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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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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유년시절> 과제 리뷰 "기억의 빈곤은 의식의 빈곤이다. 베르그손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의식의 블랙박스를 기억에서 찾았다. 기억과 더불어 희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기억은 나의 정체성을 마련해 주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를 발견하는 것도 기억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과거 감정을 재조합하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기억의 삼단논법. 장소-기억-의식. 인간의 의식 활동은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있고 친숙한 장소가 많으면 풍부한 의식 활동이 가능하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기억의 장소’가 사라지면서 현대인이 과거를 상실한 현재인이 되어가는 문제점을 지적한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글을 대략 정리한 것입니다. 벤야민의 도시철학도 비슷해요. 현대인의 특징으로 ‘경험의 위축’과 ‘이야기하는 능력..
김혜순, 납작납작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도시에서는 길을 헤매도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길을 잃듯이 도시에서 길을 잃으려면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 거리이름이 마른 나뭇가지가 똑 부러지는 소리처럼 도시를 헤매는 이에게 말을 걸어주어야 하며, 도심의 작은 거리들은 산골짜기의 계곡처럼 분명하게 하루의 시간을 비추어주어야 한다.’ 벤야민의 자전적 에세이 일부이다. 평소 싸돌아다니기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 암호 같은 문장에 일순 매혹되었다. 아는 길도 물어가는 게 아니고 길 잃는 훈련을 하라니…이 책에서 벤야민은 일상적인 장면을 은밀하고 정교하게 본다. 대도시의 부산함 속에서도 동상, 건물, 모퉁이, 골목 등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들으며 유년시절 이미지를 불러낸다. 집안의 가구 등 물건들과도 마찬가지. 그런데 단순히 사물과의 대화..
일방통행로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전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상대방의 구두나 우산 값을 물어보는 것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사교상의 어떠한 이야깃거리에도 삶의 상황에 관한 테마, 돈이라는 테마가 어김없이 침입해 들어온다...마치 극장 안에 갇혀서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무대 위의 공연을 계속해서 봐야만 하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반복해서 사고와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 벤야민 저번 수업시간에 좀 웃겼다. 텍스트가 논문형식이라 좀 난해하다. 너나없이 어려웠다고들 말하면서 얘기가 시작됐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성역할에 따른 성차별- 젠더 이분법을 넘어서야한다는 이론적 논의는..
과거로 도약해 미래를 구원하라 삼주 전 즈음이다. 4차시 강의안 쓰던 날. ‘글감의 4가지’ 범주의 사례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 인생의 핫이슈 서모군을 활용하기로 했다. 옛날 기사를 검색했다. 8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서태지 신보가 나왔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화제형, 8집 장르는 네이쳐파운드이며 곡의 메시지와 녹음 기법 등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면- 정보형,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도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와 혹독한 맹연습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완성도 높은 음반을 선보였다고 쓰면- 감동형, 서태지가 컴백하면 평론가도 컴백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평가가 엇갈린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면- 논란형 기사이다. 아니, 어쩜 이리도 글감의 범주가 사례별로 똑 떨어지는지, 기사원문 붙여넣기를 해가며 풀어쓰는데 콧노래가 절..
나는 네가 쓴 번역투를 알고 있다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생계수단이 크게 두 가지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강의하기 그리고 책 쓰거나 번역하기. 나의 스승이자 동료인 박정수도 대학에 출강을 나가고 지젝이랑 라캉 책을 몇 권 번역했다. 처음에 그에게 배울 때 강의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문체의 꼬임이 거슬렸다. 한국어이지만 번역이 필요했다. 집에 와서 강의안을 ‘나의 언어’로 바꿔가며 정리하고 이해했다. 그는 국문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명색이 국문학도가 왜 이러나 싶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문체얘기가 나왔다. “내가 예전엔 김훈 글을 읽을 때는 김훈 문체처럼 됐는데 책 몇 권 번역하고 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역투로 문체가 변하더라고. 큰일이야~^^;” 다행히도 박정수는 '아빠가 쓰는 육..
<악의 꽃> 도시를 사랑한 자의 쓸쓸한 고백...1 # 그녀와 도시 (1971~) ‘도시는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이라고 브레히트는 말했다. 그녀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그렇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을 벗어난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4년 전, 집안에 IMF가 닥쳤을 때도 채무를 정리하고 나니 네 식구의 서울살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주위에서는 서울 근교로 이사를 권했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살던 동네를 고수했다. 지금도 적은 평수에서 네 식구가 성냥갑 속 성냥처럼 끼어 산다. 일인당 할당 면적도 좁고, 도로는 엄청 막히고, 매연 심하고, 물가도 비싸고, 사교육 극성이고, 인심은 각박한 서울. 하지만 그녀는 도도한 한강은 물론 서울의 먼지마저도 사랑한다. 아니 싫은 만큼 좋아한다.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바라는 김씨에게, 이는 지극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