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정옥 노동보건활동가 - 나는 삼성직업병 통역하는 사람

[행복한인터뷰]



삼성 직업병 피해자 관련 영상자료를 보다 보면 젊은 의학전문가가 등장한다. 한번은 긴 머리, 한번은 짧은 머리, 안경을 쓸 때도 있다. 인상은 매번 다른데 소견을 밝히는 야무진 말투와 ‘의사 공유정옥’이란 자막은 똑같다. 동일한 인물이다. 세월의 폭이 느껴지는 모습이 말해주듯 그는 일찌감치 노동자 편에서 일했다. 금속·자동차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과 산재보상을 일궈낸 노동보건운동 활동가로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발족에 참여하는 등 삼성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하는데 힘썼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공중보건학회(AHPA)의 ’2010 산업안건보건상(Occupation Health & Safety Awards)’ 국제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노동자 건강권을 지켜온 한국 의사의 국제적인 수상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국내 최대 광고주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언론은 알아서 침묵했다. 지난 11월 시상식에 참가한 그는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함께 온 동료들과 반올림이여야 한다”고 수상소감을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정보 파악, 국제연대 구축 등 보름 간 미국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공유정옥을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산업의학 전문의 활동가, 삼성 직업병 ‘통역’하다

“수상소식을 듣고 제가 아니라 반올림 이름으로 선정해달라고 했는데 단체는 수상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같이 고생한 분들이 많아요. 제 역할은 반올림을 알리는 일종의 ‘통역’이죠.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노동자 문제를 제기할 때 거대독점재벌의 횡포라고 말하면 심리적 저항이 있으니까, 쉽게 풀어서 얘기하는 사람. 직업병 쪽 산업의학에 대해 약간 알고 있어서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안다고 여기저기 나내는 사람(웃음).”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은 현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 연구원으로 일한다. ‘반올림’ 활동은 한노보연의 중요한 연대사업이다. 노동계를 돕는 진보적인 의사가 아니라 하얀 가운을 벗고 두툼한 방한복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는 활동가다. 검은 세단 대신에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한다. 노동자 면접조사, 통계 분석, 피켓 만들기, 화장실 청소 등 여느 단체 상임활동가처럼 일인다역을 소화한다. 지난 12월 21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인사 선언> 526명 명단에도 ‘공유정옥’은 보건의료전문가 집단이 아닌 시민사회운동가들 틈에 이름이 올랐다.


“의사란 이름을 떠난 지 5년쯤 됐어요. 평소에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랑 섞여 살고 있어서 의사라는 걸 의식할 일이 없어요. 근데 인터뷰를 하면 ‘의사’에 방점이 찍혀 나가요. 그냥 전문의 자격증 따고 살고 싶은 대로 살 뿐인데… 또 여전히 저는 기득권 세력이에요. 급하면 주말에 응급실 아르바이트 해서 몇 십만 원 벌수도 있고요. 이번에 상을 받으니까 어느 방송사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해요. 이렇게 사는 의사가 있다니 신기하고 피해자들은 눈물 뽑고 재밌을 거 아니에요. 거절했어요.”

상계동 진료소 지나 민중의료연합에 가다

나는 오늘 의사를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공유정옥 선언’은 상계동의 추억에서 시작된다. 새내기 시절 과 동아리 상계진료소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80년대 선배들이 만든 색깔 있는 모임이었다. 의료봉사활동이 아니라 도시빈민운동에 가까웠다. 매주 토요일 4시에 상계동으로 무료진료를 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아이들과 어울렸다. 과외로 번 돈을 세미나 책값으로 다 써가며 투쟁과 해방의 역사를 배웠다. 진료도 세미나도 선배들도 이웃들도 좋았다. 그렇게 책과 사람을 통해 세상에 눈 떠갈 즈음 상계동 철거를 목도했다. 처참했다. 의예과 2년 동안 정이 흠뻑 들었던 동네가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렸다.

화인처럼 박힌 폐허의 기억에 대해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터놓았다. ‘지하철 타고 오면서 너무 피곤하기는 한데 잠을 한숨도 못 자겠는 거예요. 이제 겨우 스무 살에 내가 한 게 뭐가 있어서 그 집에 사나. 다섯 살 여섯 살 먹은 애들은 지들이 안 한 게 뭐가 있길래 하루아침에 집 없는 애들이 되는가…저 할머니는 나와 무슨 차이가 있어서 저 연세에 폐지를 줍고, 13만 원 정도 했던 생활보조금으로 만날 라면만 끓여먹는 삶을 사는가’

곡진한 물음의 쇄도. 이 가슴 저린 각성은 강남 8학군에서 “은수저 물고 태어난” 의대생을 고난의 행로로 이끈다. 본과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든 그는 시대의 물살에 떠밀려 좌초해가는 총학생회에서 청년정신의 마지막 불씨를 지폈다. 민중의료연합 민중연대팀에 들어가 철거민이나 노동자 농성장을 오갔다. 서울대보건대학원에서 4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2005년 산업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서 한노보연 상임활동가의 길을 간다.

“진로를 오래는 고민했지만 깊게는 못했어요. 의외로 쉽게 결정했어요. 레지던트 마치고 새 직장을 가야하는데 산업의학 검진의로 하루에 몇 백 명씩 건강진단 하는 일은 재미없고. 공부를 계속 하려면 외국논문 읽고 학회 참석해야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산업의학은 현장을 많이 다니는 거고. 논문 쓰는 거보단 노보에 글 쓰는 게 좋고. 의대생 모아 놓고 강의하는 건 재미없는데 노동자 모아놓고 강의하는 건 좋고(웃음).

인턴 할 때는 주량이 소주 3잔이었어요.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싫어서 회식 때 당직을 자처하고 빠졌죠. 민중의료연합에서는 월1회 술자리가 좋았어요. 주량도 늘었죠. (소주1병은 아쉽고 2병은 과하고) 상임활동가들을 오래 봤고 같이 커가고 서로 다르게 살더라도 신뢰가 가요. 이제 못 돌아가요. 이 길이 더 재밌고 행복하니까 택한 거예요. 의대 등록금도 아빠 회사에서 나왔어요. 집안을 일으켜야하는 부담도 없었죠. 사실 의사는 망해도 집 있고 차 있이 망해요. 그 때 제가 놓았던 건 안전성이겠죠.”

거제에서 울산까지 ‘노동보건운동’ 깃발 꽂다

선한 눈매에 해사한 웃음이 매력적인 그. 하지만 행동력은 극지 탐험대장의 그것이다. 공유정옥은 아프고 병든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연대의 깃발을 꽂았다. 2002년 대우조선에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을 띄워 현장투쟁과 결합된 연구 활동을 펼쳤다. 노동자들을 만나서 진찰하고 수십 명씩 산재를 신청해 치료를 요구하고 지부별로 조합원을 모아 교육하고 간담회를 열었다. 이 싸움은 전국 수 십군데 사업장으로 번졌다. 덕분에 당시 근골격계 산재승인율 그래프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때만 해도 손가락 절단 같은 사고성 재해는 노동조합에서도 처리했지만 진폐증 같은 직업병은 저항매개가 빈약했죠. 일하면 당연히 아프지 생각하는데 왜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가, 살려고 일하는 거 아니냐고 말해요. 노동자들은 힘든 일을 하면 허리는 으레 아프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니에요. 내가 뺏긴 거예요. 일자린 지켰지만 몸은 뺏긴 거죠. 투쟁으로 돌파하자, 그래서 산재 신청서 냈고, 승인 결정도 나기 전에 그런 질환의 노동자들이 다 회사를 나와 버렸죠. 회사에서 충격 받아 협상에 나오고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집회하고 그래서 90%이상 산재승인 받았어요.”

직업병 투쟁은 도시철도공사로 번져갔다. 2003년 한 기관사의 자살을 계기로 정신질환 문제가 불거졌다. 공유정옥은 곧바로 현장조사사업에 착수해 도시철도공사 승무본부 공황장애투쟁에 결합했다. 2005년엔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사업을 위해 1주일에 3일을 울산에 내려갔다. 이후 금속노조와 함께 노동자건강권 시리즈 소자보 제작사업, 비정규직의 건강권 대응사업 등을 다양하게 전개했다. 그러던 중 2007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발생이라는 ‘자본주의의 재앙’을 접하게 된다.

“삼성 개과천선으로 풀리는 문제 아니다”


삼성은 노조가 없는 거대한 막강 자본이고 반도체산업은 한국 부의 원천이다. 그런 공장의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이숙영 씨가 함께 발병했다. 라인은 달랐지만 엔지니어 팀에 속한 4명 중 3명이 희귀병에 걸렸다. 그들과 똑같은 일을 했던 미국 IBM 공장에서도 연구원 12명 중 10명이 암에 걸렸고 그 중에 4명은 똑같이 뇌종양이 생겼다. ‘잔인한 우연’을 ‘구조적 필연’으로 읽어낸 공유정옥은 생각한다.

“금방 안 끝날 거 같은 싸움인데 10년~20년이 걸리더라도 잘 해보고 싶다.”

그리곤 그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전개했다. 비대위를 꾸리고 피해자를 만나고 시위하다가 잡혀가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월에는 국제 반도체 및 전자산업전시회가 열린 킨텍스 앞에서 시위를 했고 11월 3일과 4일에는 서울대 보건대 50주년기념학회에서 반올림의 활동을 알렸다.

“반올림이 만들어지고 3년 1개월 지났는데 제법 유명해졌어요. 택시 기사님도 알더라고요. 자세히는 몰라도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 백혈병 걸렸다는 것 정도는 이 나라 사람들이 다 알아요. 의외의 성과죠. 그런데 삼성이 나쁜 기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이미 충분히 얘기 됐고, 또 이건 삼성이 개과천선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에요. 정치체제와 사회질서 문제에요. 장애, 빈곤, 인권 등 다각도에서 풀어야 돼요.

예컨대 삼성전자반도체사업부 LCD를 제조하는 모듈 공정에서 6년간 근무한 한혜경 씨. 77년생인데 입사 3년차부터 생리가 멈췄고 뇌종양이 발병해 1급 장애에요. 엄마랑 둘이 사는데 5년 간 투병해서 수입이 없어요. 의식은 멀쩡한데 못 걷고 못 먹고 못 울어요. 통곡을 못해요. 마주치게 되는 고통이 많죠. 장애투쟁과 만나고 빈곤문제와 만나요. 산재보상은 일부에 불과해요. 삼성 직업병 피해자 싸움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접근과 조직화가 필요해요.”

인도네시아 반도체 피해여성 만나다


이번 ’2010 산업안건보건상’ 수상은 답보상태에 빠진 반올림 싸움에 물꼬를 터주었다. 시상식에 참가한 공유정옥은 미 보건학회에 참석하여 청원서 서명도 받고 반올림의 활동을 알렸다. 이미 30년 전부터 전자산업노동자 산재투쟁을 벌여온 그들은 한국의 반올림을 주목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힘을 주었다. ‘산업안전보건문제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노동자와 기업 사이에서 정부란 중립이서는 안되며, 중립일 경우 산업안전보건이라 할 수 없다’

“산업보건분과 학회에 참석했는데 대부분 저 같더라고요. 삼분의 일은 지역단체 활동가에요. 연구하고 책 쓰고 교육하고 투쟁하고. 미국 안에서 멤버십이 이삼백명 정도에요. 공중보건 쪽은 일하다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보편타당한 건강권을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공유정옥이 수상한 산업안전보건상 국제부문 역대 수상자는 거의 아시아에서 나왔다. 디지털 강국 한국에 이어 대만과 중국이 전 세계의 전자공장이 되어가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반도체산업 산재투쟁에서 아시아가 매우 중요한 격전지인 셈이다. 공유정옥은 내년에는 반올림 기구를 상설화하고 아시아 노동자와의 국제연대를 구축할 것이라며 활동가들끼리 농담처럼 말하던 ‘아시아 반올림’ 태동이 도래했음을 예고했다.

“일전에 인도네시아를 갔다가 한국에서 3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난 현장 노동자를 만났어요. 인도네시아 반도체 공장 10년 일한 여성노동자인데 반도체 용어는 똑같으니까 말이 통하더라고요. 제가 반도체 공정을 공부했거든요. 다 알아듣겠고 유산, 생리불순, 피부질환 등등 우리 피해자랑 똑같은 얘기를 해요. 내년에는 당사자들 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피해여성과 가족을 동행할 생각이에요. 인도네시아, 필리핀 활동가나 피해자도 초청해서 당사자 싸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고요.”

삼성은 기업비밀을 핑계로 작업현장을 공개하지 않고, 직접 노동자의 삶 자체도 폐쇄적이라 접근이 쉽지 않다. 80년대 방식으로 위장취업을 하고 싶어도 고등학생만 뽑으니 어려질 수는 없는 노릇. 오죽하면 “반도체 공장 앞에 피부관리샵을 차릴까, 아니면 미용실을 차려서 여성 노동자들과 친해져볼까” 별의별 궁리를 다 해봤다는 공유정옥은 타국에서의 단비 같은 만남을 회상하며 국제연대 네크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은 이미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 만국의 노동자의 연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음을 깨달은 것.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는 세상 꿈꾸다

일기장처럼 쓰는 그의 블로그 제목은 ‘풍덩’이다. 소위 386 운동권 세대를 물타기, 뛰어들기, 적시기로 나눈 글을 보고는 마음에 파장이 남았다. 큰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필요한 건 적시고 뛰어드는 것. “물 탈 깜냥도 안 되고 온전히 풍덩 뛰어들었나 보면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이렇게 살고는 있다.” 이십대 중반 삶의 바다에 뛰어든 그는 모진 풍파 헤치며 강인한 지적체력을 길렀고 어느새 서른 후반의 태양을 맞는다.

“산재투쟁 하면서 분명 고통의 양은 커졌어요. 피해자 어머니들 얘기 들으면서 친해질수록 슬프고 고통스럽죠. 외롭게 싸우는 분들이 돌아가시고, 힘들게 사는 얘기 듣다 보면 눈물이 나고 기운이 소진돼요. 인생에 쏟아 부은 공이 많은 사람들인데 싶으니 불쌍하기보다는 제가 불편하고 미안하죠. 그래서 이 일이 고통이 크긴한데 세상에서 안 보이던 사람이 보여요. 이 싸움은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싸움이에요.”


행복과 고통은 쌍둥이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문태준)이다. 그 역시 다른 상임 활동가들처럼 웃고 울고 감정적 부침에 따라 조울증을 앓기도 한다. 그래서 삶의 여백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오롯함. 나만의 시간. 이런 말들이 여가, 일상, 유희로 변질 됐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긍지를 회복하는 시간", 그 때 뭘 할거냐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영위할 권리, 청소년 인권으로 말하자면 엄마의 눈 밖에 날 권리 같은 것이다.

이를 위해 2008년 어느 봄날, 공유정옥은 바이올린 학원을 찾아간다. 다른 일은 호흡이 긴데 이건 조금만 연습해도 성과가 나타나니까 초기에는 그 재미가 컸다. 집에서 연습하면서 층간소음 문제도 고민하게 됐다. 매년 송년회에서 한곡씩 연주한다. “인터내셔널가, 이런 거(웃음)” 얼마 전부터는 2만 원 짜리 미용가위를 사서 머리를 거울보고 혼자 자른다. 그러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다르게 해석하게 됐다. 소소한 삶의 실험으로 세상이 훨씬 새롭고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삶의 여백을 허용할수록 세상과의 접촉면이 확장되었고 살아야갈 목표와 행로는 선명해졌다.

“산업의학은 연구를 기반으로 현장에 개입하죠. 스펙트럼이 넓어요. 법, 제도, 작업장 문화, 사회적 건강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경계에 있고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경계에 있어요. 재미있으려면 끝없이 재밌는 학문이죠.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얘기된 적이 없어요. 누구도 수저만 놓았지 한 상을 멋지게 차려본 적이 없거든요. 직업병 피해자의 88%가 불승인 되는 제도 등 우리나라의 취약한 산업보건문제를 공론화해서 노동자 생명이 우선이 되도록 판을 짜야죠.”

그는 꿈꾼다. 맑스의 정의대로 ‘계속 노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팔 것이 없는’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로또 당첨처럼 산재승인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업병 노동자의 최소한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아마도 공유정옥이 차린 풍요로운 밥상에는 우리시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물음들이 차려질 것이다.

* 위클리수유너머 47호 전선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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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의 만남

[사람사는세상]

“근데 왜 저를 부른 겁니까? 연구원들이라고 하셨죠? 삼성반도체 한 사업장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이 백혈병과 희귀암으로 죽어갔습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진보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성명서라도 내야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무슨 단체들 많잖아요. 삼성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건가요.”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투쟁조끼, 덥수룩한 수염, 형형한 눈빛이 천생 노동운동가의 포스였다. 원망과 애원이 범벅된 직설적 어법으로 첫마디를 열었다. 외면과 내면의 일치. 그 진실한 환대에 야단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저런 말 들어도 싸다. 삼성 나쁘다고 말만 했지 뭐 하나 실천적으로 연대한 것이 없으니 아무 말 못했다. 8일 저녁 수유너머N에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토론회를 가졌고 나는 조금 일찍 가서 인사를 드렸다.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삼성을 지난 5월부터 다루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삼성이 우리나라를 다 덮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라서 어디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견적이 안 나와서 미루고 미뤘다고 이실직고했다. 일단은 위원장님을 뵙게 되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말씀을 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위원장님은 “간을 보려는 거냐?” 끝까지 밀어붙이셨지만 역시 반박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난 취재거리의 간을 보러 간 거였다.  

삼성과 15년간 긴 싸움을 이끌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1993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주)이천전기에 입사했고 삼성그룹이 이천전기를 인수 통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노사협의회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11월 해고되었다. 2003년 삼성일반노조를 만들었고 2005년 수감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셨다. 삼성일반노조는 삼성그룹계열사, 사내하청, 협력업체 등 지역, 업종을 망라한 삼성관련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테이블에 두툼한 ‘삼성탄압백서’를 근거로 삼성 재벌의 무노조 노동자탄압의 실상을 듣고 백혈병 노동자로 죽어간 스물둘 스물셋의 꽃다운 삼성노동자의 동영상을 봤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내가 지난40년 소설, 영화, 책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모든 불의와 악랄함과 부도덕과 몰염치의 완결판을 구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에서 백주대낮에 저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에 다 같이 눈감고 있는 실상에 잠시 어지러웠다.  

삼성노동자는 5.18 광주였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차단돼 있었다. 삼성으로부터 ‘버림받는 또 하나의 가족’ 그들의 실상을 알릴 길이 없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의 진실은 세상에 가닿지 않는다. 학살원흉이라고 욕먹는 전두환이 이건희를 생각하면 억울할 것 같았다. 이 정보화의 시대에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삼성 노동자들은 이건희의 무노조 경영을 자기 안에 내면화 하고 이건희처럼 생각합니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노조를 만들어서 노동자의 권익을 챙겨주는 것보다 방해공작 하는 돈 이 덜 들기 때문이고, 세금을 내는 것보다 뇌물 주는 것이 돈이 덜 들기 때문에 온갖 정부기관, 언론사에 삼성장학생을 심어놓는 거죠.”  

삼성이데올로기의 내면화 내 안의 이건희가 삼성을 살려주고 있다. 주변에 보아도 굳이 삼성에 다니지 않더라도 임원급으로 '삼성을 생각하는' 애사심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데올로기의 뜻은 허위의식이다. 삼성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공포감.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신화가 된 믿음. 이건희 앞에 엎드리는 자발적 노예화. 이것이 삼성을 지탱한다. 그럼에도 위원장님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십년 전엔 삼성에 노조 만들려던 노동자가 납치됐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젠 노조를 만들려다가 잡혔다고 말한다고 굉장한 발전이라고 했다. 또한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과 투쟁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비록 관료와 언론이 결탁해 조직적 방해공작을 펼치고 회유 당할지언정, 아직은 돈에 길들여지지 않는 노동자도 있다는 얘기다. 또 올해 초 삼성일반노조 사무실도 생겼다고 좋아라하셨다. 점점 힘을 키우고 있다고.  

“저희는 광고를 기준으로 투쟁을 평가합니다. 삼성노조 투쟁이 신문에 기사한줄 안 나오지만 다음날 각 신문에 삼성 광고가 일제히 실리면 ‘아, 우리가 잘 싸웠구나’ 압니다.” 

삼성을 (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진즉에 사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다. 앞부분 몇 십 쪽 읽다가 덮어두었다. 너무 추해서 볼 수가 없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그 책에는 삼성노동자의 얘기가 빠졌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성환 위원장의 증언을 통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삼성제국의 실체가 폭로되고 있다. 100여명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 키운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의 발전이었는지 묻게 된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은 머지않아 유럽의 노조, 소비자단체, 비정부기구(NGO)들로부터 거대한 반대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 26000’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 빈대학 마르틴 노이라이터 교수는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아무리 말해도 꿈쩍 않던 삼성이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것 같자 작년에 사내에 노동건강연구소를 세웠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눈물겹다 밤 10시가 넘어 허둥지둥 빠져나온 큰 길가. 살아가야할 삶의 길이 펼쳐진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는 쓸쓸한 밤길.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가. 백년도 채 살다가지 못하는 인생인데 왜들 이렇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람 죽는 것을 예사로 알고 인간적 책무마저 방기하고 부를 탐하는 걸까. 인간다움의 가치보다 화폐가 전지전능한 신이 된 세상이 한스럽다. 사는 일이 허전하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런 법이 있는데도 사장이 지키지 않고 버젓이 인간 이하의 착취가 범해졌던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후부터 자기가 싸울 대상은 사장이 아니라 국가임을 직감하고 국가를 상대로 싸우다가 꿈쩍도 않자 분신 항거한다. 지
독히도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성환 위원장님은 전태일의 치미는 분노, 그 '기막힌' 심정, 그것과 같으리라.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게 없다' 고 말하며 삼성의 족벌경영체제를 무너뜨리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겠다는 위원장님, 삼성에게 버림받은 또 하나의 가족 반올림 사람들. 딸을 먼저 보내고 남편을 먼저 보낸 채 뒤늦게 ‘삼성의 학살’이라며 눈물짓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들의 편에서 돕는 의사 공유정옥 씨. 삼성노조위원장을 수유너머에 초대해준 박은선씨. 그녀를 일컬어 이진경선생님 왈 “젊은 친구가 80년대 민중예술관을 갖고 있다”고 말해서 웃었는데, 그녀의 열정 덕분에 삼성노동자에 마음자리 내어주게 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내는 비교적 살만한 단체의 후원금은 정리하고 삼성일반노조 후원으로 몰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은 너무 큰데 연대세력은 너무 작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성은 노동계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상식과 윤리의 문제다.

*<삼성일반노조 후원하실 분> http://samsunggroupunion.org (포털검색어: 삼성일반노조)
이름. 연락처. 주민번호. 핸펀번호. 주소. 후원금액 3천원부터 10만원, 기타까지 개인이 정할 수 있음.
예금주. 거래은행. 계좌번호. 이메일. 적어서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면 됩니다.
fax 02-2636-7830 sinojo21@hanmail.net 노조사무실 전화번호 02-2636-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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