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9.11]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16)
  2. [2010.10.16]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4)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올드걸의시집]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시집, 문학과지성사

 

 

가을맞이 영어세미나를 시작했다. 푸코의 마지막 저서가 된 <진실의 용기>다. 강연록이라 구문이 어렵진 않다. 단어가 생소하지. 그 말에 속아서 용기를 내보았다. 세 번 세미나를 참여한 소감은 괴롭다는 것. 부끄럽다는 것. 어렵다는 것. 단어 찾느라 몇 시간이 후딱 가버리고 한줄한줄 내 분량을 발표하면서 버벅거릴 때는 시간이 더디 흐르고 고개가 자꾸 수그러진다. 누구와도 눈 마주치고 싶지 않다. 오죽하면 정수샘이 그런다. 평소 나답지 않게 왜 이렇게 바짝 얼었느냐고. 안 얼게 생겼느냐고 했다. 영어를 자그만치 23년 만에 들춰보는 마당인데. 몹시 기분이 얄궂다. 생각해보니 내가 뭘 못하는 사람으로 어떤 자리에 놓인 게 참 오랜만이었다. 

 

니체 공부할 때도 막막하긴 했지만 모국어라서 두렵진 않았다. 제도교육도 그럭저럭 통과했고 회사생활도 하나하나 배워갔고 가사노동도 얼렁뚱땅 처리했다. 탁월한 요소도 없었지만 취약한 부분도 없이 살았다.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불리한 입지는 선택적으로 피할 수 있다. 근데 난 지금 무리수를 두었다. 자발적으로 영어천민의 자리를 점했고, 견딘다. "인식에 이르는 길에 그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스스로 주입하면서 마음 다잡는다. 인식의 매력. 푸코가 던지는 사유의 말들이 아련하지만 복음처럼 다가온다. 첫 시간엔 그런 상상을 했다. 현재 상태 매우 엉망이나 한 십년 원서 붙들고 헤매고 배우면 나중에는 번역도 해보고 싶다고. 어떤 구체성도 없는 무근거한 바람이다.

 

나는 행하는 자로 산다. 금단의 땅에서 열매 구하겠다고 내동 서성인다. 이건 자기계발 담론이 부추기는 열정은 아니고 억척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불가피하다고 여길 뿐. 일부러 거러는 건 아니고 그렇게 살게 된다. 왜 그럴까. 나도 내가 궁금하여 생각해 보았다. 재작년인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친구가 점을 봐줬다. 내가 자수성가형 인물이라고. (만세력으로 점 칠 때도 꼭 나왔던 점괘다. 부모덕이 없는 팔자라고) 그래서 공부를 해가면서 살아야한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인간은 단독자로 살 수 없다는 건 알겠다. 사람의 후원이 없으면 책의 지원으로 살아야한다는 건가. 셀프돌봄 하라는 뜻으로 접수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물적 토대가 갖춰진 중산층 지식인 여성처럼 책만 파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싱크대와 노트북과 밥벌이와 두아이를 오가며 틈틈이 공부하는 일은 진척도 느리고 몸뚱이도 축난다. 살기 위한 본능이 아니라면, 이 고난의 길을 왜 굳이 누가 택할까. 그런데 시련중독이 되었는지 어쩌자고 책상 앞에서가 가장 좋다.  

 

최승자는 이십대에 벼락같은 시를 써놓고 홀연 사라졌다. 행하지 않는 자로 살았다. "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무위를 위하던 바틀비처럼 그랬다. 초월적 세계를 탐문하다가 죽기 직전까지 말라갔다. 재작년에 나온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시세미나에서 읽었다. '쉬임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시도 담배도 맛이 없다/ 세월이 하 짧아/ 시 한 편, 담배 한 대에 한 인생이 흘러간다'(<잠시 빛났던>) 정신병동에서 쓴 시들도 몇 편 있다. 시시한 삶에 발 딛은 나처럼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책상 앞에서>)고 고백한다.  한장 두장 넘기다보면 더듬더듬 흘러가는 시간들에 젖어든다. 그곳은 다른 세계다. 청송교도소처럼, 쉽게 볼 수 없고 접근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세계다. 자본의 질서로 돌아가는 복닥거림에 벗어나거나 등지거나. 장애가 있어서든 의욕이 없어서든. 행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삶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영어 원서를 파는 것보다 덜 사는 것은 아닐 터다. 자연을 찬미하고 사색에 잠기는 가을만이 아니라 개 같고 매독같은 가을이 있듯이. 이 세상에는 지구본처럼 돌려볼 수 없는 '한 세월이 있다.'

 

 

  

 

 

 

신고

'올드걸의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면기- 허연  (6) 2014.12.03
장진주 - 이백  (13) 2013.09.17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16) 2013.09.11
오은 - 이력서 '밥 먹기 위해 쓰는 것'  (6) 2013.08.05
헌책들 / 이영광  (6) 2013.05.01
아름다운 적(敵) / 강정  (8) 2013.03.13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올드걸의시집]




나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슬프다고 다 우는 게 아니고 눈물이라고 다 순결한 게 아니다.  두 눈에 눈물이 삐져나올 때 '지금 나 슬픈가?' 생각해보면 정말로 가슴 미어질 때도 있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내겐 눈물이 방귀처럼 몸에서 삐져나오는 액체 정도. 수정같은 눈물 아니고 습관성 방귀나 집중호우 같은 개념이다. 내가 잘 우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인 훈련으로 뇌에서 눈까지 눈물이 다니는 길이 닦인 것 같다. 스스로도 기가 막힐 때가 많다. 특히 오후 8시무렵 주차장 씬. 시장보고 오는 길에 차 댈 때 멜로배우처럼 운전대 앞에서 멍하니 눈물 흘린다. 클래식, 가요, 락 등 장르불문. 어둑한 밤길에 흐르는 음악이 나를 가을날 창가로 데려간다. 얼마전 라디오에서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나왔다. 직효다. 가슴에 바람 한줄기 휭하니 지나가더니 일초만에 낙엽지듯 눈물졌다. 시동 끄고 마저 울고 일어난다. 장바구니와 휴지보따리 양손에 들고 뒤뚱 거리며 집에 들어가서는 꽃수레 쌀강아지 불러가며 호들갑 부리고, 밥 하고 찌개 끓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운다. 연기력 쩐다.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20년 전 맹렬히 학습할 때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책으로 봤었다. 돌베개에서 조영래 변호사님이 쓴 걸로 <전태일평전>이 나왔는데 사려다가 말았다. 안 봐도 '비디오'처럼 다 아는 이야기라고 여겼겠지. 헌데 책을 읽고서 그간 전태일이란 이름 석자만 알고있었다는 걸 알았다. 전태일은 생각보다 많이 가난했다. 생각보다 많이 고생했고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다. 그의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맑스의 <자본론>의 초과노동 공부할 때는 전태일이 보이지 않았는데 전태일에서 <자본론>이 보였다. 자본의 포악함이 살갗을 할퀴었다. 그가 노동소외니 인간소외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를 '밑지는 인생'이라고 표현할 때 죄스러움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눈물은 쓸모있었다. 울어 마땅한 대오각성의 눈물. 이주노동자가 우린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난 왜 전태일을 떠올리지 못햇을까. 난 자본이 왜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존속하는가를 치밀하게 고려하지 못했을까. 아직 짙게 물들지 아니한 초록 잎들 사이로 수많은 전태일이 보였다. 기억의 초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흩어졌다. 강수확률 높아지는 계절 가을. 눈물이 있으면 나는 가을이다.

신고

'올드걸의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동네 구자명씨 / 고정희  (2) 2010.11.22
버리고 돌아오다 / 김소연  (10) 2010.11.03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4) 2010.10.16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초  (8) 2010.10.05
익숙해진다는 것 / 고운기  (4) 2010.09.10
낙화유수 / 함성호  (14) 2010.08.31

티스토리 툴바