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사인

(2)
네거리에서 / 김사인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몰라 손 뻗쳐도 뻗쳐도 와닿는 것은 허전한 바람, 한 줌 바람 그래도 팔 벌리고 애끓어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살 닳는 안타까움인지도 몰라 몰라 아무것도 아닌지도 돌아가 어둠 속 혼자 더듬어 마시는 찬물 한 모금인지도 몰라 깨지 못하는, 그러나 깰 수밖에 없는 한 자리 허망한 꿈인지도 몰라 무심히 떨어지는 갈잎 하나인지도 몰라 그러나 또 무엇일까 고래 돌려도 솟구쳐올는 울음 같은 이것 끝내 몸부림으로 나를 달려가게 하는 이것 약속도 무엇도 아닌 허망한 기약에 기대어 칼바람 속에 나를 서게 하는 이것 무엇일까 - 김사인 시집 , 창비 홍은동 사거리 종로찐빵을 찾는다. 홍제역1번 출구에서 나가서 직진. 어딘가 익숙하다. 내가 학교 다니던 동네에서 한 정거장 넘어오면 이곳이었다. 집과 반대..
밤에 쓰는 편지3 / 김사인 한강아 강가에 나아가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목소리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나 값싼 눈물 몇 낱으로 저 큰 슬픔을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큰 분노와 슬픔으로 흐르는 것인 줄을 진즉 알고는 있었습니다 한강아 부르면서 나는 저 소리없는 흐름에게 무엇을 또 기대했던 것인지요 큰 손바닥과 다정한 목소리를 기다렸던 것인지요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 나도 큰 슬픔으로 그 곁에 서서 머리 풀고 나란히 흘러야 합니다 - 김사인 시집 청사 비가 왔다. 좋았다. 나뿐이겠는가. 비오는 날이면 라디오 사연도 급증한다. 알록달록 우산처럼 여기저기서 감수성이 꽃핀다. 난 이번 비에는, 왠지 게으르고 싶어졌다. 한글파일을 끄고 찢어진 우산을 폈다. 뒷목으로 흘러드는 빗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