던 지게에다 돌돌 만 원단을 가득 쌓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늙은 지게꾼을 목도했다. 복도에는 보험회사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 커피와 음료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오갔다. 길가로 나오면 오토바이 택배 기사가 십자가처럼 원단을 지고 위태로운 질주를 했고, 지하철 입구에선 아주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전단을 안겼다.

<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클 펴냄
세상은 노동하는 육체의 전시장! 그때 불쑥 그 세탁소 직원이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옳은가. 그의 과실이지만 고의 과실은 아니다. 피해보상 규정 같은 노동자의 보호책을 마련하지 않은 고용주, 합리와 효용의 잣대로 따지는 깐깐한 소비자, 그 사이에서 가장 약자인 피고용인이 피해를 입었다. 내가 ‘챙긴’ 5만원이 그의 식비이거나 노모의 약값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딱히 소비자 권리를 내세운다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사고하고 내 몫 지키기에 급급했다. 대안공동체에서 공부할 땐 인문학 소비 풍토를 비판했다. 문화센터 같은 즉자적인 지식 거래가 아닌 다른 관계, 다른 속도, 다른 일상을 발명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말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게 평생 견적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라는 다층적 위치성에 대한 실감이 모자랐다. 이제 목표는 소박해졌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이들의 유니폼 너머, 표정 너머, 계산 너머 삶의 면모를 그려보기. 잘 자고 잘 먹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니만큼 이 책의 저자처럼 “나는 사람들이 생계로 삼는 일을 더 힘겹게 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려고 애쓴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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