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시대의 문학을 말하다 - 사사키아타루와 손홍규

[사람사는세상]

지난 4월부터 와우책문화예술센터에서 일한다. 매년 10월 홍대 주차장길에서 북페스티벌을 진행하는 게 가장 주된 사업인 사회적기업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올해로 10년. 나는 책과 관련한 축제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다. 4월 1일 입사하고 보름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의 시간을 보냈고, 그 미어짐의 와중에 일을 해야했고, 그렇게 나온 기획이 '시대의 중심에서 문학을 말하다'라는 국제포럼이다. 우리 삶에서 재난 이전과 이후의 분할선을 어떻게 그어야할지 모르겠으나, 재난의 시대에 문학-읽고쓰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싶었다. 근래 인상 깊게 읽은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치열한 무력을>의 사사키 아타루를 지난한 과정 끝에 섭외했고, 국내 발제자는 <서울>을 쓴 손홍규 작가를 초청했다. 토론자로 고병권, 함돈균, 김소연과 함께 한다. 10월 4일 행사를 앞두고 지난 7월 하순에 사전 모임을가졌다. 그 때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국외 발제자인 사사키에게 메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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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사키 아타루씨.

 

 

한국은 20년 만의 마른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 되었습니다. 하늘도 눈물이 말라버린 것만 같습니다. 희미한 한숨 같은 더운 바람만 간간히 불어옵니다.

 

지난 7월 24일은 세월호참사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하루 전인 7월 23일 한국 포럼 참가자들이 홍대 근처 카페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유럽 여행 중인 김소연 시인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오는 10월 열리는 포럼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편안하고 자유롭게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 1.

저희는 먼저, 사사키 아타루씨의 <이 치열한 무력을>에 들어있는 2011년 후쿠오카 강연을 바탕으로 한 텍스트 내용과, 국내 발제자인 소설가 손홍규의 <서울> 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서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재난 이후, 끝나버린 세계의 주인인 소년을 화자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소설은 묻습니다. 종말 이후는 이전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종말 이전과 이후에 '우리'는, '타자'는 서로 무엇이 되는가. 이는, "지금이 3.11 이후라는 것이 엉터리다. 지금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 이전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일갈했재난을 바라보는 사사키 아타루씨의 문제 설정과도 겹치는 부분입니다. "문학은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사사키 아타루씨의 말에 손홍규 씨의 <서울>이 화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 2.

손 작가는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 몰랐다며, 유가족이 고립된 사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시대는 이미 '다른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며 "(다른 시대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얻고싶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고병권 철학자는 압도적 무력감을 느끼는 이 시기에, 정치, 경제가 붕괴되는 이 때에 만약 문학과 철학이 함께 무너진다면 문학과 철학의 힘의 원천이 권력에 있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말문이 닫힌 시대일수록 말의 권리, 원천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함돈균 평론가는 2009년 용산참사 이후 글쓰기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고백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음을, 시대를 관통하는 글쓰기의 행위에 대한 고민을 터놓았습니다. 평론은 소설처럼 물음만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단을 요하기 때문이지요. 점점 대화는 무르익었습니다. 세월호라는 심연에 묻힌 숱한 삶의 재난들에 대해서 온갖 말들과 증언이 오갔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임의 징표를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칸트는 '나를 떠나서 너에게로 갈 수 있을 때'가 인간의 징표라고 했지요)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키워드가 강박적으로 사용되는 현상을 통해 드러난 망각에 대한 공포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 3.

10월에 열리는 저희 포럼은 3.11대지진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에 대한 어떤 진단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성격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해서 “이럴 때 작가는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문제이며 하나의 현상에 대해 도덕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재난이라는 것은 시험의 과정, 하나의 물음을 받는 과정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로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 어떤 ’결론‘이 나올 필요는 없으며 그렇다고 문제를 피해서도 안 된다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국내 참가자들은 이웃나라에서 찾아오는 사사키 아타루 씨를 우정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틀에 갇히지 않은 직관적인 형식의 강연을 환영합니다. 엄숙하고 무거운 자리가 아닌 '북페스티벌'의 포럼답게 진지하지만 경쾌한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의 말할 권리.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이야기라도 말하고, 읽고 쓰는 권리의 촉발이 되는 귀한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 4.

사사키 아타루 씨의 메모 형식의 발제문이 오는 대로 국내 참가자들과 공유하겠습니다. 만약 늦어질 경우 미리 연락을 주시면 저희 업무처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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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비포선셋책방]

수유너머R 심야합법강좌  '저자와 함께 읽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지난 6월 7일부터 4일 연속 열렸습니다. 첫날 강의 제목이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입니다. 저자 고병권은 "제목은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몸이 안 풀려 죽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일각에서는 '단기유학파로서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며 '영어로 강의해도 좋다'고 권했건만, 극구 한국말을 고집했습니다.


민주주의 강의안에 갑지가 웬 개?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말했죠. "나는 개다." 어떤 개인가 하면, "탐욕과 불의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사납지만 선물에 대해서는 사슴처럼 다정한 개"입니다. 또 왜 샐러드일까요. 샐러드에 얽힌 사연을 일부 공개하자면, 

# 플라톤이 길을 가다가 샐러드를 씻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한 마디 던졌다. 네가 디오니시오스 왕에게 조금만 더 공손했더라면 넌 네 샐러드를 손수 씻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네가 네 샐러드를 직접 씻는다면 넌 디오니시오스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간단한 재치문답 같지만 여기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노들장애인 야학에서 공부하는 김호식이 묻습니다. "요즘에 디오게네스처럼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병권이 답합니다. 디오게네스처럼 산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어렵고, 고대에도 어려웠다고요. "가장 좋은 게 왜 불편할까요? 제가 보기엔 호식씨도 어쩌면 디오게네스처럼 사는 겁니다. 중증장애인인데 시설이나 집에 있지 않고 길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길은 민주주의가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 길 위에서 한다는 것. 모든 것을 공적으로 하는 것이 디오게네스의 습관이었다궁정이 음모와 전략의 장소라면 길이란 다툼(시위)과 사건의 장소다. 반값등록금 시위현장을 보라! '잘사는 것'에 대한 삶의 설계는 길에서 나오지 절대 대통령자문위원회 지하벙커나 정치전문기술자들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샐로드를 씻을 수 있기에 누군가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는" 박옥기, 그 역시 여자 디오게네스입니다. 주부에게 평일저녁 4일 연속강의는 '넘사벽' 입니다만, 일산에서 해방촌까지 달려왔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조용히 이뤄지는 삶의 실험들. 자기 삶을 가꾸기 위한 모험들. 이 자.발.성이 데모스의 힘입니다. 

#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자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노예는 디오게네스 없이 살 수 있는데 디오게네스는 노예 없이 살 수 없다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자율적인 능력. 이 힘은 양도와 복종을 통해 행사되는 주권과는 아주 다른 성격이다.  


# 프랑스혁명을 겪고난 후 칸트는 공적public이란 말이 갖는 해방적 성격을 환기해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칸트는 이성의 사적사용과 공적사용을 구분했다.  교황과 성직자의 예를 보자.  교황이 부당한 지시를 내릴 경우에, 성직자는 이성의 사적사용에서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복종하며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학자처럼 세계 대중을 향해 그 부당성을 말하는 것이다. 

출판-이성의 공적사용에 앞장서는 그린비 출판사!
수년만에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손수 편집한 유재건 대표님. 열혈수강생 1인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린비 영상팀이 4일 연속 강의를 촬영했습니다.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다가 "정읍에서 소 키운다"고 자기소개를 한 오기수 씨. 고병권의 저서를 감명깊게 읽고서 이번 강의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직장인, 주부, 학생, 백수, 장애인, 영농인, 출판인. 뒤섞여서 민주주의를 고민합니다.



뒤섞임.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고병권은 디오게네스의 말을 빌어 '만물은 원래 뒤섞여 있다'고 말하며 이주노동자 관련 얘기를 들려줍니다.

무현 정부 초기, 이주노동자 단속이 극심할 때 원곡동 주민들이 불법체류자를 감춰주었다고 합니다. 이주민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이웃으로서 오며가며 정이 든 게죠.  삶에 어떤 '혼합'이 일어난 것입니다. 법 이전에, 로고스 이전에, 삶에서 어떤 변형, 어떤 사건의 일어남. 이 경험은 더 이상 기존 제도와 정책을 불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바로 이 뒤섞임이 일어나는 영역,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지고 어떤 급진적인 변형이 일어나는 영역에서 고병권은 민주주의를 봅니다.    

#  이 삶을 변화시키고 가꾸는 능력, 이 힘으로서만 우리는 한 사회 민주주의 정도를 말할 수 있다.


고병권은 이어 말합니다. 포털 뉴스기사마다 포도처럼 매달린 "그러니까 투표 잘하자"는 댓글을 보면 화가난다고요. 좋은 목자 만나기를 기대하는 순간, 대중은 양떼로 전락합니다. 내 삶의 조건이 타자에 위탁돼 있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녕 민주주의 일까요. '투표 잘하자'는 구호 하나로 민주주의 의미와 실천을 축소시키지 말아달라는 저자의 당부. 그리고 외침.

"선거가 민주주의에 꽃이라는 말만 들으면 꽃대를 확 분질러 버리고 싶어요."

근대 민주주의 자체가 국민과 주권, 대표라는 세가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표의 문제에만 매달려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강의 마지막날인 6월 10일에는  '민주화 이후, 그리고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었습니다. '최장집 실명비판' <한겨레> 기사(2011.5.17)로 화제가 됐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3장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에는 '플라톤 실명비판' 도 수두룩한데 제목이 꽤나 편파적이었죠.  

저자의 최장집 비판은 한마디로 '민주주의 발전론' 비판입니다. 즉 민주주의에 어떤 완성모델이 있고 올바른 정치가의 출현이나 제도의 성숙을 통해 여기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반론이 펼쳐집니다. 

독재 정권이 선거를 통해 교체된다고 민주주의가 달성되는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도가 성숙해져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달성되는가? 아니다. 즉 내용과 형식의 일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대중이 20년만에 다시 촛불집회를 열고 길바닥으로 나온 것이 민주주의의 후퇴인가? 아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민주주의가 문제되는 것은 그 사회가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가진 후진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라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어떤 완성 모델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현재의 체제가 실패한 곳, 무능을 드러낸 곳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최장집은 ‘대의불충분’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고병권은 “대의불가능이 문제”라고 반박합니다. 이주민, 중증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네티즌, 중고등학생 등 현재 대의제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문제로부터 알 수 있듯, 지금은 80년대와 달리 ‘참된 대표’를 찾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투표 때마다 대중 낚기 게임이 되어버린 민주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엘리토크라시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념이 아니라 힘입니다.
정치엘리트의 힘이 아니라 데모스의 힘. 
쥐그림을 그리고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그 길위의 힘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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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렛츠 비마이너! 민주주의의 영원한 슬로건'

[사람사는세상]


혹독한 추위가 물러가고 독재자 무바라크도 퇴진한다. 봄이 오는 걸까. 언론마다 이집트 민중들이 환호하는 사진을 내걸고 민주주의 승리라고 표현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거시기’ 하다. 민주주의. 그거, 내겐 꼭 단물 빠진 ‘사랑’처럼 사기 같아서다. 어설픈 민주화의 봄 겪고 나니 민주주의가 좋은 건지조차 헷갈린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안다. 양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단지 오래된 감정이 참사랑은 아니듯이 다수결의 지배가 민주주의는 아닌 거다.

때마침 고병권이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2월 11일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창간 1주년 기념 특강.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렸다. 휠체어로 가득 메워진 강연장, 그 자체로 북적북적 열기가 후끈하다. 대개 공공장소에 사람이 몰리면 휠체어가 한두 대 정도인데, 여기서는 반대다. 서 있는 내 몸이 낯설었다. ‘노들’의 장소성이 무딘 신체를 일깨운다. 각성모드로 변환했다. 휠체어와 소수성과 민주주의. 셋의 상관관계를 뚫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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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아들의 철학입문서

[비포선셋책방]


“일어나!” “늦겠다!” “빨리해!” 아침마다 아들에게 퍼붓는 말은 대략 이 세 마디로 압축된다 하겠다. 8시 30분까지 학교를 가야하는데 꼭 25분까지 팬티바람에 어슬렁거리면 애터져죽을 지경이다. “가만 보면 늦는 사람은 항상 습관적으로 늦어. 맨날 허둥대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고 자기 지배력도 약한 사람인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네가 그렇게 될까봐 그래. 제발 시간 개념 좀 갖고 살아! (이놈아,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 
 

이런 잔소리를 아침마다 들으려니 아들도 나 못지않게 죽을 맛일 거다. “안 늦으니까 걱정 마세요” 라며 입을 쑥 내밀더니 언제부턴가 전략을 바꾸었다. 내가 따발총처럼 퍼부으면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노란머리 청소년처럼 영어로 말하면서 억압을 분출한다. 내가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 “쟤 뭐래?” 그러면 “아니에요~” 그러고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쏙 빠져나간다. 나는 굳게 닫힌 문에다 대고 진부한 대사를 궁시렁 거린다. "저 녀석이 기껏 공부 시켜놨더니 엄마 영어 못한다고 괄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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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게 배우는 '혁명적 삶'

[스피노자맑스]

수유너머R에서 고병권의 자본론 세미나를 시작했다. 평소에 가졌던 맑스에 대한 존경과 고병권에 대한 신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의 F4. 죽기 전에 사귀어보고 싶은 사상가 오빠들이다. 그리고 나는 고병권이 하는 얘기가 대체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의 언어가 처음부터 익숙했다. 그렇다면 맑스는 어려워도 고병권이 안내하는 맑스는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맑스와 접속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첫 시간에 맑스에 대해 배웠다. 고병권은 <마르크스평전>(푸른숲)을 읽고 ‘혁명적 삶의 어떤 유형’으로서 칼 맑스의 여러 가지 버전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자본론과 맑스의 관계는 무엇일까.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평소에도 정리해보고 싶던 문제다. 대개 사람들은 저자의 삶이 작품과 일치하기를 바란다. 아내를 잃고 <접시꽃 당신>을 쓴 도종환 시인인이 평생 수절하며 혼자 살기를 바라는 환타지를 갖는 것처럼.  맑스의 경우라면, 자본론의 사상을 토대로 맑스의 삶을 상상하고 요청할 것이다. 그래서 맑스가 욕을 먹었단다. 귀족계급에 대한 선망으로 남작 딸과 결혼했다든가, 고급주택가에 살고, 딸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등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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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은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

[사람사는세상]

가을이 여성들의 계절이라 그런가. 연달아 여성들의 잔치가 열렸다. 목요일(17일)에는 여성연합 후원의 밤. 다음날에는 여성공동체 ‘윙W-ing’ 축제. 두 조직의 주축 세력도 열성 당원도 아닌데, 그러니까 굳이 꼭 가야만 하는 자리도 아니었는데 나는 거기에 있었다. 실뿌리로 엉킨 인연의 타래와 운명적 끌림 때문에 종종 그런 곳에 흘러들어간다. 

봉은사의 밤과 신길동의 밤.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강남의 천년 고찰 미륵불 앞마당에서 열린 지식인 여성운동가들의 밤. 여성연합 후원의 밤에는 학계, 노동계, 문화계, 정계 등등으로 테이블이 배치될 만큼 유명인들이 다 모였다. 정갈한 유기농 뷔페 음식을 나누며 긴 시간 할애해 자리를 빛낸 이름을 소개하고, 요즘 상황이 힘들지만 그럴수록 더 사서 고생하자. 추운 겨울을 견디면 더 평등한 세상 따뜻한 봄날이 온다는 다짐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초가을 싸한 밤공기와 크나큰 미륵불과 여인의 고운 치맛자락의 나풀거림이 만해의 시처럼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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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작가의 책상

[차오르는말들]

얼마 전에 ‘휠체어 여행생활자’를 만났다. 서른 즈음에 급작스런 유전질환의 발병으로 근육에 힘이 없어져 걷지 못하게 된 중도 장애여성이었다. 수동휠체어를 돌릴 힘이 없어 전동휠체어를 탄다. 그런데 그 휠체어를 몰고 정선5일장부터 제주도, 인도, 미국, 일본, 호주까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면서 사는 여행생활자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대학 때도 배낭여행을 많이 다니다가 회사에 들어가니 여행을 할 수 없더란다. 직장인들의 그 고정 레퍼토리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갈까’를 그 역시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불편해져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 비로소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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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인문학자 -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행복한인터뷰]

이른 아침, ‘연구공간 수유+너머’ 카페는 텅 비어 있다. 음악도 없고 사람도 없는 그곳은 얼핏 영화 <바그다드카페>의 첫 장면처럼 스산했다. 커다란 창문만이 초여름 흐린 공기와 서울풍경을 덤덤히 담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왔다. 주인 없는 카페. 그래서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카페에서 그는 서툰 솜씨로 커피를 갈고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커피를 잘 내리는 사람이 해준 맛있는 커피를 먹고는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뒤로 직접 해 먹기도 합니다. 뭐든지 그런 거 같아요. 잘 하는 사람을 통해 진짜 맛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잖아요.”

어쩌면 그는 커피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서 ‘커피’ 대신 ‘니체’를 넣으면 고스란히 고병권이 설명된다. 니체라는 쓰디 쓴 원액을 특유의 손맛으로 우려내 ‘니체의 참맛’을 선보인 장본인이 바로 그다. 고병권은 <니체, 천개의 눈 천 개의 길><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쓴 최고의 ‘유쾌한’ 니체주의자다. 저작 및 강연활동을 통해 철학책 속 니체를 ‘커피처럼’ 일상으로 불러왔고, 까칠한 니체를 ‘커피처럼’ 향기롭게 뽑아 숱한 나른한 영혼들을 일깨웠다. 그는 손수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곧 생애 첫 기억부터 내밀한 시간의 자락을 들추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 영화 <바그다드카페>의 마술처럼, 카페에 웃음이 솟고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시골아이 고병권
“어린아이는 신성한 긍정, 순진무구한 망각, 새로운 시작, 하나의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다.” 

그는 열 살 이전까지 흙길을 밟으며 자랐다. 처음으로 아스팔트를 본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까맣고 평평한 땅, 신작로가 신기해 눈을 떼지 못하던 깡촌 아이였다. 때문에 “MT를 가면 살아난다”. 나무 해오고 장작불 떼고 풀피리 불고 등등 자연을 무대로 활보하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많다.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키가 작아서 앞에서 세 번째였지만 5학년 때 광주로 전학가기 전까지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의 전권을 쥘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숙제도 안 해오고 능청스럽게 자기공책에 ‘참 잘했어요’를 쾅 찍었다. “거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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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인문학자 - '불안사전' 우리시대 불안을 읽는다

[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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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 고병권씨. ⓒ이강훈





















햇살이 벅차게도 좋던 어느 늦가을 오후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교통카드 체크음과 엇박으로 귀에 감겼다. 육자배기 같은 걸쭉한 웃음소리와 시시콜콜한 속사포 멘트가 주거니 받거니 중계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때론 활명수처럼 나른함을 씻겨주기도 한다. 헌데 그 날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남녀진행자의 말투가 자못 비장했다.


"네…, <불안사전>이라는 다소 까칠한 사전이 나왔네요, '88만원'은 비정규직 한 달 월급이면서 휴대폰 1대 가격이고, '정규직'은 잠재적 비정규직이라고 정의했네요. 참 씁쓸하죠? 우리의 불안한 현실을 담아낸 것 같습니다."

장안의 화제가 된 <불안사전>의 발원지는 '시민지식 네트워크를 위한 독서프로젝트(이하 독서프로젝트)'다. 그 행사의 참가자와 네티즌이 만들어낸 가상의 사전으로 불안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냉소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독서프로젝트는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는다>는 기치 아래 지난 10월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주축으로 출판사·연구모임·북클럽·도서관 등 40여개 단체가 함께 한 일종의 독서토론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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