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올드걸의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
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

 


더보기


 

신고

학교로 돌아오려는 제자에게 / 나희덕 '학교에 다니고싶어요'

[올드걸의시집]

 

  오랜만에 네 편지를 뜯는다, 한번도
  너의 얼굴을 잊은 일은 없었지만은,

  교실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람이 닫고 가는 문 뒤에 네가 서 있었다.
  선생님, 저예요, 제가 왔어요.
  저도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어요,
  또렷한 네 음성에 놀라
  떨리는 손으로 수업을 시작하곤 했지.

  한달간의 가출로
  자퇴서를 쓰고 돌아섰던 너,
  노동자들과 함께 보내던 날들이 그립다던
  너에게 이제 편지를 쓴다.

  너는 그릇에 넘치는 물, 
  화분 위로 끓어오르는 뿌리 굵은 나무,
  그리하여 팍팍한 땅에 심겨지고자 하는 나무, 
  그러나 네가 돌아오려는 이곳은
  넓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땅이란다. 

  단 한번도 너의 등을 떠나보낸 적은 없었지만
  저 넓은 들판과 거친 물결 속으로 
  어느 새 너의 떠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교실에서는.

  나희덕 시집, <뿌리에게>




더보기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