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유년시절> 과제 리뷰

[글쓰기의 최전선]

"기억의 빈곤은 의식의 빈곤이다. 베르그손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의식의 블랙박스를 기억에서 찾았다. 기억과 더불어 희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기억은 나의 정체성을 마련해 주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를 발견하는 것도 기억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과거 감정을 재조합하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기억의 삼단논법. 장소-기억-의식. 인간의 의식 활동은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있고 친숙한 장소가 많으면 풍부한 의식 활동이 가능하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기억의 장소가 사라지면서 현대인이 과거를 상실한 현재인이 되어가는 문제점을 지적한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글을 대략 정리한 것입니다. 벤야민의 도시철학도 비슷해요. 현대인의 특징으로 경험의 위축이야기하는 능력의 상실을 말하죠. 낡아버린 것(아케이드)에 나타나는 혁명적 에너지를 보려했고, 과거와 일상들에서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들을 끌어내려고 했던 것이 그의 철학적 기획이었으니까요. 간단히 살펴보면,

-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발전된 핵심주제는 사물세계에 대한 어린아이 특유의 친화력이다. 어린아이는 자연과 위계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으며 자연의 지배가 아니라 자연과 동등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어린아이는 조응을 지각한다. 기억된 어린아이는 상품의 운명으로부터 일상용품을 해방시킨다. ('프티 부르주아의 방은 상품자본이 공격하고 승리한 전쟁터다')

- 벤야민은 기억과 환경, 시간과 장소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벤야민의 시선은 장소와 사물에 집중, 도시과 환경의 대상들과 배경을 어린아이가 상상력을 통해 어떻게 이해하고 변형했는지, 어른이 되어 어떻게 회상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벤야민의 글은 유년시절의 잃어버린 시간뿐 아니라 대도시의 감춰진 균열까지 찾으려 한다. (자전적 소묘가 아니라 특별한 장소와 시간, 도시와 과거 기억들 모음)

- “기억의 깊은 곳을 향한 개인적 탐험은 망각된 유년시절의 행복약속을 되찾는 것. 기억은 성인이 되면서 좌절된 어린아이의 묻혀진 바람들, 염원들과 꿈의 회복을과제로 삼는다. 과거는 끝나버린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는 성인을 따라다닌다. 과거는 <베를린의 어린시절> 마지막 단락에서 말했던 작은 곱추의 모습으로 성인을 뒤쫓는다.

 

:: 학인들 과제 리뷰

=이 글의 미덕은 마론인형이야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서술해보려 애썼다는 점이에요. 이 일화를 따뜻함으로 급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마론인형이라는 표상을 통해 드러나는 소원-욕망으로 풀어냈으면 어떨까요. 우리의 욕망은 늘 타자의 욕망이고 그래서 채워질 수 없고, 소원은 과정으로만 존재한다. 성취를 어느 시점에서 어떤 척도로 판단할 것인가. 등등. 사유를 밀고 나가면 좋겠어요 

=‘2006년 음악하는 남자친구를 잠깐 사귀었다로 시작하는 두 번째 문단이 서두로 오면 글에 집중력이 생기겠어요. 첫 문단은 내용이 추상적이고 전개가 두루뭉수리해서 계속 읽고 싶은 욕구가 덜하죠. 마지막에 꿈과 밥의 관계를 푸념처럼 늘어놓았는데 그걸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해서 써보세요. 현재 밥을 위해 하는 일, 만약 밥만 보장이 된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를 쓰세요. 꿈은 직업의 카테고리에서 골라내는 게 아니라 일상적 언어화를 통해서만 청사진이 그려집니다. 삶에서 길러낸 문제의식은 좋으니 구체적으로 좁혀 쓰는 노력을 더 기울여보세요. ^^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너무 잘 쓰시는 거 아니에요? 흐흐. “모든 일들이 과도한 의미를 가지며 일분일초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주는 세상이었다. 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이 문장 좋아요. 소녀의 속내를 본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앞의 두 단락은 위험해요. ‘바다는 그렇게 소녀에게 동경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었다. 난 내 영혼에 바다의 색깔, 냄새, 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극도의 추상적 표현이고 서사가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니까 모호해요. ‘멋진 글보다 쉬운 글, 감상보다 줄거리, 거창한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쓴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글을 써나간다면 바다님의 감수성이 더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글이 얼굴처럼 착해서 큰일이에요. 일단 내용을 길게 써보는 노력을 기울여주세요. 분량이 생기려면 내용물-인물/사건/배경이 명확해야합니다. ‘나에게 소원은 내제된 어떤 착한 마음과 같다. 나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꼭 이뤄져야 할 어떤 것이라면 언제나 모든 이들의 행복을 염원할 것이다.’ 이런 문장도 모든 이들이 누구인지 명시를 해줘야합니다. 하다 못해 계급적으로라도 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빈민층? 여성? 이들을 위시한 사회적 약자 일반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4천만 인구인지. 어떤 대상을 말하는 건지, 어떤 사건과 어떤 계기로 그런 다짐을 하게 됐는지도 써주면 더 공감이 가겠지요. 다음에는 지율스님이랑 어디 다녀온 얘기 써주세요. 좋은 글감이 될 것입니다.

= 책이라는 사물을 친구 혹은 연인처럼 대하는 글. 앞부분이 조금 헷갈리고 지루하게 전개돼요. 더 긴장감 있게 분량을 줄이고 (필요이상으로 정보를 주어 독자를 노동시키는 건 작가의 자세는 아니랍니다) 뒷부분 독서모임의 분량을 늘이는 게 낫겠어요. 이미지소비로서의 독서와 혁명으로서의 독서를 대조하는 거죠. 읽고 쓰는 거 자체가 혁명이라는(저도 요새 읽는 책) 작가의 말에 따른 윤여사의 삶에서 구체적인 증례를 들어주어야 독자가 일상혁명으로서의 책사랑-글쓰기에 설득당합니다. 

=글을 한달음에 읽었어요. 잘 읽히는 글. 긴장감 있게 흘러가는 글. 읽는 사람이 쉽게 읽으면 쓰는 사람은 고생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저는 경험적으로 이해합니다. ‘오빠들은 계속 공부를 했다. 외양간의 소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부모는 달러 빚만 안 냈을 뿐 농협의 빚은 갚고 내고 갚고 내고를 반복했다.’ 외양간의 소가 남아있지 않았다는 표현에 가슴이 쿵하네요. 대학을 자퇴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가야했던 쓸쓸함이 시각화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이 주변인의 삶에 힘과 쾌락이 되었을 거 같아요.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쓸쓸함도 있지만 쏠쏠함도 있지 않나요.^^ 그 부분도 써주세요. 벤야민이 말한 위험의 순간에 스쳐가는 이미지를 묘사한 부분도 힘이 있네요. 뭉쳤던 어린시절이 파편화되어 이미지의 조각으로 나뒹구는 장면이 그려지고,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다 싶습니다.

=미술관 가고 싶게 하는 글이네요. 유딧님의 열정과 몰입이 놀랍고, 그게 반영된 글도 구심력이 있네요. ‘여행을 강행한 것은 나 자신의 욕망이기도 했지만 분명 책을 읽으며 고양된 타자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가족이 있었기에 혼자 유럽의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은 금기 또는 금지된 그 언저리였을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나쁘다 좋다 라캉은 선악을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주체의 사유란 모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며 언어는 타자의 장에 속하기 때문에. 나의 욕망은 늘 타자의 것이라고 한 거죠. 인간은 사회적 존재니까. 욕망은 늘 결여를 겪을 수밖에 없어요. 상징계 안에서 결여를 겪는 욕망보다 충동이 있는 실재계 차원에서 주체가 자리아야 한다. 즉 욕망을 길들이지 말고, 교화되지 않는 충동의 즐거움을 찾아라. 그 욕망이 자기 초극으로 인도해야지 자기 파멸로 몰아가면 아니되니까요. 유딧님은 욕망에 충실하고 실천력을 겸비한 분이니 그 욕망을 고귀한 것으로 가꾸시면 될 것 같아요. ^^

=점이라는 제목 보고 뜬금없이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라는 가사가 있는데 너무 처절하고 아름답고 강력하게 와 닿았죠. 먼지가 가진 생의 의지란 얼마나 놀라운가. 이슛트의 점이 먼지 같아요. 바람에 날려 원하는 곳 어디든 갈 힘이 느껴졌어요. 합평할 때 얘기한 것처럼 조금 다듬어 봐요. 벤야민이 말한 기술의 발전과 혁명을 말한 것과 이슈트의 삶의 좌절을 더 매끄럽게 봉합시켜 보고, 재능교육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낀 가치 충돌의 상황도 더 솔직하게 써보고. 목록을 지워가는 순서대로 구심력있게 재배치해보세요. 작가는 세상을 향해 짓는 사람이다. 이런 말 있어요. 이슈트처럼 할 말 많은 사람은 노력을 겸비하면 좋은 글 쓸 수 있어요.

=외유내강한 글입니다. 큰 소리로 목청 높이는 사람의 말은 외려 들리지 않죠. 조그맣게 웅얼거리는 듯싶은데 더 귀가 기울어지고 조마조마하면서 계속 읽게 해요. 벌꿀님에게 내장된 사유의 리듬, 시각화 능력이 잘 구현되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네 명이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어느 누구 하나 깨트리려고 하지 않는 침묵으로 그새 캄캄해진 밤 하늘 만큼이나 마음은 먹먹하기만 했다.’ 이 정서가 글의 끝 지하실까지 이어지는 점이 참 좋아요. 한 가지. 우엉의 흙냄새와 지하실의 연결고리가 매끄럽지가 않고, 마지막 세 줄. ‘지구상에서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것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살아남았고 나는 아직 바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우리를 구원해준 걸까. 나는 통 알 수가 없다.’ 이 부분이 스케치 같은 앞의 글이랑 톤-억양이 달라서 아쉬워요. 마지막을 다시 다듬어 보세요. 더 멋진 사유이미지가 욕심나네요.

=미완의 글이 분량이 안 채워졌다기보다 중요한 단서가 빠졌네요. '굳이 그 이유를 물은 적은 없지만 도시생활에 지친 젊은 부부의 생활고에 기인했을테고, 앞선 언니의 성공적인 사례에 고무되어 나의 시골행은 당연한 수순은 아니었을까 비약까지도 해본다.' 이 문장이 핵심 같은데 설명이 없네요. 왜 그 이유를 묻지 않았는지-ty님은 조숙한 아이였는지 어떤지 궁금해요. 또 언니의 성공적인 사례는 어떤 걸 뜻하는지도 써주세요. 한 행 한 행 독자를 이끌고 가려면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지 스토리의 빈구석이 있으면 대개의 독자는 돌아가거든요. 시골 생활 묘사 부분은 흥미롭네요. 시골의 따뜻한 기억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따뜻함이 변화시킨 부분을 사유해서 글로 풀어주세요. 완성된 글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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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납작납작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올드걸의시집]

‘도시에서는 길을 헤매도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길을 잃듯이 도시에서 길을 잃으려면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 거리이름이 마른 나뭇가지가 똑 부러지는 소리처럼 도시를 헤매는 이에게 말을 걸어주어야 하며, 도심의 작은 거리들은 산골짜기의 계곡처럼 분명하게 하루의 시간을 비추어주어야 한다.’

벤야민의 자전적 에세이 <베를린의 어린시절> 일부이다. 평소 싸돌아다니기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 암호 같은 문장에 일순 매혹되었다. 아는 길도 물어가는 게 아니고 길 잃는 훈련을 하라니…이 책에서 벤야민은 일상적인 장면을 은밀하고 정교하게 본다. 대도시의 부산함 속에서도 동상, 건물, 모퉁이, 골목 등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들으며 유년시절 이미지를 불러낸다. 집안의 가구 등 물건들과도 마찬가지. 그런데 단순히 사물과의 대화를 넘어서 기억의 결을 맞추고 꿈의 판본을 해독하는 과정은 무척 에로틱하다. 벤야민의 몸을 통과한 사물이 말을 하고 사물의 몸을 통과한 벤야민이 말을 하는 시선의 순환. 감각의 작용. 기억의 소생. 이는 또한 급진적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어렸을 적 꿈의 에너지를 복원하는 이유는 그 잃어버린 시간에 바로 구원의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배제되고 용도 폐기되어버린 것들의 소리를 듣는 일이 벤야민에게는 혁명과업인 셈인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는 것만큼 내게는 실천이 막막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가끔 길을 잃는다. 혼자 운전할 때. 두물머리 드라이브 아니고 마트에 장보러 가는 길이라도 그 시간이 좋다. 어수선한 집안에서 빠져나와 아늑한 차안에 웅크리고 있자면 존재감 태동한다. 자궁 속 ‘은밀한 익사체’가 된 나. 탯줄타고 영혼에 시동이 걸리면 부르르 몸 깨어난다. 굽어보는 세상. 보이는 것이 이전과 다르다. 하루는 동네 어귀를 빠져나오는데 저 앞에서 리어카가 느릿느릿 전진했다. 아니 산처럼 쌓인 폐지가 작은 섬마냥 둥둥 떠갔다. 리어카를 끌고 있을 이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저 폐지섬을 쌩하고 앞지르자니 죄송하고 저속주행하려니 뒤에 차 눈치가 보였다. 시속5km로 졸졸졸 따라가다가 조심스레 추월했다. 어쩐지 신호위반하는 기분이 들어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힐끔거렸다. 리어카는 차도 옆에 바싹 붙어 나를 바라보았다. 리어카 손잡이 사각 링에 배를 댄 아저씨가 꼭 대롱대롱 매달려가는 것처럼 위태롭다. 들숨날숨 뱃심으로 밀고나가는 생. 항상 노랑 유치원버스나 빨강 학원차가 아이들을 한 무더기씩 쏟아내던 그 거리. 거주연한 20년 된 동네가 한없이 낯설었다. 상어처럼 민첩하게 내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는 폐지섬. 바라보아야 비로소 떠오르는 섬.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
풍경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질겁했습니다
내가 성의 계단을 오를 때
내 시선의 높이가 변하면서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줄곧 풍경이 눈빛을 바꿔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 <풍경의 눈빛> 일부

그날 이후 리어카를 자주 본다. 리어카가 나를 먼저 알은 채 한다. 나 또 왔어. 이런다. 벤야민 말대로라면, 우리는 우리를보는 것만 본다. 서울 도심에 의외로 폐지 줍는 분들이 많다. 주로는 아저씨나 할아버지. 성별분업화인가. 버스정류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리, 완두콩, 호박, 가지, 냉이 파는 분들은 거의 여자다. 남자 어르신들은 죄다 어디 있나 했더니 리어카 몰고 계셨다. 며칠 전 연구실에서 집에 가는 길. 볕이 좋아 걸었다. 돈암동에서 삼선교 지나 혜화동로터리로 향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구릿빛 얼굴이 되어 낑낑 리어카를 몰고 올라왔다. 연달아 또 한 대. 박수근 그림처럼 납작납작 눌린 아저씨가 이번에는 조금 작은 구루마를 끌고 출현한다. 약간 오르막이다. 이 가파른 길에 어찌된 일인가 싶어 두리번두리번 살펴봤더니 내가 걸어온 길에 폐지집하장이 두 군데나 있었다.

왜 못 봤을까. 작년 가을부터 일주일에 서너번 여기를 지나갔다. 의도적 무지. 의도적 외면인가. 아무리 버스에 앉아있었다 하더라도 창밖으로 커피전문점, 예쁜 소품가게, 음식점, 은행 등은 다 훑고 눈도장 찍어두었던 참이다. 자본과의 현혹관계에 물든 감각이 볼 수 있는 것은 이토록 뻔하다. 아마 내가 어린아이였으면 폐지집하장을 놓쳤을 리 없다. 깎아지른 절벽처럼 높게 쌓인 하얀 종이벽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테고 곱추난쟁이처럼 등 굽은 할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어린시절 벤야민이 그랬듯이 말이다. <베를린의 어린시절>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가스버너의 지직거리는 소리같은 그의 목소리가 세기의 문턱 너머로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꼬마야, 부탁이니 곱추 난쟁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주렴!’

드문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들이
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가끔 심심하면
여편네와 아이들도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
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발바닥도 없이 서성서성.
입술도 없이 슬그머니.
표정도 없이 슬그머니.
그렇게 웃고 나서
피도 눈물도 없이 바짝 마르기.
그리곤 드디어 납작해진
천지 만물을 한 줄에 꿰어 놓고
가이없이 한없이 펄렁펄렁.
하나님, 보시기 마땅합니까?

- <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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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비포선셋책방]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전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상대방의 구두나 우산 값을 물어보는 것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사교상의 어떠한 이야깃거리에도 삶의 상황에 관한 테마, 돈이라는 테마가 어김없이 침입해 들어온다...마치 극장 안에 갇혀서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무대 위의 공연을 계속해서 봐야만 하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반복해서 사고와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일방통행로>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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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도약해 미래를 구원하라

[글쓰기의 최전선]


삼주 전 즈음이다. 4차시 강의안 쓰던 날. ‘글감의 4가지범주의 사례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 인생의 핫이슈 서모군을 활용하기로 했다. 옛날 기사를 검색했다. 8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서태지 신보가 나왔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화제형, 8집 장르는 네이쳐파운드이며 곡의 메시지와 녹음 기법 등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면- 정보형,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도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와 혹독한 맹연습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완성도 높은 음반을 선보였다고 쓰면- 감동형, 서태지가 컴백하면 평론가도 컴백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평가가 엇갈린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면- 논란형 기사이다.

아니, 어쩜 이리도 글감의 범주가 사례별로 똑 떨어지는지, 기사원문 붙여넣기를 해가며 풀어쓰는데 콧노래가 절로 났다. 수업시간에 수줍음을 무릅쓰고 나는 서태지 팬이다커밍아웃을 하고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며... 이혼-결혼 기사가 빵! 터졌다. 연예인 스캔들이 꼭 결혼-이혼 기사 순으로 나와야 한다는 통념이 산산이 부서지던 순간. 나는 얼결에 외쳤다. ‘역시 태지는 주류질서의 전복자야. 우월한 내 남자같으니라구.' 근데 갈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슬픔과 회한, 허무와 동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분단위로 기사가 쏟아졌고 나는 친히 광클릭으로 독파했다. 그런데 기사들이 하나 같이 서태지의 과거를 예언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점치다니.

서태지 역사의 재구성을 목도하면서 헤겔과 벤야민의 시간관념이 떠올랐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이념이 자기완성을 위해 전개하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해했다. 이를 테면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발전해가고 서양은 동양이 이르러야할 목적지라는 생각 등등,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인식 틀이 헤겔의 시간관을 따른 것이다. 이를 벤야민은 비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역사를 하나의 잘 짜인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어떤 순간들은 과장되었고, 어떤 순간들은 은폐되었으며, 어떤 순간들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연속적이며 발전적이지 않다. 결코 하나의 연쇄를 이루지 않는다. 순간들 단절들만 있다. 과거가 현재에 선택된 과거라면, 묻혀버린 미지의 과거는 점치기가 가능한 거다.

태지가 아니 떠오를 수가 없는 대목이다. 문화대통령, 천재뮤지션, 완벽주의자 등 서태지를 하나의 잘 짜인 신화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숱한 과장’ ‘왜곡’ ‘은폐가 있었는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존재는 복합구성물이고 고정불변체가 아니라 매 순간 재구성된다. 서태지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 모든 역사는 현재 상태의 욕망과 힘들에 의해 승인되고 편집된 과거. 그래서 니체 역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역사화 되지 못했던 무수한 비역사적 순간들의 발굴자! 니체는 억압된 과거의 순간들을 새로운 현재를 위해 동참시키려 했다. 과거의 무수한 순간들을 살려내고 해방시키는 그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마침 5차시 수업이 과거-되살림 프로젝트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서문에 나온 대로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을 써오라고 했다. 순대국밥의 순대처럼 떠다닌 날, 손녀에게 극진했던 할머니 사랑, 삼수생의 천덕꾸러기 같던 하루, 자신을 탕진하지 못하고 내일을 위해 늘 무언가 남겨둔 여행자의 소회, 인생을 배운 야구의 추억, 여름날 짧은 연애 등 다양한 과거사가 쏟아졌다 

수업시간. 그간 내 삶에서 역사화 되지 못한 무수한 순간들을 발굴하는 일의 어려움과 당혹감을 이구동성으로 토로했다. 정연 씨는 막상 글을 쓰려니 과거 추억이나 쓸 만한 내용이 생각나는 게 없었다며 과거 기억을 생생히 간직한 김연수가 부럽다고 말했다. 아눈 씨는 두 번 째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허진호의 영화처럼 잔잔히 글로 써내며 남다른 감회를 터놓았다. “그 사람은 제 인생에서 없던 사람이거든요. 누구에게 얘기한 적 없고.. 세 번째 남자친구는 자기가 두 번째인 줄 알아요.(웃음) 저도 잊고 지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신기하게 생각이 하나씩 하나씩 나더라고요.”  

김연수가 남달리 성능 좋은 기억장치를 가졌기 때문에 <청춘의 문장들>을 쓸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기억할 것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 같은 기억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며 글로 쓰다 보니 청춘이 통째로 부활한 것이다. 김연수는 지난날의 가난, 사랑, 음악, 비루함, 고생, 친구, 봄날, 방황 등 모든 추억과 아픔을 자산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는 말처럼 스스로 구원받았고 완전히 소진되고 나사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통해 자기를 긍정했다. 김연수의 행복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도약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수업 후 명운씨가 진솔한 후기를 남겼다. 글쓰기가 스트레스인데 그 이유는 "태어나서 글을 이렇게 정기적으로 써 본적이 없어서이기보다는 나의 현재 상태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어서 괴롭다". 하지만 글쓰기가 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다른 삶을 사는 방편이 되기를 바라며, 매일 써보려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존재감염이 이뤄진 모양이다. 좋은 사례다. 우리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배워야할 것은 김연수처럼 미려한 문장을 쓰는 법,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끌어내는 법이라기보다 과거를 살려내고 해방시키는 실천이 아닐까.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서의 글쓰기. "그러므로 글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지복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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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쓴 번역투를 알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생계수단이 크게 두 가지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강의하기 그리고 책 쓰거나 번역하기. 나의 스승이자 동료인 박정수도 대학에 출강을 나가고 지젝이랑 라캉 책을 몇 권 번역했다. 처음에 그에게 배울 때 강의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문체의 꼬임이 거슬렸다. 한국어이지만 번역이 필요했다. 집에 와서 강의안을 ‘나의 언어’로 바꿔가며 정리하고 이해했다. 그는 국문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명색이 국문학도가 왜 이러나 싶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문체얘기가 나왔다.

“내가 예전엔 김훈 글을 읽을 때는 김훈 문체처럼 됐는데 책 몇 권 번역하고 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역투로 문체가 변하더라고. 큰일이야~^^;”

다행히도 박정수는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매이데이를 웹진에 연재하면서 자기 문체를 되찾고 있다. 암튼 가랑비에 옷 젖는 게 제일 무서운 법, 대학이나 언론의 지식생산과정에서 번역투의 오남용이 자연스레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번역투의 표현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 회의를 보다 즐거운 것으로 하기 위하여, 좋은 제안을 보내주십시오.

* 새달 중순경 회의를 가지려 합니다.

*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 오늘 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더 일찍 제출할 터였는데 미안합니다.

*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문제없이 읽힌다고? 번역투에 정든 거다. -.- 위의 예문의 특징은 1. 피동표현 2. 에두르는 완곡법 표현 3. 생명체화한 활유법. 4. 빈번한 지시어 사용 등이다. 피동형은 글심을 약하게 하고, 완곡법은 문장이 늘어진다. 고쳐보자.  

* 이 책은 젊은이들이 많이 읽고 있습니다.

* 즐거운 회의가 되도록 좋은 생각을 보내주십시오.

* 새달 중순께 회의하겠습니다.

* 계획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 오늘 중으로 해야 합니다.

* 더 일찍 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을 행한다, ~을 갖는다, ~을 시키다도 대표적인 번역투의 말이다.


* 7년간 연구를 행한 끝에 - > 7년간 연구한 끝에

* 전문적 조사를 행하고서야 -> 전문적으로 조사해야

* 재판이 행해진 뒤에 -> 재판이 끝난 뒤에

* 단독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 단독회담의 자리에서

* 환경을 개선시키다 -> 환경을 개선하다

* 계획을 구체화시키다 ->계획을 구체화하다

(예문인용; 글고치기 전략)

 

벤야민의 <보들레르의 파리>를 아무데나 폈다. ‘의’와 ‘것’의 한 문장에 기본 서너 개^^;  예문을 고쳐보자.

* 보들레르의 작품에 들어 있는 알레고리적인 것을 연구할 때 바로크적 요소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중세적 요소를 간과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 보들레르 작품의 알레고리적인 것을 연구할 때 바로크적 요소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중세적 요소를 간과함은 오류다. 
 

* “사유재산이 우리를 너무나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은 오직 그것을 소유할 때만 비로소, 그러니까 우리를 위한 자본으로 존재할 때 또는 우리에 의해 사용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 칼 맑스 <역사유물론>

-> 사유재산이 우리를 너무나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기에, 어떤 사물은 오직 그것을 소유할 때만, 즉 우리를 위한 자본으로 존재할 때 또는 우리 사용할 때라야 우리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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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도시를 사랑한 자의 쓸쓸한 고백...1

[비포선셋책방]


# 그녀와 도시 (1971~)

‘도시는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이라고 브레히트는 말했다. 그녀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그렇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을 벗어난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4년 전, 집안에 IMF가 닥쳤을 때도 채무를 정리하고 나니 네 식구의 서울살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주위에서는 서울 근교로 이사를 권했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살던 동네를 고수했다. 지금도 적은 평수에서 네 식구가 성냥갑 속 성냥처럼 끼어 산다. 일인당 할당 면적도 좁고, 도로는 엄청 막히고, 매연 심하고, 물가도 비싸고, 사교육 극성이고, 인심은 각박한 서울. 하지만 그녀는 도도한 한강은 물론 서울의 먼지마저도 사랑한다. 아니 싫은 만큼 좋아한다.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바라는 김씨에게, 이는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서울은 자본주의의 ‘생얼’이다. 자본주의가 배태하는 착취, 불공평, 소외와 같은 악의 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서울을 고집하는가. 살기 힘든 것을 참을 만큼 무언가 ‘끌림’이 있다는 얘기다. 아마도 서울이 주는 달콤 쌉싸름함 때문이 아닐까. 서울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 각종 첨단 시설의 편리함, 친교생활의 충만함 등은, 씁쓸하고 역한 소주 같은 서울살이를 수월하게 해주는 궁합이 잘 맞는 안주거리다. 이미 삼십 년 넘도록 그리 살았다. 미운 정 고운 정 흠뻑 배인 서울이다. 그녀의 신체는 서울에 길들여졌다. 불안하면서도 풍요로운 도시복합체에서 휘청거리는 육신의 지탱 요령을 터득한 그녀는, 그 모순적인 상황이 주는 변화무쌍한 자극을 골똘히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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