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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 대학 생활도서관 모임이 뽑은 '올해의 책'

[사람사는세상]

지난해 가을 축제가 끝나고 바로 시작한 프로젝트. 시민행성 함돈균 평론가의 제안으로 우리 와우책문화예술센터와 대학 생활도서관 모임과 '올해의 책 뽑는 일을 같이 진행했다. 20대가 단지 지식 소비자가 아닌 담론 생산자로 나서는 일에 시민사회가 함께 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오랜만에 젊음의 기운이 생동하는 20대 학생들과 모여서 책을 고르고 토론하고 글을 같이 읽고 고치는 작업을 거쳤다. <한겨레21>에 우리의 활동이 좌담회 형식으로 실렸다. 기쁜 마음에 전문을 옮긴다. (본문 후반부 사진에 카키색 아우터 입은 내 뒷모습도 나옴 ㅎㅎ)

 

[레드 기획] 기본소득운동을 하는 친구가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추천하고
밀양에서 평화농활 하면서 <밀양을 살다>를 함께 읽고… 대학 생활도서관 모임이 뽑은 ‘올해의 책’

» 서강대 생활도서관 활동가 한나현 (맨 아래 왼쪽)씨와 고려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곽승찬 (맨 아래 오른쪽)씨 등 고려대·서강대·서울대·연세대 대학생활도서관모임 구성원들. 김진수 기자
그곳에서 <한겨레21>을 읽었던 학생은 <한겨레21> 기자가 되어 그곳을 찾았다. ‘학문사상의 자유쟁취, 진보적 학문의 대중화’. 입구에 걸린 간판은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그곳에 있었다. 마치 잠깐 어딘가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바로 놓여 있는 신간 잡지, 색깔과 질감도 변하지 않은 책상과 의자, 아련한 냄새를 풍기는 책들, 심지어 <한겨레21>도 예전에 있었던 자리에 있다. 한파가 몰아친 12월17일, 고려대 학생회관 1층의 생활도서관은 20년 세월을 건너 어제의 이용자를 맞이했다. 마치 스무 살의 친구가 “너 여기 있었냐?” 하면서 뒤통수를 때릴 것 같은 느낌.

생도, 공간 점거의 선구적 사례

중앙도서관(중도관)에 가느냐, 생활도서관(생도관)에 가느냐. 그것이 문제인 시절이 있었다. ‘생도관’이라고 줄여 부르던 생활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느냐, 중도관에서 하고 싶지 않은 영어 공부를 하느냐. 학교에 가면서 항상 ‘오늘은 중도관에 가야지’라고 다짐하다, 정작 가서는 ‘생도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무는 궁금한 걸 보고 싶다는 욕망에 자주 굴복했다. 결국 중도관 인생이 되고 말았을지언정, 그 시절이 헛것은 아니었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그곳에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을 거기서 읽었다. 생도관은 여전히 ‘금서’ 목록이 있던 시절, 중도관에 없는 금서를 보관한 곳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몇 해는 그렇게 흘렀다.

그곳엔 ‘20대가 뽑은 올해의 책’ 작업을 한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선정한 올해의 책을 따라서 혹은 참고해 읽어라! 이런 기성세대의 ‘명령’을 거부한 청춘들이다. 이들은 무기력한, 수동적인 20대라는 기성세대가 그려놓은 그림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지식소비자를 넘어 담론생산자가 되려고 나섰다.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등 대학생활도서관 모임이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 와우책문화예술센터와 함께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쓰는 작업을 했다. 학교의 담장을 넘어 시민과 학생이 만나고, 나이의 장벽을 넘어 세대와 세대가 만나고, 지위의 고하를 넘어 교수와 학생이 만나는 일이었다. ‘우리가 읽은 책은 이런데, 어디 토론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말을 거는 이들을 만났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곽승찬(20)씨, 서강대 생활도서관 ‘단비’ 활동가 한나현(23)씨와 좌담회를 시작했다.

-학생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적지 않다. 생도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곽승찬(이하 곽): 1990년 선배들이 민중도서관운동으로 생활도서관을 열었다. 당시엔 도서 검열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가끔 ‘여전히 생도관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상의 자유가 제도로 보장되지만, 지식을 유통하고 재생산하는 측면에서 20대 대학생은 지식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수업에서 정해주는 책이나 필수교양도서만 권장당하는 형편이다. 책에 우리의 목소리를 입히고 피드백을 하는, 진정한 사상의 자유를 찾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직접 사서 비치하고 토론하고 좌담회를 여는 공간이 필요하다.


» 고려대 생활도서관. 고려대 생활도서관에서는 올해 성폭력·데이트폭력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김진수 기자   
한나현(이하 한): 서강대 생도관은 아직 공간이 없다. 2010년부터 모임을 만들고 공간을 마련하려 애썼지만, 학교 쪽의 협조가 전혀 없다. 당초 우리는 자치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공간이 필요한데, 생도관 모델이 우리와 가장 맞았다. 중도관에서 공부가 개인별로 이뤄진다면 생도관은 모여서 공부한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학에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지역 청소년이 같이 인문학을 공부했으면

1990년 최초의 생도관이 고려대에서 시작됐다. 원래 교수식당으로 쓰려던 공간을 무단 점유해 생도관을 만들었다. 공간 점거의 선구적 사례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도관은 학생자치특별기구로 인준을 받으며 학교도 손대지 못하는 공간이 됐다. 대학생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 지식을 개방하는 목적은 생도관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각자가 생도관운동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원래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했다. 교수님 말씀을 받아적고 다른 강의실로 가서 다시 그것을 반복했다. 공부와 삶이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고, 생도관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인문학 대중화에서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중요하다. 그런데 대학의 지식과 자원이 주변 마을로도 퍼지지 않는다. 지역 네트워크에 서강대 ‘단비’도 참여하는데, 주민들이 ‘도서관이 부족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런데 대학 안에 있는 이들은 도서관 개방을 꺼린다. 생도관에서 지역 청소년이 같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분위기면 정말 좋겠다.

: ‘대학 생활 말년을 보내는 곳이 생도관’이라는 농담도 한다. 여러 동아리나 자치단체를 거친 이들이 단체의 특성상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여기서 해본다. 운영위원 각자가 가진 아이디어와 자원을 생도관 인프라를 활용해서 실험한다.

고려대 생도관 벽에는 성폭력을 주제로 한 토론회 ‘륙자회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최근엔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한 ‘괜찮아, 사랑이야’ 토론회도 열었다. 방한한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교수를 초빙해 ‘저항’을 주제로 강연회도 했다. 이렇게 생도관은 다양한 의제를 다루는 공론장 구실을 한다.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다양한 의견을 소통하는 공론장이 중요한 시대로 변했다. 더불어 생도관의 생명력도 강해졌다. 이렇게 ‘도서관 더하기 공론장’ 구실을 하는 생도관은 전국 10여 개 대학에 있다. 서강대 ‘단비’처럼 생도관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퍼지고 있다.

생도관 운영 방식도 다양하다. 인하대 생도관 관장은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다. 여기엔 휴식 공간인 DVD방도 있다. 인하대 생도관은 올해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북페어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책 한권이 있다’를 열었다. 좌담회 전날인 12월16일에 취재에 응한 주영찬(25) 인하대 생도관 관장은 “서울에는 북페스티벌이 많지만 인천은 그렇지 않다”며 “출판사와 협조해 인문학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싶었다”고 전했다. 공대생인 그는 “취업이 1년 정도 늦더라도 값진 일이라 생각해” 4학년에 관장을 맡았다. 생도관은 학내 이슈를 알리는 구실도 한다.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 같은 노동자가 “8년을 일해 최저시급보다 150원 더 받는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 밴드를 섭외해 시위를 알리는 ‘버스킹’을 조직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나현 활동가는 “종교학을 전공하는데 생도관 활동을 하면서 정향이 많이 바뀌었다”며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려 준비한다”고 말했다.

중도관 친구들과는 목록이 많이 다를 것

» 각 대학의 생활도서관은 삼성전자 반도체 산 업재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반올림’ 강연(서울대), 저항을 주제로 한 프랑스 소르본대학 교수 초빙 강연(고려대)을 여는 등 공론장 구실을 한다. 인하대 생활도서관은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북페어를 열기도 했다. 각 단체 제공
좌담회 전날 통화한 서울대 자치도서관 운영자 이현석(23)씨도 “졸업하기 전에 자치활동을 하고 싶어서” 의대생이지만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대 자치도서관은 학생 자치활동 자료를 보관하는 구실을 한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자치도서관을 활성화해 내년에는 ‘신입생을 위한 도서 길라잡이’를 만들려고 한다. 올해의 책 선정에 함께한 그는 “덕분에 올해 나왔던 책들을 꼼꼼히 뒤지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바깥의 단체와 함께 올해의 책을 뽑으면서 강압은 없었나. (웃음)

: 전혀 없었다. 다양한 이들을 만나서 좋았다. 각각 생도관 모임에서 책을 추천하고 토론을 해서 뽑고 서평을 쓰는 과정을 거쳤다.

: 서강대 ‘단비’가 뽑은 책은 <밀양을 살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 <모멸감>이었다. ‘단비’를 하면서 기본소득운동을 하는 친구가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추천하고 서평을 썼다. 밀양에 평화농활을 가면서 연대를 했는데 <밀양을 살다>는 올해 함께 읽었던 책이다.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이 녹아든 책을 골랐다.

학생들이 좌담을 하는 옆에서 시민행성 운영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함돈균씨와 김태선씨가 있었다. 와우책문화센터 활동가 은유씨도 함께했다. 김태선 평론가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에 대해 “얼핏 달라 보이지만 ‘이 사회에서 공통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평했다. 고려대 곽승찬씨도 “20대로서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되도록 1인칭 시점으로 서평을 쓰려 했다”고 덧붙였다.

-올해의 책을 학생들과 함께 기획한 이유가 궁금하다.

함돈균: 시민행성은 무중력의 인문학이 아니라 시민 인문학을 지향한다. ‘잇다’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일을 기획하는데,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이어서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려 한다. 20대가 뽑은 올해의 책을 통해 시민과 학생, 세대와 세대를 잇기를 원했다.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20대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인문학의 기본은 불온성과 전복성인데 그것이 빠진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다. 생도관 모임이 뽑은 책들에서는 인문학과 실천을 이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중도관에 가는 친구들이 뽑은 올해의 책은 목록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은유: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책으로 더 나은 세상을’이라는 방향을 가지고 활동한다. 공적 독서에 관심이 많다. 책 읽기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자신의 안으로만 빠지는 경향이 있다. 같이 책 읽기의 가치를 찾으려 한다. 대학생은 이렇게 읽고, 어머니는 저렇게 읽고,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독서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또 개별적 독서모임은 많은데 매핑(지도 그리기)이 되지 않는다. 모임과 모임이 이어져야 말이 순환하는 도시, 생각이 흐르는 도시가 된다. 말의 수로를 뚫어주는 의미에서 ‘올해의 책’에 함께했다.

끈질기게 살아남기를

토론 후반에 황인성(21) 서강대 ‘단비’ 활동가가 도착했다. 그는 “학생자치에 관심이 많은데, 학생회 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위압적인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며 “생도관 활동을 통해 기존 자치기구를 넘어서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생도관 공간 확보가 염원인 ‘단비’는 공간 확보에 다가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준비 기간에 총학생회가 바뀌어 그들의 공간은 “건물을 기부한 회사의 의도에 의해” 로비가 돼버렸다. 나중에 이들은 이곳을 잠시 점유하고 ‘문학의 쓸모’ 행사를 열었다. 한나현씨는 “그렇게 해서라도 학생 자치 공간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점유로 시작해 자치와 자율로 이어지는 생도관 운동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추신. 기사를 정리하면서 보니, 지금 생도관을 운영하는 학생들은 기자가 생도관에 앉아 책을 읽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렇게 생도관은 끈질기게 살아서 나를 불렀다. 20년 뒤에도,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여전히 생도관을 운영해서 그곳에 가게 되기를.

사회·정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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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일 곽승찬(고려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씨는 경기도 안산으로 향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거대한 합동분향소였다. “그것은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검은 띠를 두른 액자가 너무 많았다. 거대한 제단 위에서 죽은 아이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476명 탑승-295명 사망-9명 실종-172명 구조. 숫자들이 전해줄 수 없는 죽음이 내 앞에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거대한 합동분향소에 익숙한 인간은 없다. 그곳에서 그 슬픔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다가간 이는 쓰러져 오열하는 어머니밖에 없었다.”

가장 쉽게 추출되는 단어 ‘세월호’

곽씨는 그날의 기억을 통해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이해했다. 어차피 ‘죽음 그 자체’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산 자 가운데는 없다. 김애란·김연수·박민규 등 작가 12명이 기록한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눈먼 자들의 국가>를 올해의 책으로 뽑은 것은 “비현실 같은 현실을 기록한 이 12개의 세필은 ‘세월호’라는 사건의 부조리와 아픔을 영원히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책과 삶이 이어지길 바라며 생활도서관 운동을 하는 20대와 시민행성·와우책문화예술센터가 뽑은 ‘올해의 책’ 10권에서 가장 쉽게 추출되는 단어는 ‘세월호’였다.

찰스 페로의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통해서 결국 “사고를 일으킨 시스템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에 대한 손가락질만 이어진다면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현정 고려대 생활도서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아픈 기억을 소재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도 ‘세월호’라는 아픔을 직시하는 과정을 놓지 않는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단순히 아픔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사건의 불가해함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하겠다는 충실성을 보이는 일이다. 동시에 생존의 문제와 함께, 또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에 관한 물음을 근원적인 지점까지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바로 그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시민행성 김태선 문학평론가)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20대의 촉수에 닿은 세상은 버겁다. “학교 커뮤니티 취업 게시판에 가면 ‘스물여덟이 넘은 문대 여학우라면 9급 공무원이나 교대 재입학만이 답’이라고 일러주는 세상이다”(양해은 연세대 생활도서관), “길을 걷다가 문득 스스로 가슴을 퍽 하고 치고,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한다. 밤이 되면 이불을 걷어차며 이를 간다. 미친 사람은 아니고, 올해 나와 내 친구들의 증상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닌데 이 숨 막힌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희윤 서강대 생활도서관), “‘문학의 쓸모’ 세미나를 하지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청춘(허자인 서강대 생활도서관)도 있다.


‘노답’이란 말이 유행하는 시대

이런 세상과 대면한 이들은 책에서 답을 찾는다. “내가 가진 정체성의 편리함은 타자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곱씹음으로써 사회 변혁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복잡하게 얽힌 위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역동을 섬세하게 읽어낼 눈을 기를 수 있도록”(양해은)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읽는다. 바티스트 밀롱도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는 과외를 그만두고 교내 학회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배고프게 노래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고기반찬을 한 번 더 먹으며 오랫동안 자기만의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허자인) 상상하게 한다.

사회적 상황을 포착해 해석한 책들을 통해 그 상황을 뚫고 갈 해법을 찾는다. 엄기호의 <단속사회>는 그런 책이다. ‘단속사회’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사회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대는 디지털 시대에 취향과 정치적 입장·가치관 등이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제하는 사회가 지금이다. 이승찬(서강대 생활도서관 활동가)씨는 “‘노답’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결국 ‘노답’으로 규정된 사람이나 단체 또는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의지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라며 “저자의 말대로 다시 한번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책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노답’이라는 말로 냉소하고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들이 읽고 꼽은 책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기반해 있다. 한나현(서강대 생활도서관 활동가)씨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해온 경남 밀양 할매·할배를 비롯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밀양을 살다>를 읽고 ‘차가운 국가와 자본’을 곱씹는다. “사계절 내내 열매며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산이 하루아침에 망가질 때, 평생을 두고 마련한 집과 농지에서 내쫓겨야 될 때 이 땅과 함께해온 사람의 삶은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삶을 지키려는 노력은 불법으로 규정된다. 한전과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사람의 삶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곳곳에서 이러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장에, 세월호 집회에 찾아간다.”

이 땅에서 벌어진 사건과 호흡하다

2008년 벌어진 민주노총 간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성폭력 사건 이후 은폐와 고난의 5년을 기록한 <하늘을 덮다>에서 양해은씨는 파시즘을 읽었다. ‘개인적인 감정 문제로 조직의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된다’는 논리에서 추출되는 파시즘이다. 양씨는 “<하늘을 덮다>는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시대, 전체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패권주의가 존재하는 모든 땅의 책”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살기 위해 구성원의 피해가 외면당했다던 시대뿐 아니라 도 전체의 원활한 전기 수급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내몰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시대, 나라의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모든 가임기 여성은 일단 출산하라는 시대, 기업이 살아야 나라도 살기 때문에 무조건 노동조합이 잘못했다는 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창조적으로 월화수목금금금 야근하는 땅”의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2013년에 출간됐지만 2014년에 호출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20대가 불러낸 ‘올해의 책’은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사고들 위에서 그들이 호흡하고 있고, 아파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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