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4.20] 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2. [2017.02.06] 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은유칼럼]

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이면 자동 연상처럼 세월호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문장들이 생각난다. 내 평생 목도한 비참의 총화, 그 불가해한 사건의 실체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했다. 번호가 매겨진 희생자가 아닌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는 건 어떻게 실감하는지, 슬픔이 정수리까지 꽉 찬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휘청이는지,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부모들은 소상히 들려준다.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54쪽)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 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소연 아버지 김진철 씨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도둑질만 안 하고” 다 해가며 홀로 아이를 키운 한 부모 가장이다.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데 잃은 그 아이,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소포가 와 있었다.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요.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96쪽) 


그 책들은 결국 딸의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짧게 언급된 한 줄 문장. 나는 그 행간에 오래 머물렀다. 너무 빨리 간 아이의 너무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책들을 건네주고, 살아 있는 딸의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에 눈물짓고 소주를 들이켜다 쓰러져 잠들었을 아버지의 동선을 끝말잇기 하듯이 더듬더듬 그려보았다. 유통기한 없는 슬픔의 효소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을까.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126쪽)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자주 쓴다. 한국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사회학 교과서이자, 삶을 질문하게 하는 철학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문학 작품으로 더없다. 이 책을 언급하면 거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안 읽었다며 뒷걸음질 친다. 용기 내어 읽고 나면 눈빛이 단단해진다. 어떤 학인은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은 무소통‧불통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대로 믿어왔고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국세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이 뭐 건진다고 달라질까?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어떤 건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행동 양식의 초기화는 의식화로 이어진다. 세월호 사건이 “동네 저수지에 사람 하나 빠졌을 때보다 못하다”(291쪽)는 사실을 알아챈다.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26쪽) 물론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는 한 명도 없다.”(157쪽) 


        제훈 어머니 이지연 씨는 교육열 높은 엄마였다. 아이의 뇌기능에 좋게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주고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고 학원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만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고 위로를 받았다며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29쪽)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는 세희 아버지 임종호 씨는 “우리 자식 물에 빠져죽지 않게 수영 가르쳤다”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 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276쪽)


         얼마 전 인천에서 여덟 살 아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빌리러 한 여성을 따라간 뒤 봉변을 당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충격이 컸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젊은 엄마에게 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권했다.


나는 과연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인지, 멀쩡함의 기준이 되는 시기와 조건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자기 욕망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는 책. 핸드폰을 지니거나 생존 수영을 배우기처럼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게 자기 슬픔과 불안을 직시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 채널예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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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사람,기억,기록]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이 책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글 모음집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도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내용을 진은영 시인이 자신의 글에 인용했다. 이 대목을 한 학인이 읽었다. 세월호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그러했던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학인은 황정은의 ‘가까스로, 인간’의 일부를 읽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지이잉 떨려왔다. 이 대목이 자기 얘기라서 뜨끔했다는 이십대 후반인 그는 낭독을 마치고 마저 훌쩍였다.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자기는 이제 ‘어른들은 왜 그래요’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가해자 덩어리에 어느새 속해 있더라고. 그게 슬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한 학인은 아이들과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1년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느냐고 학생들이 물을 때 또 다시 응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 봄을 견뎌야할 것이라고 글을 써왔다. 

갑작스레 찾아든 봄볕에 마음 설레는 3월 토요일 오후 2시 우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양심의 침몰, 느낌의 침몰을 고백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가닿았다. 유가족이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싸워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 남의 아픔을 어떻게 대신 싸우느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다른 이가 조심스레 고개 저었다. 수업 후 한 학인이 후기를 남겼다. 세월호 1주기에 어디서 이렇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꺼내놓고 슬퍼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공부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네요, 라고. 나 역시 글을 읽고 말을 나눠 후련하게 슬픔을 흘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경험했다. 

다시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고 지난여름, 글쓰기 수업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학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구동성 말했다. 책은 진즉에 사두었지만 못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었다고. 그동안 왜 못(안)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책을 읽고난 후 우리는 또 말을 나눴다. “지하철에서 읽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혼났다. 창피한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휴지를 옆에 놓고 읽었다. 읽을 땐 마음이 아팠는데 읽고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 실천력에 자신도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첫 조카가 태어났다는 한 학인은 이런 글을 써왔다. 

“이렇게 축복으로 태어났을 295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사망했다...그리고 현재까지 9명은 실종상태다. (...)책을 통해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눈물은 주룩 주룩 흘렀고,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슬픔은 유가족의 슬픔이었고, 부끄러움은 세월호 뉴스 자체를 외면했던, 침묵하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이어 책을 펼쳐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생각을 다잡아준 서문의 일부를 낭독했다. 

“부모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모들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때 결국 화살이 돌아오는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눈물로 어룽진 수업을 마쳤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주 한권씩 다양한 책을 읽지만 세월호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앞서 학인들이 고백했듯이 ‘마음이 아플까봐’ 묶어두었던 감정을 허락한다. 이러한 풍경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면 왜 안 되는가. 우리는 왜 평소에 마음 놓고 슬퍼하지 못할까. 슬퍼하는 시간은 왜 금지당하는가.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모아두었던 슬픔을 방류해야 하는가. 

그것은 애도의 시간이 생산의 시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한다. 그러나 슬퍼하는 건 중노동이다. 슬픔이 과하면 탈진한다. 그 엄청난 감정-정서-육체 노동에 임하면서도 그것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지 못하고 교환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저 쓸모없는 낭비일 뿐이므로 그렇다. 

그렇게 온전한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고,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는데도 그 슬픔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해서, 슬픈 일이 끝나지 않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이 세월호 천일이 지났다. 봄이 오면 세월호 3주기다. 
그날들에 나는 또 잠시 일상에 틈을 내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주어졌다고 안도하고 자족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슬픔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세월호 천일 이후를 살아갈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다.



# 2017년 1월 이음책방 304낭독회에서 읽은 글

(위 글에는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일부 내용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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