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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30] 비 / 황인숙 (2)
  2. [2010.07.02] 김수영 / 비 '움직이는 비애' (7)

비 / 황인숙

[올드걸의시집]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싶다......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황인숙 시집, 문학과지성사

 

일요일에 성묘를 갔다왔다. 집에 두고 간 핸드폰에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뭔가 봤더니 추장 부친상 소식이다. 가슴이 덜컹했다. 며칠 전까지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기위해 일산 근처로 이사해야할 것 같다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뭐 그런 얘길했었다. 아버지가 오래 아프셨다. 27년 정도. 예전에 추장 인터뷰할 때, 아버지 얘길 꽤 길게 했었다. 아버지가 막내인 그를 유독 예뻐했고 아버지에게 업혔던 따뜻한 등을 기억하고, 중3때부터 아팠던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화학과를 지원했고 등등. 그 나눠가진 기억 때문인지 마음이 아팠다. 여러가지 이유로 심란했다. 작년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어떤 일인지는 분명한데, 감정 상하는 일이 있어서 다투었다. 내가 삐진 상태였다는 말이 맞겠다. 이메일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할말 다 했고 그도 할말 하는 듯 보였다. 서로 조심하는듯 그랬어요 저랬어요 예의 갖췄지만, 적대가 형성되면 인간은 가장 상처주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을 나는 싸울 때마다 느낀다. 니체가 말하는 해석이 그런 뜻은 아닐 텐데요. 나는 그러고. 시를 읽을 때 그렇게 읽진 않을 텐데요. 그는 그랬다. (정확히 대칭적인 응답을 해오는 이 대목에서 나는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

서울에 와서 며칠 후 술 마실 때. 로고스로 생긴 문제를 로고스로 풀거냐고 나는 화를 내고, 그는 그럼 파토스로 어떻게 풀 건지 말해달라고 했다. 팽행선을 그으며 달렸다. 내가 자기에게 정치적이라고 말해서 기분이 나빠서 그 다음 부터는 편지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내가 정치적이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한 거는 같다. 나는 지식(인)은 권력이 아니고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일 뿐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연구실 동료들이 나의 판단에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못 참겠다. 자기배반적 행위. 지식의 권력화. 내가 여기서도 이걸 봐야하는가 억장 무너진다. 그래서 평소 다정다감한 내가 꽤나 화를 냈다. 냉랭한 한 때를 보내면서 문득 쓸쓸했다. 그는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이었고 사람이며 사람이어야 하는데 신뢰가 흔들리니까 나라고 좋을 리는 없다. 어느 날은 버스 타고 가다가 민에게 말했다. 추장이랑 같이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뭘 해보고 싶었는지 까먹었다고. 그래서 슬프다고...근데 제아무리 삐친 마음도 시간이 섞이면 흐릿해진다. 얼굴 보면 무장해제된다. 꼭 그렇게 해석해야했었나, 자기반성의 시간이 도래힌다.

미운 기억이 휘발되는 중이었다. 맹렬히 화내는 것도 크나큰 애정인데 오래 긴장을 유지할 만큼 기력이 없다. 나이들면 이런 점이 좋다. 나이들어 부드러워지고 미혹되지 않는 건 세상과 화해해서가 아니라 생체에너지가 소진돼서다. 청년의 위험한 피, 솟구치는 피를 지키며 살수 없을 때 기성세대가 되는 거다. 사실 뭐, 사람 사이 정서적 유대라는 것이 얼었다 녹았다 그럴수 있지만, 그래야 자연스러운 것이겠으나, 그럴 때마다 이렇게 왕창왕창 티가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에게 미안하고 그러던 참이었다. 부친상 소식이 그 때 들려온 거다. 다정의 화법을 잃어버린 나를 어색해하고 있을 때. 추장이 그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시고 있을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스타벅스 스틱 커피 두 개 싸들고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해서 문상을 갔다. 검은 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순간 울컥했다. 나로서는 최대한 머물다가 새벽에 왔다. 웃고 떠들고 다른 친구들이랑 소란스럽게 놀았다. 상가집은 북적여야한다며 열심히 수다의 밤을 보냈다. 내가 남자친구였으면 발인까지 보고 갔을 거라며 민을 설득해 앉혀놓고 왔다. 할일이 없어도 누가 옆에 그냥 있어줘야할 때가 있다고 얘기했다. 수면 리듬이 깨지고 정서 리듬도 널뛰고. 일주일 내내 뒤숭숭하게 보냈다. 친구가 뭔지. 우정이 뭔지. 신념이 뭔지. 아는 관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맴돌고 떨구고. 나의 살아감은 미안함의 증식. 지금 전주에는 봄비가 온다는데...스산스산 종종거리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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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 비 '움직이는 비애'

[올드걸의시집]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김수영전집1 , 민음사 


 



시골구석에서 사는 아이가 희귀난치병이다. 몇 번 들었어도 이름을 외기 힘든 척수성근위축증. 태어나자마자 사지에 힘이 빠진다. 심폐기능이 약해 호흡이 어렵다. 지역 내 큰 병원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억척스레 아이를 들쳐 업고 상경했다. “그래도 큰 병원 가봤다는 소리는 들어야지 원이 없잖아요.” 이런 얘길 들을 때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투박하고 새까만 문신한 눈썹과 실밥 뜯어진 비즈가 처량하게 매달린 네크라인을 멀뚱멀뚱 훑는다. 수년간 그 먼데서 ‘큰 병원’을 다니며 아이의 숨을 이었다. 없는 사람에게 병원체제로 돌아가는 24시간은 혹독하다. 째깍째깍 초침 따라 병원비가 올라간다. 빈 밭처럼 버려진 집구석에 비가 들이친다. 세끼 먹고 사는 일상성의 유지가 힘들다. 번뇌는 물적이다. 궁핍하면 험해진다. 아픈 애가 있는 가난한 부부는 거칠기 짝이 없다. 아파서 가난하고 가난해서 싸우고 싸워서 다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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