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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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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상상해봐, 희망버스 어디로 갈지 희망이란 말은 빛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루하다. 1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았다. 탑승객 700명. 세상은 무심했다. 2차 희망버스는 1만 명이 몰려갔으나 차벽을 넘지 못했다. 3차 대회를 지나 4차 서울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참가인원이 반으로 줄었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희마하게 번졌다. 허나 희망버스 그 후, 사람이 사람을 찾아가고 유머가 아픔을 퍼뜨리고 집회가 축제로 벌어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1차, 2차, 3차, 4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김수영)고. 부산 앞바다 고공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이라는 절망의 극점에서 전국으로 펼쳐진 희망의 이행, 그 연관은 빛나고 또 질기다. 여름 내내 반도의 땅을 달궜던 희망버스는 하늘 높은 가을날 강정..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 오빠들이 불쌍하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요지는 이렇다. 전교조의 한 교사가 수배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도피처를 제공해준다. 8년간 알고 지낸 지인의 요청이어서 거절하기 어려웠단다. 이 과정에서 함께 동행 한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그 교사의 집을 알게 됐다. 이후에 찾아가 저지른 소행이다.) 그 사건이 공론화된 날부터 한겨레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관련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조선보다 세게 나간 측면도 있었다. '봐주기'나 '감싸기' 없이 강도 높은 비판의 날을 세운 ‘한겨례’가 듬직했다. 냉철한 비판과 자기성찰은 진보진영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면서도 속상하고 씁쓸하고,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끌탕을 앓을 일 투성인데 알게되면 더 괴로울 것 같기도 했거니와, 사실 ‘안 봐도 비..
깃발논쟁 그 후, 존재를 가리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지난 6월 4일 오마이뉴스에 ‘깃발들, 촛불 앞에서 착해지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전날 촛불집회 현장에 급작스레 불어난 노동자, 학생, 시민단체 깃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내용이었다. 당시는 촛불소녀들에 의해 점화된 촛불이 퇴근길 시민들의 참여로 힘을 받아 뭉근히 타오르던 즈음이다. 자발적으로 모인 발랄한 시민축제의 장에 80년대 깃발의 집단등장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불편하고 겉돌았다. 촛불문화제의 동력인 무소속 ‘무명’씨들에게 ‘유명’한 단체의 깃발이 행여나 ‘담장’이 되어 자발적인 발걸음을 막을까, 촛불의 외침을 가릴까 싶어 염려스러웠다. ‘낡은 깃발’로 표상되는 실체 속에서 내가 본 것은 진화할 줄 모르는 ‘진보’세력의 운동방식이다. 조직화된 깃발의 세몰이로 승리를 쟁취했던 과거와는 다른 투쟁 양상..
깃발유감, 자발적인 촛불 꺼뜨릴라 물대포 같은 장대비도 촛불은 꺼뜨리지 못했으되...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얼마나 맛깔스런 ‘촛불밥상’이 차려질라나 싶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 굵은 빗발이 쏟아졌다. 천둥 번개가 쳤다. 이명박 대통령의 100일 간 행태에 하늘도 진노하신 게다. 그래. 비야 내려라, 물대포 같은 장대비도 촛불은 꺼뜨리지 못할지니. 역시나 광장에 도착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채 촛불을 밝혔다. 촛불문화제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즈음 다행히 비도 그쳤다. 그런데 우산을 접자 난데없는 깃발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며칠 전부터 하나둘 깃발이 보이더니 이날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있었다. 사회자는 동맹휴업을 결의한 대학생들이 참가했다고 소개했다. 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