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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29] 시험감독, 그 심란함에 대하여 (7)

시험감독, 그 심란함에 대하여

[차오르는말들]

개학 후 아들이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말한다. 엄마 나 회장(반장)됐어요. ? 가슴이 덜컹했다. 나는 거의 화를 낼 뻔했다.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학교일에 신경 쓸 수 없는데 하는 걱정. 니 학업성적으로 해도 되는가 하는 우려. 참고로 1학기 회장과 부회장은 스카이반에서 특별관리 받는 중학교 때부터 유명한 목동영재들이다. 암튼 아들이 나대는 바람에 주사위는 떨어졌고, 나에겐 회장엄마로서 기본적인 책임이 주어졌다. 아주 최소한의 역할만 하기로 다짐했다. 학급 모임에 나갔다. 1학기에는 안 나오더니 임원이 되니까 나오느냐며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쯤은 많은 분들이 인사를 건네는데 뜨끔했다. 며칠 후 1학년 16개 학급 회장단 엄마모임이라고 연락이 왔으나 일이 있어 못 나갔다.

학년대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 반 빼고 다 왔다고. 겨우겨우 구두로 결정사항을 전해 받았다. 반 엄마들 연락처를 앞에 놓고 중간기말고사 시험감독 좀 해달라고 전화해서 선생님께 명단을 보고했다. 어제 두번째 회장단 모임이 열렸다. 안건이 백일장에 선생님 도시락 준비 논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나갔다. 역시나 전원출석. 나는 물냉면을 시켰는데 메뉴판이 다 돌자 나머지 15명은 우거지갈비탕을 시켰다. 주방아주머니께 죄송했다. 나는 맞선자리에 끌려나간 사람처럼 조신하게 면발을 젓가락에 감아 조금씩 삼켰다. 시간 되는 엄마들이 나서서 야간자습실을 청소하자는 결의도 진행됐다. 말끝마다 '우리 아이 일이니까'를 반복했다. 쩝쩝쩝. 이제 10월과 11월에 급식검수요원 하러 새벽밥 지어먹고 학교에 2회 더 가는 일만 남았다.   

일주일 전. 중간고사 시험감독을 갔다. 3학년 한 줄, 1학년 한 줄 섞여 앉아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은 교탁에, 그 대척점인 뒤 칠판 쪽에 내가 섰다. 종이 울리자 나란히 도열한 회색빛 등짝이 일제히 수그러진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판옵티콘 구조, 일망감시체제에서 감시자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됐다.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코를 킁킁 거리고 기침을 해댔다. 다리를 떨고 몸을 비트느라 의자의 삐그덕 거리는 쇳소리가 울렸다. 매캐한 사내냄새 자욱한 공간에 왠지 불길한 기운을 자아내는 음향효과들...

맨 뒷자리 덩치 큰 녀석은 뒷모습부터 남달랐다. ‘학교 싫어 공부 싫어 시험 싫어를 온몸으로 발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문이 빼곡한 영어 시험지를 받더니 앞뒤로 김을 굽듯이 두어 차례 뒤집어 훑고는 답안지에 기표를 시작했다. 3학년 답게 관록이 느껴지는 민첩한 태도였다. 나름은 정성 다해 골고루 찍었다. 저러다가 다 틀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데 곧 엎드리더니 후두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쓴다. 좁다란 책상에 몸집이 흘러넘쳤다. 학교가 몸에 맞지 않는 아이. 그 아이를 기점으로 10분 지나고 20분 지나자 한 녀석 두 녀석 도미노처럼 푹푹 쓰러졌다. 2교시는 고3 교실 감독을 들어갔는데 시험 치르는 아이들보다 자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이 충격적인 모습에 나도 쓰러질 뻔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교실붕괴의 현장이구나. 두 시가짜리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그것도 김기덕의 영화. 타협을 모르고 잔혹함의 궁극을 보여주고야 마는 그의 영화. 사람들은 창녀가 대학생이 되는 판타지를 꿈꾸고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믿고 위로 받지만 김기덕 영화는 그런 서비스가 절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오장육부 다 터진 현실을 드러내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날 시험풍경은 지극히 김기덕의 영화적이었다. 만감교차. 우울범벅. 싱숭생숭.

왜 엄마들까지 시험감독을 불렀을까. 시험 치르는 아이들이 없는데 무슨 시험감독을 하라는 건지 속상했다. 잠이나 편히 자라고 등을 다독여주라면 모를까 아무 할 일이 없다. 부정행위도 시험을 잘 보려는 의욕이 있을 때, 건강한 신체상태일 때 저지른다. 지금 아이들은 아무 의욕도 열정도 희망도 없다. 니체 말대로 악행은 생에 대한 권력의지가 있는 강자만이 저지를 수 있다. 의욕할 줄도 저항할 줄도 모르는 순치된 아이들. 겉은 잠잠하지만 속은 썩어간다. 느린 자살이 일어나는 힘의 과소상태가 딱 지금의 학교 풍경이다 

도대체 선생님들은 이 꼴을 어떻게 매일 바라볼까, 어떻게 견디고 있는가. 왜 방치하는가. 학교는 웬만한 대학에 가는 애들을 위한 학원이고, 나머지는 희생양이다. 등록금 내는 기부천사다. 공부를 포기한 애들이 일시에 학교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교사들 월급은 누가 주나. 소수정예반 입시교육에 디딤돌이 되어주는 아이들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 부모들이 흘릴 땀방울이 너무나 아까웠다. 명색이 학교 간판을 달고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 아이들을 맡아 놓고 당신들 이래도 되는 건지 교무실 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현관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시험시간에 기죽고 시들어 있던 아이들이 물에 담긴 꽃처럼 피어나서 생기지게 떠들고 웃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좀 가벼웠다. 공부 못해도 기죽지는 말라고 네 자신을 긍정하라고 좋은생각류의 하나마나한 말들을 막 쏟아내고 싶었다. 그 순간, 나의 값싼 연민을 중지시키는 초긍정의 응답이 왔다. 신발 갈아 신는 아이 점퍼 등에 새겨진 문구. ‘공부는 실수를 낳고 찍기는 기적을 낳는다.’ 하하핫.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명색이 시험 보는 날이라고 옷장에서 저걸 골라 입고 집을 나왔을 아이의 동선을 떠올리자, 뭔가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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