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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27] 시골고양이와 서울고양이

시골고양이와 서울고양이

[차오르는말들]

 

충남 홍성군 지인의 집에 몇몇 친구들과 놀러 갔다. 서울 토박이고 시골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무척 설렜다. 펜션이나 콘도가 아닌 벽면에 세간살이 다닥다닥 걸린 민가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무심히 지나가는 구름을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시골집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고양이 두 마리. 눈사람처럼 전신이 하얀색 털로 덮인 흰 고양이와 갈색, 흰색, 검정색 얼룩덜룩한 무늬를 지닌 삼색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두 마리 모두 사람을 따랐다. 흙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꽃구경하는데 다리 아래로 들어와 가르릉거리며 몸을 비볐다. 녀석들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는데 몸통 한쪽이 거슬거슬했다. 내가 고양이가 있는 시골집에 놀러간다고 했더니 고양이 박사인 딸내미가 대뜸 일러준 말이 떠올랐다.

엄마, 고양이가 따뜻한 곳을 좋아하잖아. 시골고양이는 부뚜막에 있다가 연기에 그을어서 몸통이 회색이래.”

자세히 보니 정말로 그 고양이의 흰 털에 노릇노릇하게 빈대떡만한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옅은 화상 흔적이다. 고양이들은 일행이 산책을 나가자 마당을 독차지하고 몸을 길게 뉘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노랗고 하얗게 핀 수선화 꽃무리 울타리를 등지고 고양이 두 마리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누워 잠든 것이다. , 저것은 평화!

우리는 저녁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천변 언덕에서 쑥과 개망초를 캐고 하우스에서 상추를 뜯어 마당 수돗가에서 씻었다. 어느 틈에 나타난 고양이들은 채소 씻을 때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하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할딱거리며 목을 축였다. 삼겹살 고기를 구워먹을 때도 주변을 맴돌더니 사람들이 던져주는 생고기와 구운고기를 넙죽 잘도 받아 얻어먹었다. 배가 찼는지 어둠속으로 스윽 사라졌다. 그리고 봄밤이 깊어 천지간 불빛이 사라지자 발정 난 고양이의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 이것은 빵과 자유와 사랑!

자연의 품에서 등따시고 배부르고 자유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시골고양이의 삶에 감화를 받고 돌아온 서울. 18층 아파트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것도 역시 고양이였다. ‘모질개선용샴푸로 목욕을 해서 털이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말쑥한 우리 고양이 무지. 중성화 수술로 욕망을 거세당한 얌전한 서울고양이. 정방형 거실과 직사각형 베란다를 오가고 네모진 침대 위 60수 순면패드에서 잠을 청하고 높은 책꽂이에 올라가 상승 욕망을 충족하거나 택배 상자에 쏙 들어가서 노니는 도시고양이. 타고난 야생성에 반하는 환경, 협소한 시멘트 건물에 길들여진 동선. 안 그래도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려 할 때 가장 걸렸던 점인데 실제로 시골고양이의 다른 삶을 목도하자 우리 고양이가 더욱 안쓰러웠다.

며칠 뒤 홍성 지인은 흰 고양이가 직접 참새를 낚아채 입에 물고 유유자적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진을 보내왔다. 딸과 함께 시골고양이의 생식장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뒤로 딸아이는 우리 고양이에게 사료를 부어줄 때마다 말한다.

 “참새도 못 먹는 가엾은 우리 무지...”

산업화시대 시골쥐와 서울쥐의 우화는 도시의 풍요를 동경하던 시골쥐가 그 이면의 불편과 소외를 감지하고 초라하고 소박해도 자기 삶에 만족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간다는 교훈으로 끝난다. 21세기 시골고양이와 서울고양이의 우화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기형도의 시구대로 서류뭉치 같은 건물에 갇힌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낀 서울고양이가 시골로 내려가 가난해도 평안하게 안빈낙도하며 살갔다더라? 나는 어느새 고양이만이 아닌 열네 살 우리 아이까지, 사각형에서 놓여난 다른 삶을 상상하고 있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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